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프] ‘열린 탐구’ 현장스케치

분류
행사리뷰, 허브소식
날짜
2020-08-28

아야프(AYARF)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입니다. 그중 가장 핵심은 펠로우로 선정된 청년 액티비스트리서처들이지만, 이들이 연구활동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도록 곁에서 조언과 응원을 아끼지 않는 패컬티(faculty) 또한 펠로우들 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번 2기 아야프 패컬티는 강은지 다크매터랩스(Dark Matter Labs) 수석연구원, 권오현 빠띠(Parti) 대표,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으로 꾸려졌는데요, 3명의 패컬티 모두 1기 아야프의 패컬티이기도 합니다. 

급진적 미래 콘퍼런스를 성황리에 마치고 이튿날인 27일, 2기 펠로우들과 패컬티들은 다시 청년허브 다목적홀에 모여 ‘열린탐구’ 세션을 진행했습니다. 오전에는 패컬티들이 펠로우들에게 액티비스트리서처로서 걸어온 길과 각자가 생각하는 현재의 위기 상황에 관해 이야기했고, 오후에는 펠로우들과 패컬티가 3개 그룹으로 나뉘어 함께 ‘전환적 미래 도시’의 상(象)을 그려보았습니다.


강은지 수석연구원이 몸담은 다크매터랩스는 영국에 기반을 둔 시스템 디자인 스튜디오입니다. 그는 개념미술과 독서를 좋아하는 순수예술학도였는데요, 대학 졸업 후 책 표지를 만드는 디자이너로 일하며 디자인 산업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한편 어마어마한 자원을 소비하는 디자인 산업에 점차 회의를 품게 되면서, 그는 소셜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현재 그가 몸담고 있는 다크매터랩스는 여러 분야의 연구자, 개발자, 건축가, 디자이너가 모여 만든 시스템 디자인 커뮤니티인데요, 이곳에서 기존의 시장이 움직이는 방식을 따르는 디자인 작업이 아니라 세상을 작동시키는 원칙(rule) 그 자체를 디자인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도시를 디자인한다’고 할 때, 우리는 흔히 건물, 다리와 같은 물리적 요소를 설계하는 작업을 먼저 떠올리는데요, 강은지 수석연구원과 그의 동료들은 이러한 물리적 층위 아래에 있는 암흑 물질(dark matter), 즉 비가시적인 구조와 제도를 디자인하는 데 주력합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으로 우리의 도시가 좀 더 민주적인 삶의 터전이 되도록 하는 게 다크매터랩스의 지향점입니다.

강은지 수석연구원은 ‘생존하는 도시(surviving city)’에서 ‘번영하는 도시(thriving city)’로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오래 생명을 유지하는 삶이 아닌, 스스로 원하는 방식에 따라 자립적으로 사는 삶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요소들은 무척 많습니다. 기후 변화가 인간의 감정에 미치는 영향, 점점 영양 가치가 낮아지는 농산물, 체내 미생물과 정신 건강의 상관관계, 수명 단축을 초래할 만큼 위협적인 일상적 폭력(micro-violence), 자살의 주요 원인이 되는 외로움 … 이처럼 현대 도시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 요인들을 고려하며, 모두를 위한 민주적인 도시, 서로에게 친절할 수 있는 안전한 도시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이는 바로 우리 앞에 놓인 과제이며,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도시를 자연, 문화, 기술, 제도 같은 여러 차원으로 나누어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관점은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내는 실험들을 전개하는 기반이 된다고 그는 조언합니다.

 

이유진 연구원은 20년 넘게 다양한 환경 이슈를 주제로 현장 활동과 연구 활동을 병행해왔습니다. 서울 용산의 미군기지에서 독성 물질인 포름알데히드를 무단 방류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몰래 기지에 잠입해 증거물을 채취하고, 곰 사육장에서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채취한 웅담 즙이 유통되는 경로를 추적했으며, 러시아·일본과 협력해 멸종위기에 처한 귀신고래를 보호하는 국제적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그가 가장 주력하는 환경 이슈는 기후 위기와 에너지 문제입니다. 환경을 파괴하는 에너지자원을 대체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의 생산·소비 체계를 구축하는 일을 오래도록 연구하고 실험해왔는데요, 지난 10여 년 간 서울 동작구에서 ‘성대골에너지자립마을’을 만들어 온 게 대표적 예입니다. 성대골에너지자립마을은 마을 주민이 중심이 되어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제안·실천하는 ‘리빙 랩(living lab)’ 방식으로 여러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성대골에너지자립마을에서 이유진 연구원은 마을 주민들에게 필요한 지식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협력 파트너를 연결하며, 도움이 될 만한 다른 현장을 중개하는 ‘촉진자’로서의 역할과, 마을 주민들의 활동 과정과 그 성과를 책이나 보고서로 묶어 널리 전파될 수 있게 하는 ‘기록자’로서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밖에도 액티비스트 리서치의 성과물이 정책에 연결될 수 있도록 녹색당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를 넘어 기후 ‘위기’ 상황에 놓인 지금, 이유진 연구원은 무엇보다 ‘속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치가 1.5도를 넘어서는 재앙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앞으로 약 7년 안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넷제로(net zero, 탄소 중립)’를 달성한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그려보고 이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역발상이 필요하다고 그는 설명합니다.  이때 우리가 그리는 넷제로 세상은 다양한 구성원의 목소리를 반영한 포용적이고 공정한 사회이어야것입니다.

