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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학교] 1기 듣보잡문화반 박찬국 담임의 ‘중림동 스타일 문화 운동’ 간련 오마이 뉴스 기사2013년 08월 07일

이야깃거리 생긴 중림동, 이웃사촌들 다 모였네-[청년의 대안③] 마을을 치유하는 보건소의 청년 예술가들 (오마이뉴스 7월 4일자)

직접 가보지 않으면 모른다. 충정로역 인근을 수없이 지나다녔노라 자부하더라도 직접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골목 안으로 몇 걸음 들어가는 순간 한 세대만큼의 세월이 거꾸로 흘러간다는 사실을. 그것도 어느 흑백의 실록 영상에서나 봤음직한 달동네의 풍경이 천연덕스럽게 남아 있다는 사실을.

고개를 들면 대한민국 일류 여배우들이 광고하는 아파트들이 훤칠히 높다. 이것이 서울특별시 중구 중림동의 두 얼굴이다. 재개발, 빈부격차, 남아서 버티는 사람들,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 동네에 바람 잘 날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어디선가 왁자한 웃음소리가 새어나온다. 중림동 종합사회복지관, 그곳이 발원지다.

버리고 간 물건들의 전시회, ‘중림동 이야기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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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20일 중림동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재개발 지역의 버려진 생활용품으로 꾸민 전시회가 열렸다. 아트디렉터 박찬국 씨가 전시회 취지와 그간의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 장정규

정확하게는 서울시 중구보건소 중림동 보건분소다. 6월 20일. 무슨 예방접종이라도 있는지 주민들과 아이들이 많이 모였다. 그런데 예방접종이라면 이렇게 분위기가 좋을 수는 없지 않을까. 사실은 전시회였다. 사람 손을 탔던 생활용품들이 쭉 벌여져 있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열쇠며 국자, 그릇, 우편함 뚜껑들이다. 버려져 방치되었던 시간들이 그대로 묻어난다. 전시회의 명칭은 ‘중림동 이야기 정원’이었다. 낡은 생활용품들, 이들은 증언하는 중림동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중림동은 과거 사대문(四大門) 바깥 지역으로 시구문(屍軀門)을 나온 시체들이 버려지던 곳이었다. 조선 말기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받으면서 순교자들이 많이 묻혔다. 150년 역사의 약현성당이 이곳에 있는 이유다. 약현성당과 맞닿은 현재 보건소 자리는 을사오적 이완용의 집터였는데 양말공장이 들어섰다가 시가 매입한 후에는 한동안 호박넝쿨만 무성해서 인근에 호박마을이라는 별명을 남겼다.

보건소에서 충정로역 방향으로 맞은편이 바로 1960년대 달동네 풍경이 그대로 남은 곳이다. 해방 후 북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무허가로 점거한 뒤로 그 가족과 후손들이 지금껏 살고 있다. 아파트 단지와 손기정 체육공원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오면 서울에서 남산이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는 언덕이 나온다.

그 지역이 지금 재개발 중인데, 전시된 물품들의 출처이기도 하다. 떠난 사람들이 두고 간, 아무도 찾지 않는 물건들이 보건소로 왔다. 쓰레기장도 아니고 고물상도 아닌 보건소로 왔다. 물건을 챙겨온 이들은 한 무리의 청년들, 예술가들이다.

‘기능’만이 존재하는 공간은 사람을 품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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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림동에는 해방 후 북에서 온 피난민들이 무허가로 점거하면서 생긴 마을이 오래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인근에 있는 고층의 아파트 단지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 장정규

그렇다면 왜 이들은 버려진 물건들을 보건소로 가져왔을까. 청년들과 함께 전시회를 기획하고 준비한 아트디렉터 박찬국(청년허브 청년학교 담임)씨는 이야깃거리를 만들 목적이었다고 한다. 마을에 대한 이야기, 마을을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실제로 청년들이 지역을 돌아다니며 물건들을 모으고 고치고 하는 동안 주민들은 무슨 일인가 수군거리며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어린이들의 호응이 컸다. 아마도 같이 만지고 두들기면서 아이들은 물건들을 단순한 도구 그 이상의 무엇으로 느꼈을 것이다.

