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N개의공론장⑯]「퀴어-공간, 기록하기?!?」리뷰

분류
행사리뷰
날짜
2020-01-03

무엇을 퀴어 공간이라고 정의하고 기록해야 할까요. 이날 공론장에 발제로 참여해주신 한국성적소수자아카이브 활동가 루인님의 말을 인용하며 기록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태원은 왜, 혹은 어떻게 퀴어공간일까?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혹은 업소가 있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서울 혹은 대한민국은 왜 퀴어공간이 아닌가? 라는 질문도 가능하죠. 퀴어공간은 어떤 식으로 명명되고 있고 어떤 식으로 창출되고 있는가와 같은 질문들을 또 한편 하게 되기도 합니다. 퀴어공간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거나 매우 오랫동안 존재해왔다기보다 어떻게 그 공간 자체를, 역사 자체를, 분위기 자체를 다시 읽어내면서 퀴어공간이라는 것을 다시 창출해나가고 있는가, 끊임없이 이 작업을 통해서 어떻게 다른 것들을 새롭게 퀴어공간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와 같은 질문들을 하게 됩니다.”

(사전인터뷰 읽기)


공론장 제목 : 퀴어,공간 기록하기?!?
공론장 일시: 2019.12.1 (일) 13시 ~ 18:00
장소 : 청년허브 다목적홀 

 프로그램

1부 : 열린 생각 공유의 장 [퀴어 공간이란 무엇일까?]

퍼실리테이터와 함께 테이블별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나, 그리고 우리의 ‘퀴어 공간’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는 시간

2부 : 대담자 발제 및 공론장 [퀴어 공간을 기록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1부에는 테이블별로 ‘퀴어 공간’에 대한 자유로운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그중 흥미로운 이야기를 몇가지 뽑아서 기록해볼게요.

A : ‘퀴어’는 성적 지향의 정의긴 한데 다른 걸 수용하는 포용적인 정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배제당하고 주류가 아닌 사람들을 모아서 묶어가야 하고, 장애인 난민 등의 소수자와 연대해야한다고 생각해요.

B : 그라인더 보면 남성들은 ‘여성적인’걸 싫어하는 것 같아요. ‘일틱(일스)’이어야 하고, ‘뚱퉁 죄송’하면서. 대체 일반적인게 뭘까요.

C : 전반적으로 퀴어문화 자체가 도시에 사는 중산층 문화가 되기 쉽다는 생각을 해요. 외국 바들을 봐도 퀴어 업소들은 대부분 비싸고 예술하는 엘리트들이 모이는 경우가 많죠. 정말 가진 것 없는 사람이 퀴어가 된다는게 너무 위험하니까요. 퀴어성을 누릴 수 있는 것도 특권인 것 같기도 해요.  비영어권 퀴어 클럽에 가면 일반 바와 다르게 영어를 잘 구사하는 사람이 너무 많고, 퀴어퍼레이드 에 참여하기 위해서 몇백만원 내고 여행 오는 퀴어들도 있고요. 퀴어는 어디에나 있는데 중심부의 사람들만 부각되는 점도 있는 것 같아요.

D : 지방은 너무 좁은 커뮤니티라 한 다리 걸치면 서로 다 알기 때문에 공간이 더 안 생기는 것 같아요.

E : 퀴어 공간에도 혐오가 존재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의심하게 돼요. 트랜스를 배제하는 클럽 등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껴지는 공간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퀴어끼리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에, 더 많은 노력을 하는 곳이 퀴어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F : 공간들이 너무 이성애 중심적으로 짜여져 있는 거 같아요. 광고 같은걸 봐도 그렇고. 뭐든 하다못해 이벤트를 해도 이성애 중심으로 맞춰져 있고요.

2부에는 패널들의 발제와 질의응답이 이어졌습니다.

1)박의석(지보이스 단장)님의 발제문 <‘게이코러스’ 지보이스의 무대> 

Q. 아까 종로 3가라는 공간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실 때 그리고 친구사이의 지보이스 단체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실 때 그 공간이 게이의, 남성 동성애자의 공간이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의 공간이기도 했다고 해주셨잖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 의석 선생님의 생각을 좀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박: 네, 게이들이 종로에서 놀기 시작한 건 한 20년 되었잖아요. 처음에는 게이들이 거기에 숨으려고 들어갔겠죠.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어찌보면 서울의 음습한 곳에서 모이기 시작한것이니 ‘우리 거’라고 주장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제 점점 바뀌잖아요. 점점 사회 인식 바뀌고 점점 더 보여지게 되고, 요새는 다들 종로 길바닥에서 끼 떨고 다니더라고요.