 

권오현 대표현재 국내 대표 IT기업 카카오와 합병된 다음(Daum)커뮤니케이션에서 개발자로 일하며, 인터넷 공론장 ‘아고라(Agora)’, 블로거들의 콘텐츠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미디어 채널 ‘블로거뉴스’, 다음의 자체 블로그 서비스 ‘티스토리(Tistory)’ 등의 서비스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제일기획’에서 디지털 광고 플랫폼 시장, 데이터 시장의 작동 방식을 익혀 왔습니다.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권오현 대표는 2005년엔 비영리조직들이 디지털 기술과 디자인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회사 슬로워크를, 2016년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커뮤니티 활동을 구축하고 지원하는 협동조합 빠띠를 설립합니다. 빠띠는 특히 그의 주요 관심사인 미디어, 커뮤니티, 그리고 정치라는 키워드가 주축이 된 플랫폼인데요, 디지털 기술로 민주주의를 촉진하고 확산하는 것이 빠띠의 미션입니다. 이를 위해 빠띠는 커뮤니티 간 협업을 촉진하는 ‘빠띠 그룹스’, 시민 누구나 정책을 제안하고 논의할 수 있는 ‘데모스X’,  토론에서 더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이 실시간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빠띠 타운홀’, 시민단체나 정당 등 다양한 주체가 사회 변화를 위한 캠페인을 기획·실행하는 ‘빠띠 캠페인즈’, 사회 이슈 관련 데이터의 원본을 아카이빙하는 ‘데이터퍼블릭’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기술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그는 자본과 기술이 만나 시민의 주권을 침해하는 상황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페이스북은 사용자를 무방비 상태로 광고에 노출시키고, 사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사람들은 페이스북을 ‘공짜’로 쓰고 있는 게 아니라고 그는 지적합니다. 페이스북이 집행한 광고를 보고 돈을 쓰고, 또 페이스북이란 플랫폼에 마치 연료를 공급하듯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따라서, 시민의 디지털 주권을 강화해야 더 나은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시민이 주도하는 디지털 민주주의가 파시즘으로 흐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공유되는 환경에서 집단 지성이 발휘되어야 합니다. 디지털 세상의 ‘더 나은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작은 돌멩이를 쌓아 올려 돌탑을 만들 듯, 플랫폼 개발자로서, 사회 활동가로서, 액티비스트리서처로서  꾸준히 역할을 해나가는 게 그의 꿈입니다.

 


 

오후에는 패컬티 한 사람 펠로우 6~7명 함께 그룹을 만들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이상적인 도시 모습을 상상해봤습니다. “도시 전체 모습을 상상하는 게 어렵다면, ‘마을’ 단위로 좁혀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누구나 자유롭게 활보하고 그 과정에서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공공장소(public space)를 디지털 세상에서 과연 구현할 수 있을까?” “앞으로 우리는 계속 마스크를 쓰고 살게 될까?” “돈이 있는 사람만이 안전한 개인 공간을 차지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모든 자원이 밀집된, 대규모의 ‘메가 시티(Mega city)’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오감으로 세상을 직접 접촉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예술 경험이 과연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로 대체될 수 있을까?” 1시간 30분 동안 패컬티와 펠로우들은 각자 생각하는 현대 도시의 위기와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이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조건들을 꼽아보며 새로운 도시의 밑그림을 그려나갔습니다.

토론이 끝난 후 패컬티와 펠로우들은 다시 한자리에 모여 그룹별로 완성한 미래 도시의 풍경을 공유했습니다. ‘기본으로 돌아가자(go back to the basics)’는 슬로건 아래, 삶을 영위하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요소들을 자급 자족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충족하는 미니 도시, 구성원 간의 신뢰(trust)를 기반으로 자원을 공유하고 서로 돌보며 인간성을 지켜나가는 커뮤니티 도시, 중앙 정부의 급진적인 정책 실행과 풀뿌리 시민 사회의 정치적 역할 확대로 사회·경제·환경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도시 … 함께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밝아지는 미래 도시의 풍경들이었습니다.

 

펠로우들은 앞으로 각자의 연구활동을 진행하며 꾸준히 ‘미래 도시’ 상상화를 채워나갈 예정입니다. 2기 펠로우 17팀이 그린 미래 도시의 모습은 오는 9월 3일과 4일에 걸쳐 온라인으로 생중계되는 ‘열린제안’ 세션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