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YARF] “액티비스트 리서치”(Activist Research) 현장스케치

분류
허브소식
날짜
2020-01-13

농촌의 위기는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국가가 안고 있는 문제다. 급속한 도시화·산업화로 농경지와 농업 인구가 줄어 오랫동안 유지되어왔던 농촌 사회가 무너지고, 세계화로 인해 나라 밖에서 다양한 농산물이 수입되면서 자국 농산물이 시장에서 도태되는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 농촌 마을의 몰락은 곧 전통문화 유산의 소멸, 자연환경 파괴, 식량 자급력 저하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해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손을 쓰지 않으면 안 될 중대한 과제다.

AYARF의 ‘청년과 환경’ 분과 펠로우인 지앙 부 뚜(베트남)와 초우 쿳 인(홍콩)은 농촌 지역의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 지앙 부 뚜는 베트남 농업농촌개발부 산하 조직 ‘PSAV(Partnership for Sustainable Agriculture in Viet Nam)’의 직원이고, 초우 쿳 인은 홍콩 북동부의 400년 된 전통 마을 ‘학카 마을(Hakka village)’에서 생태마을(ecovillage) 조성 운동을 벌이는 비영리단체 PEACE(Partnership for Ecological Agriculture and Conservation of Earth)의 활동가다. 10일부터 13일까지 나흘간 주어진 개별 액티비스트 리서치 기간 동안 두 사람은 서울에서 비슷한 관심사와 문제의식을 느낀 연구자·활동가들을 만나 사례를 수집하고 영감을 얻었다. 두 사람의 리서치 현장 일부를 동행했다.

 

◇ 공석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지역 공동체 변화는 사람에서 출발사회적 합의 통한 주민 참여 이끌어내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를 방문한 지앙 부 뚜(맨 오른쪽)가 정혜원 통역 자원봉사자와 함께 공석기 선임연구원(맨 왼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앙 부 뚜가 만난 공석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한국 시민사회의 동향과 특성을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지앙 부 뚜는 공 선임연구원에게 “민간 조직을 비롯해 연구소와 정부 부처, 기업 등 여러 영역 간 파트너십을 통해, 지속 가능한 농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혁신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플랫폼에서 일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며 “한국의 농업 분야에서 다양한 영역 간 성공적 파트너십 구축 사례가 있다면 들려달라”고 요청했다.

공 선임연구원은 “농업 종사자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고 대형 유통체인과의 시장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가운데 농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협력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며 “농업 생산자들 간의 협력과 더불어 생산자와 소비자 조직 사이의 연대를 이룬 생활협동조합이 등장했고, 이 중 아이쿱(iCOOP)생협은 충남 괴산 등에 생협 매장은 물론 식당, 리조트, 병원까지 갖춘 대규모 단지를 조성해 비즈니스 역량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로컬푸드 1번지로 자리매김한 전북 완주도 여러 주체들의 협력적 파트너십의 성과다. 그는 “완주군의 자원 지원과 브랜딩 전략도 한몫했지만 로컬푸드의 중요성을 인식한 주민 간 협력의 힘 또한 컸다”며 “뿐만 아니라 도시에 거주하는 중산층 소비자들도 건강한 먹거리를 구매하려고 일부러 완주를 찾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완주의 로컬푸드 실험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게 공 선임연구원의 지적이다. 그는 “로컬푸드로 유명한 일본 규슈의 미야자키 현은 지역 농산물을 활용해 술, 잼, 소스 등 여러 종류의 가공식품을 개발해 시장 경쟁력을 키웠다”며 “완주도 1차 농산물 판매를 넘어 보다 부가가치 높은 다양한 가공식품을 내놓는 등 소비자층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앙 부 뚜는 “베트남에서도 커피 농가들이 지역별 스페셜티 커피를 내놓으며 제품을 차별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사실 커피 품종이 대체로 비슷비슷해 어려움이 많다”며 “공 선임연구원이 언급한 한국, 일본의 사례를 좀 더 연구해보고 싶다”고 했다.

지앙 부 뚜 펠로우와 공석기 선임연구원.

 

◇ 유경순 두레생협연합 두레교육활동센터 사무국장, “지역 공동체와 함께 지역 사회 변화 일으키는 게 두레생협의 목표생협 운동 확산하려면 정부의 정책적 지원 필요

서울 구로구의 두레생협연합 사무실에서 초우 쿳 인(맨 왼쪽)이 임지혜 통역 자원봉사자(왼쪽에서 둘째)의 도움을 받아 두레생협연합 활동가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연대를 통해 생산자에게 적정 수익과 안정적 판로를 담보하는 생활협동조합 운동은 직접 농사를 짓기도 하는 초우 쿳 인의 큰 관심사다. 그는 “홍콩에서 한국 생협에 관련된 연구 자료 등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한국의 주요 생협 조직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은 습득한 상태”라며 “이번 리서치에서는 직접 현장 활동가들을 만나 더 구체적인 질문을 하고 싶다”고 했다.