상황이 변하면서 종로가 우리 거라는 그런 마음이 생긴 게 아닐까, 또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시에 사실 종로라는 공간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잖아요. 알고는 있는데 딱히 서로 용인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냥 존재하고 있다라는 것만 인지하고 있을 뿐 서로를 긍정하는 건 아닌 것 같고 그냥 그런 상태의 수평적인 평행선을 달리고 있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게이공간을 기록한다, 그런데 그 게이공간이 낙원동 익선동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여기는 우리의 공간이야. 우리만의 공간이었어. 그런데 침략을 받았어.”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 걸까? 왜냐하면 어떤 사람한테는 게이가 침략자였을 수도 있잖아요. 괜히 시끄럽게 들어와서 술 먹고 끼 떨고 이런 것들이… (웃음) 그들의 공간을 침범하는 거였을 수도 있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발제에서 이야기한 거는 결국은 이 동네가 어떻다, 동네의 상황이 어떻다, 이런 거를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여기에 있는 ‘우리’에 집중을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Q. 질문이라기보다는 박의석 단장님이 하신 말에 추가해서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낙원동이 중요한 이유는 사실 거기가 후방로이기도 하고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 많이 찾아오는 공간이기도 하고 게이들이 많이 가는 공간이기도 하고 악기점들이 몰려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거기서 국악축제도 하고. 굉장히 다양한 일들이 교차하는 곳이잖아요. 다른 쪽으로는 정부나 지자체에서 지원을 하거나 가시화해주는 작업들을 많이 하는데 게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안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에게는 “우리도 여기에 있었다”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낙원동이 중요한 거고, 단장님이 이야기하셨듯이 “우리는 어디에나 있었듯이 낙원동에도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 존재를 없애려 하지 말라” 이런 것들이 중요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 (지금 말씀하신 분은) 저희 음악감독님이십니다.

Q. 안녕하세요? 저는 한 1, 2년 정도 퀴어 행사를 기획하고 있어요. 지보이스도 상설 공연장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매번 새로운 공간을 찾아야 되고 대관을 하고 그리고 그 공간을 빌려서 안전한 공간으로 관객들과 구성원들과 합의를 해야 되고. 그런 과정이 되게 어렵더라고요. 아무래도 저희보다 조금 오랫동안 활동을 하셨으니까 노하우나 실질적인 정책이 있는지 궁금해요.

박: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저희는 되게 초보예요. 왜냐하면 그동안 계속 남성 동성애자의 단체라고 하면서 활동을 해왔지만 저희 안에 남성 동성애자만 있었던 건 아니라는 거죠. 되게 다양한 사람들이 저희와 함께했었고 그때마다 새로 하나하나씩 배워나가면서 활동했던 것 같아요.

되게 부끄럽지만 저희가 성중립화장실을 이번 공연 때 처음 할 수 있었어요. 이걸 허락해주지 않는 공연장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저희가 이야기를 꺼내도 “아, 여기는 시민들이 모두 사용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이런 걸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나와버리기도 하고 그래서 되게 이게 왜 중요하고, 그런 게 왜 중요한지 계속 설득을 하는 과정을 매번 겪어왔던 것 같아요. 공연장 빌리고 할 때.

조언을 구한다고 질문을 주셨는데 사실 조언을 드리기는 힘들어요. 왜냐하면 저희도 계속 배워나가는 입장이고 뭘 해야 된다, 우리가 안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걸 만들어나가야 된다. 이런 것들을 배우는 건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요.

2)루인(트랜스/젠더/퀴어 연구소,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활동가)님의 발제문 <퀴어 공간을 기록하기, 기록한 퀴어 공간을 전시하기>

Q. 안녕하세요? 말씀 잘 들었습니다. 퀴어락 전시의 특수성 혹은 그때의 상황이 굉장히 개방적인 위치였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또 퀴어에 대한 기록물 자체가 적다 보니까 어떤 사람, 혹은 어떤 상황에 대해서 퀴어랑 관련된 그런 습관이나 인물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상상을 하게 되기도 하는데 그런 과정 자체도 일종의 확실하게 증명되지는 못하기는 하겠지만 퀴어적인 시간이나 공간을 만드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것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루: 말씀해주신 것처럼 합정지구라는 갤러리 외부는 통유리창으로 완전 개방되어 있지만 또 빛이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지는 않는 구조에요. 그런 개방성이 있었고 그래서 그 공간 자체가 퀴어하다기보다는 특정한 맥락에서 퀴어 공간이 창출되고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일 수 있죠. 이것을 산발적으로 여기저기서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있고요.

또 ‘역사를 퀴어링하기’는 사실 많은 역사연구하는 분들이 하고 있는 작업이기도 하죠. 어떻게 특정한 상황들, 행동양식들을 가지고 다른 식의 사회적 상상력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늘 우리 한국사는 이랬다, 한국사회는 이런 사회야, 한국사회는 동성애 청정국이다’라는 상상들에서 그것이 아닌 흔적들을 계속해서 발굴해내는 경험이 중요한 것이죠.

