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청년허브 X 코다코리아 협력사업 강연 리뷰

분류
행사리뷰
날짜
2020-01-15

청년허브x코다코리아

강연명 소리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 사이에서
구분 사회적자원연계 - 청년풀
일시 및 장소 2019년 12월 6일 (금) 19:30-22:00 / 청년허브 다목적홀
강연자 이현화(언어학자/수어통역사), 이길보라(영화감독/작가), 황지성(장애인 인권활동가/여성학 연구자)
협력 코다코리아, 교양인 출판사
참가자 130명
기획의도 3년간 코다코리아가 활동을 통해 쌓아온 활동 역량이 더 많은 코다 청년들에게 전달 될 수 있도록 교류의 장을 마련하고 코다 청년들 간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코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바꿀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강연 주요 내용

– 코다는 누구인가?
– 코다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판한 이유
– 함께 살기의 가능성과 침묵의 언어를 읽어내는 사람으로서의 코다
– 농인 안에서의 차이와 차별, 그리고 코다

코다는 누구인가?

(이현화) 코다의 정의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부분 ‘농부부에 청인 자녀’라고 답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수화를 모르고 농문화를 모른다면 코다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게 여러 배경을 가진 분들이 물어 오실수록 대답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생각보다 코다의 유형이 정말 많았습니다. 부모가 농인인데 자녀가 청인이면서 수화를 사용하는 경우, 부모가 농인인데 구화를 사용하는 경우, 부모는 농인인데 수화를 잘 모르고 홈사인을 사용하는 경우, 부모 중 한 명이 농인이고 한 명은 청인인 경우 등 다양한 경우가 존재했습니다.

저는 코다의 기준이 무엇일지 궁금해졌습니다. 코다 인터내셔널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습니다.

“CODA CELEBRATES THE UNIQUE HERITAGE AND MULTICULTURAL IDENTITIES OF ADULT HEARING INDIVIDUALS WITH DEAF PARENT(S).”
-코다 인터내셔널 홈페이지(www.coda-international.org)에서 발췌

‘Parent’ 다음에 복수를 뜻하는 접미사 ‘s’가 괄호로 묶여있습니다. 즉 부모 중 한 명만 농인일 경우에도 코다라고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농인과 청인이 결혼해서 자녀를 낳았을 경우에 그 아이는 코다입니다. 

코다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판한 이유

(이길보라) 2014년 한국 농아인 협회가 주관한 코다 행사가 있었습니다. 한국의 코다들이 공식적으로 처음 모여 이야기를 하는 자리였습니다. 제가 어릴 적 겪은 이야기, 마주해야 했던 경험과 감정을, 다른 사람이 제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경험을 했습니다. “나와 똑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한국에도 있구나.” 하고 난생 처음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 흥미로운 경험은 우리가 모여서 각자 가진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마음으로 이어졌고, 코다코리아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서로 코다로서 겪은 경험과 감정을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외 코다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습니다. 영국의 코다 UK&Ireland와 교류하면서 국제기구인 코다 인터내셔널을 알게 되고 교류하게 되었습니다.

코다라고 해도 저마다 코다로서 구축한 정체성이 다르기 때문에, 한 자리에서 모두 설명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써서, 책을 통해 많은 사람이 코다에 대해 알게 되고 또 이 책이 코다 연구나 콘텐츠 제작에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현화)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수화를 보고 자랐습니다. 집에서는 항상 수화로 대화했고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청인 사회에 나갔을 때 집의 환경과 밖의 환경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를 들면, 저희 부모님은 밤에 청소도 하시고 요리도 하십니다. 식사를 할 때는 숟가락으로 그릇을 긁는 소리가 나고 음식을 씹는 소리도 크게 납니다. 저는 부모님의 다름을 이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농인들은 저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청인의 기준으로 농인을 바라보니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농세계와 점점 멀어졌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 농인의 문화가 청인의 문화와 다름을 깨달았습니다. 농문화와 농사회를 이해하게 되면서부터 저는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농사회 안에서 농인들을 만나며 즐겁고 만족스러웠지만 100% 통하지 않는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농사회에서도 청인사회에서도 저는 완벽하게 낄 수 없었습니다. 농인인 어머니는 저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와 친한 청인 사회의 친구들도 저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문화가 다를 뿐인데, 나와 우리 집이 조금 이상해 보였나, 문제가 있어 보였나?’ 하는 생각에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혼자 침묵하며 삭혀 왔습니다.