“서울 여기저기에서 재개발이 되잖아요. 그런데 새로 들어온 사람들과 예전부터 살았던 사람들이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마을의 역사에 대해서도 아무도 관심이 없고요. 그냥 기능적으로 만들어진 아파트, 기능적으로 구획된 공간에서 주변 돌아볼 이유 없이 살아가는 거예요. 소통은 원하지만 불만만 쌓이고. 끼리끼리 모이면 누구 아이 버릇없다 이런 얘기만 나누게 되죠.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나요?”

박찬국씨는 ‘기능’만이 존재하는 공간은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을 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을 품을 수 없다면 그 공간에는 의심과 질시, 적대감만이 넘치지는 않을까. 오늘날 서울은 모습은 과연 어떠할까.

“도시가 건강해지려면 사람들 사이에 여러 접점이 생겨서 서로 흥미를 가지고 바라볼 수 있어야 해요. 대단한 게 필요한 것도 아니에요. 이렇게 쓰다 버린 물건들을 모았는데도 사람들한테 큰 자극이 되잖아요. 전시회에서 보셨겠지만 의자나 소파도 널찍하게 만들었어요. 벌렁벌렁 눕고 재밌는 일이 벌어지죠. 재미있으면 유쾌해지고 유쾌해지면 너그러워져요. 놀면서 편안하게 관계의 접점을 만들려고 했던 것인데 주민들이 많이 와서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보건소와 청년 예술가, 건강한 도시를 만드는 새로운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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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림동 보건분소가 위치한 종합사회복지관 내 빈 터에서 주민들이 음식을 나누고 있다. 청년 예술가들이 마을의 버려진 물건들을 벌여놓고 고치던 곳이다. ⓒ 장정규

이번 전시회는 서울시 중구 보건소와 중림동 보건분소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환경’을 고쳐 병을 예방하는 보건 행정의 새로운 철학을 보여준 것이다. 주민들의 건강을 지키는 방법에는 꼭 주사와 약물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관계’를 통해 면역력을 높이는 방법도 있다. 편안하고 친근한 이웃들이 많다면, 안심하고 내 아이를 밖에서 놀게 할 수 있다면 스트레스 지수는 확실히 낮춰질 것이다.

청년 예술가들이 모여 이뤄낸 성과를 바르게 짚을 필요가 있다. 실없고 한가한 짓이라며 예술을 도시 바깥으로 내모는 순간, 도시는 삭막한 기능성만이 부유하는 공간으로 변하고 만다. 내다 팔 것도 아니면서 정교하게 촘촘하게 문창살을 짜듯이 사람들 간의 관계는 이해타산을 떠나 공력을 들일 때 풍성해진다.

중림동 자치위원 몇 분에게 행사에 참가한 이유를 물었다. 이구동성으로 그동안 애쓴 박찬국 선생님과 청년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자 왔다는 대답이었다. 버려진 물건들을 모으고 마을의 역사를 예술적으로 재구성하는 그 실속 없는 일들이 주민들에게 던진 감동이 있다. 관계는 그러한 감동을 자양분으로 먹고 자란다.

이제 청년허브 청년학교 학생들과 젊은 예술가들은 한강의 노들섬으로 돌아간다. 최근 노들섬에 직접 목공작업을 해서 작은 카페를 만들었다고 한다. 100여 개가 넘는 개인텃밭이 있고 주말 유동인구는 그 몇 배가 넘는데도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할 곳이 없었다. 노들섬에서 전에 없던 관계의 장을 여는 그들의 시도는 하나하나가 예술이다. 텃밭에 주렁주렁 실하게 달린 토마토처럼 사람들이 한데 모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서울시 청년일자리허브 혁신일자리 모델 워킹그룹 프로젝트의 매니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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