이 사람들이 이때까지 “퀴어다! 아니다!”가 아니라 규범성에서 벗어나는 조직들로 한국 역사를 재구성해 나가는 것작업이고 그것이 오늘 주제인 ‘어떻게 퀴어공간을 창출하고 재구성해나가는가’와 같은 작업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3)우야(언니네트워크)님의 발제 PPT

Q. 저는 신공 세대가 아니라서 궁금한 게 너무 많은데, 지난 번에 <레즈비언!> 전시가 너무 좋았거든요. “아, 우리 선배들은 이렇게 살았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지금은 조금 세대가 단절되어 있어서 그전과 지금의 문화가 잘 교류가 되지 않는, 예를 들면 용어의 차이라든지, 그런 걸 되게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 맥락을 모르고 그냥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래서 뭔가 이 세대를 연결할 만한 게 기록이라는 생각이 저는 들어서 이런 세대 차를 극복할 방법 같은 걸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우: 사실 퀴어운동이라고 하는 것에서의 대다수는 동성애를 기반한 운동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성적지향을 우선시했던 느낌이 있어요. “내가 누구를 좋아하냐. 누가 나를 좋아하냐”, 이런 부분들. 그런데 지금은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성별을 택할 것인지” 라는 물음으로 저는 세대가 바뀌고 있다고 생각해요. 타인에서부터 시작돼서 나를 고민하기보다는 그냥 나 자체에서 고민하는 세대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세대의 변화라고 하는 게.

예를 들면 아까 가문 안에서도 엄마, 아빠가 있었고요. 그런데 이 가문을 유지하는 것 안에서도 아빠랑 딸이 사귈 수 없고. (웃음) “어떻게 오빠랑 너가 사귀니?”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들이 작동하는 거죠.  가족공동체가 안전하지 않고 신뢰할 수 없으니까 대안가족을 만들었지만 이 대안가족 안에서도 저희가 할 수 있었던, 배워온 방식은 이분법적 사고였다고 봐요. 그러면 그 안에서 다시 가족이 유사형태로 들어가는 거죠.

그런데 사실 지금은 ‘부치’냐, ‘팸’이냐, 라는 게 중요하지 않잖아요. ‘단머부’나 ‘긴머부’냐 이런 것도 사실 중요하지 않구요. 머긴부냐, 긴머부냐, 이런게 엄청 중요했던 시기가 있었고, 그런데 이후에 그런 것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그냥 ‘나는 나인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머리를 기르고 싶으면 기르고 자르고 싶으면 자른다’, 라는 걸로 바뀌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보다 더 오래전의 레즈비언 선배들은 ‘바지씨’, ‘치마씨’라고 하고 아예 ‘집사람’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었고. ‘비투비’ 커플임에도 불구하고 누가 조금 더 사회적으로 여성과 가까워 보이냐에 따라서 ‘제수씨’라고 부르기도 하는 형태를 마주하기도 하고 하면서 저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사실 그렇게 살아왔던 거예요. 거기에서의 문화로 본인이 창출해낼 수 있는 최대한의 퀴어성을 발휘해낸 거죠. 지금 우리의 시각으로 “어떻게 저게 퀴어한 거야? 어떻게 그런 말을 쓰실 수 있어요?” 하는 건 어렵다고 봐요.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자기가 어떻게 이걸 사유하고 있는지 논의하는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하죠. 그러니까 신촌공원에서 팬코스했던 걸 흑역사로 안 남기는 것. 내가 레즈비언을 팸부치로 엄청 나눴다거나 단머부, 긴머부를 엄청 과열돼서 이야기했었던 사람이라는, 내가 그 시절을 그렇게 향유했다는 것을 드러내야 그 다음 세대가 그것들을 읽어내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더 많은 개인들이 자기 삶을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흑역사들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Q. 신촌공원 세대가 팬코스를 하는 분들이 남성아이돌을 따라하고 거기가 ‘부치 양성소’였다는 걸 들은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저희 때는 사실 여성아이돌, 그러니까 뭐 소녀시대도 데뷔를 했었고 그 전에 천상지희가 여성팬픽, GL팬픽의 거의 메카였는데 신촌공원이 그때도 있다고 들었는데도 여성아이돌 팬픽이 아니라 남성아이돌들의 팬픽, 퍼포먼스가 신공과 되게 많이 얽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예측하기로는 이 안에서조차도 남성성의 헤게모니가 더 강하고 롤모델을 여성으로 설정하는 게 아니라 남성 아이돌로 설정을 해서 그거를 따라하고 우상화했던걸까. 레즈비언이고 여성끼리 좋아하는데도 남성끼리의 성애가 적극적으로 들어오는 것들이 되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런 부분들이 저는 명확하게 보이지가 않아서, 어떻게 그런 관계성들이 생기는지.