그러다 코다 인터내셔널 컨퍼런스에 참석했습니다. 4명이 한 팀을 이뤄,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한 참가자가 ‘코다’라는 단어를 내뱉자마자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는 힘들었다. 고통스러웠다’라는 말없이 “코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을 뿐인데 우리는 그 마음을 다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설명이 필요 없었습니다.

책을 쓰면서 저를 포함해 가족의 이야기를 공개하게 되었고, 수어, 농인, 농문화에 대한 편견과 그에 대한 비판도 글에 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보고 기분 나빠하면 어떡하나 걱정과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먼저 길을 걸어가는 코다로서 제 생각을 이야기하고, 이에 대한 비판을 듣고 받아들이려 생각하는 것이 제 의무라고 생각하고 책임을 느꼈기에 책을 냈습니다.

함께 살기의 가능성과 침묵의 언어를 읽어내는 사람으로서의 코다

(이길보라) 제가 일본인 남자친구와 네덜란드에서 함께 살면서 상견례 비슷한 것을 한 적이 있는데, 남자친구의 부모님은 저와 제 가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저와 제 남자친구가 영어로 대화를 하듯, 제가 한국말과 한국 수어로 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이 경험이 저에게는 함께 살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해 나가는 지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언론과 인터뷰 하면, ‘소수자의 입장에서 소수자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항상 저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 점이 불편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공부하면서, 제가 소수자이기 때문에 소수자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침묵의 언어, 언어가 되지 않는 혹은 묻혀있는 언어를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코다로서 농인의 수어와 청인의 음성언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제가 볼 수 있는 것들, 침묵의 언어, 아직 밝혀지지 않았거나 드러나지 않은 언어, 또는 언어를 아직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반응하고 관심이 가는 것 같습니다.

농인 안에서의 차이와 차별, 그리고 코다

(황지성) 제 아버지는 농인이고, 수어를 사용하지 못하시고, 어머니는 청인 지체장애인입니다. 저와 아버지가 이방인으로서 살아온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문화의 고유한 전통과 특성을 형성하는 데에는 농학교가 특히 중요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지시기에 처음으로 농학교가 세워졌으므로 100년 정도 역사를 지닌 농문화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과 남에 각각 한 개씩 있었는데, 분단 이후 남한에 한 개의 농학교가 남아있었고, 미군이 관리했습니다. 1950년대에서 1960년대 초까지 남한에는 서울과 부산에 각각 한 개, 총 두 개의 농학교가 세워졌는데, 제대로 된 농학교가 두 개뿐이었으니 교육을 받지 못한 농인이 많았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농교육을 받지 못한 농인은 농문화에 소속되지 못했고, 수어를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이런 농인들은 직업을 가질 수 없어서 부랑인으로 집단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농학교에 입학했는데, 학교 이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아버지는 농학교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초등과정을 마치고 학교를 나와 주변에 농인이 한 명도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지체장애인인 저희 어머니와 결혼을 하셨고, 저희 가족은 간단한 홈사인을 사용해서 소통하고 있습니다.

청인은 농인이면 다 수어를 사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아버지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면 농인들 간에도 큰 차이가 발생합니다. 저는 농인 간 차이에 대해서 많이 알리고 싶습니다. 저는 비록 농사회에 속하지 않았지만, 장애 간의 차이에 대해서 계속 고민했습니다.

저는 ‘장애여성공감’이라는 장애여성단체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습니다. 농인과 지체장애인이 다른 것처럼, 장애인 남성과 장애인 여성이 다릅니다. 농인여성의 경험과 농인남성의 경험이 많이 다릅니다. 성별에 따라 다른 경험을 갖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종이나 피부색에 따라서도 그렇습니다. 같은 농인이어도 백인의 수어와 흑인의 수어가 다릅니다. 성정체성과 성적지향에 따라서도 경험이 다릅니다.

차이가 왜 중요할까요?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폭력을 가하기 때문에 차이에 대해서 계속 말하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지금 생겨난 게 아니라, 원래 있었는데 말을 하지 못한 것이니까요. 또한 농인 안에서 차이를 생각하고 차별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이 차별이 코다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차이를 가진 농인과 코다들이 <우리는 코다입니다> 책에 실린 저의 글을 통해 위로를 얻고 희망을 가지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