서울 구로구의 두레생협연합 사무실에서 유경순 두레생협연합 두레교육활동센터 사무국장과 배경선 매니저를 만났을 때, 초우 쿳 인은 ‘아이쿱’, ‘한살림’, ‘두레생협’의 이름을 또박또박 발음하며 “두레생협이 다른 두 생협 조직과 비교했을 때 어떤 특징이 있는지 궁금하다”고 첫 질문을 던졌다. 유 사무국장은 “두레생협의 초점은 ‘지역 공동체’에 맞춰져 있다”며 “지역 주민·단체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그 관계 안에서 지역을 변화시켜나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초우 쿳 인은 생협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대체로 중산층에 속한다는 점에 대해 고민은 없는지 묻기도 했다. 생협에서 주로 유기농산물·유기 가공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상품 가격이 높은 편이라 이용 가능한 소비자층이 한정적인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해 유 사무국장은 “생협 내부에서도 ‘유기농·유기 가공을 고집할 것이냐 아니면 더 많은 사람이 생협 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본 수칙을 다듬어야 할 것이냐’하는 고민을 늘 안고 있다”며 “답은 여전히 찾는 중이지만, 생협을 이용하는 사람들 수가 조금씩 늘어나면서 일종의 ‘규모의 경제’ 효과가 작용해 상품 가격이 예전보다 낮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유기농산물·유기 가공품을 사용하는 것이 기후 위기와 환경오염에 대응하는 방식이기도 한 만큼 정부에서도 정책적으로 더 많은 사람이 생협 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왼쪽부터) 유경순 두레교육활동센터 사무국장, 초우 쿳 인, 임지혜 통역 자원봉사자, 배경선 두레교육활동센터 매니저.

 

◇ 박은선 리슨투더시티 작가, “청계천을지로 공구거리가 사라지면 제조업 생태계 자체가 소멸되는 것더 많은 시민이 연대의 목소리 내줬으면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가 주최한 공구 거리 답사 프로그램에 참여한 초우 쿳 인(맨 오른쪽)이 공구 거리를 둘러보고 있다.

현재 몸담고 있는 PEACE에서 활동하기 전 초우 쿳 인은 홍콩 정부의 도시 개발 정책에 맞서 토지 정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삶의 터전을 잃게 된 농촌 지역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반정부 시위를 하다 수감생활을 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AYARF를 계기로 서울을 처음 방문한 그가 재개발 추진 지역으로 묶여 사라질 위기에 처한 청계천-을지로 일대 공구 거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초우 쿳 인은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가 매주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공구거리 답사에 참여해 공구거리 상인들과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콜렉티브 ‘리슨투더시티’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초우 쿳 인은 “내가 살고 있는 학카 마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여러 농장을 비롯해 기계 수리점, 공방 등 작은 가게들이 모여 제법 큰 단지를 조성했는데, 정부는 개발 정책을 펼치며 지역 사람들 내부의 균열을 일으키는 전략으로 공동 행동을 저지했고 결국 많은 주민이 이주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했다. 이 지역의 개발 프로젝트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박은선 리슨투더시티 작가는 “청계천-을지로 공구 거리는 졸업 작품을 준비하는 예술 전공 대학생부터 정밀 실험 기기와 특수한 의료 기기가 필요한 과학자, 대량생산에 앞서 프로토타입을 제작해야 하는 대기업 연구원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곳”이라며 “이렇게 분야별 기술 장인들이 모여 있어서 재료 수급부터 서로 다른 공정의 작업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거리는 이곳이 유일하기 때문에 청계천-을지로 공구거리가 사라진다는 건 산업 생태계 자체의 소멸과도 같다”고 설명했다. 박 작가는 “잠시 재개발을 중단했던 서울시가 다시 개발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상황이라 청계천-을지로 보존 문제에 더 많은 시민이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주었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초우 쿳 인은 “같은 지역에 있는 유명 냉면집인 ‘을지면옥’은 서울시가 보존하기로 했다고 들었는데, 역사 깊은 제조업 생태계 보전에는 손을 놓고 있다는 게 놀랍다”며 “점점 기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뛰어난 손기술을 가진 장인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이들의 기술력과 문화, 전통은 대를 이어 지켜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이렇게 말하며 공구 거리를 둘러보는 그의 표정은 몹시 어두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