우: 저는 그 고민을 엄청 많이 했거든요. 왜 나는 남성이 되고 싶은가. 사실 저는 10대에 스스로를 거의 남성이라고, 그러니까 트랜스젠더라는 말도 몰랐고, 남성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고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팬코스나 신공이었던 거예요.

왜 그런가 생각해보면 전 여자가 아닌 느낌이었거든요. 사회적으로 여성이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에 저는 맞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여자는 이래야 돼, 여자라면 저래야 돼”라는 어떤 고정관념이 있고 그걸 저한테 계속 이야기하는데 “나는 여자가 아닌데?” 라고 되는 거죠.

그러니까 사실 우리가 여성, 남성이라고 했을 때 게이가 여성스럽다, 혹은 게이가 끼를 떤다라고 하는 것에 “으으” 이러는 사람들이 있고 혹은 여성들이 보이시하게 되면 “멋있다!” 라고 이야기를 하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더 여성스럽게 행동하면 “쟤 공주병이야?”라는 말들이 있었고. 이런 식으로 ‘여성적인’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게끔 하는 것이 문화적으로 작동했던 부분도 있죠. 내가 이 남성아이돌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남성아이돌처럼 되고 싶어하는 동경도 같이 발휘됐다고 생각해요.

사회적 수행에 대한 롤모델이 잘 없었다고 봐요. 흰색 천사, 요정옷을 입는 SES나 핑클보다 부치양성소가 더 편했거든요. 이렇게 내가 어떤 모습으로 있어도 괜찮다고 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들이 주변에는 없었다가 이 공간에 오면 그런 게 발휘되는 거죠. 그래서 남성성, 여성성, 이렇게 읽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그런 시기였던 것이죠. 부치라고 했던 게 사실 팸이라는 것보다 훨씬 서사가 많은 거죠. 왜냐하면 나를 설명해야 되는 길들을 더 많이 만들 수밖에 없어요. 여성이 아닌 느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과 여성이 아니라고 하는 걸 알아듣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으니까.

Q. BL팬픽을 소비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인가요?

우: 저는 김태우가 되고 싶었는데, 그리고 안데니를 좋아했어요. 제가 안데니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했을 때 사실 그것이 남성은 아니었거든요. 어쨌든 BL 서사 안에서 저는 김태우가 되었고 안데니와 연애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죠. 고백하자면 저는 비투비였거든요. (웃음)

저는 사실 GL을 아직도 잘 못 보고 머리 긴 여성 둘의 서사를 잘 보지 못해요. 그러니까 그게 불편한 거죠. 나 같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BL이 좀더 나를 동일시할 수 있는 매체라고 저는 생각해요. 나와 더 유사한 서사들을 콘텐츠에서 찾고 싶었는데, 그 시절 저에는 그게 BL밖에 없지 않았나. 그러니까 지금이야 여러 모양의 여성 서사들, 터미네이터 같은 게 있잖아요. 그 때는 없었거든요.

또 BL이라는 건 내가 서사를 창조해낼 수 있잖아요.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잖아요. 씬이나 여러 가지를. 그게 같이 작동했던 것 같아요. 꼭 남성서사라기보다 되게 주체적인 서사가 될 수도 있고요. 그 시절에 우리의 서사를 담아내는 콘텐츠가 과연 많았느냐로 질문을 바꾸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 시절에 나의 삶을 담아낼 수 있는 콘텐츠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었는가로 질문을 좀 바꿔야 되지 않을까.

Q. 저는 BL에 딱히 끌리지도 않고 GL도 딱히 끌리지 않으니까 트랜스물을 보고 욕구를 채우기는 했어요. 그러면서 디나이얼로서 살아오니까 좀 경험적으로 계속 단절이 있는 것처럼 많이 느껴졌어요.

시스게이나 시스레즈비언으로 이야기되었던 사람 중에서도 논바이너리의 수가 적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내가 생각하는 내 주관적으로 내가 언제부터 퀴어였나, 나에게 퀴어적인 삶이란 무엇인가, 어떤 부분이 분기점인가. 이것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의문이 들었어요.

우: 자기 삶에서 언제부터 퀴어로 정체화를 했냐, 이거는 사실 누구도 정확히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가 살아가는 이 순간 모두를 의미화할 수는 없거든요. 요즘은 나의 성적 정체성과 지향성을 말하는 언어들이 되게 많아졌잖아요. 나를 설명하고 내 이름이 되는 언어들이 많이 생기는 건 엄청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언어들이 사실 그전에는 없었던 거죠. 팸, 부치 말고 ‘전천’이라는 단어가 생겼어. 다 된다고, 막. 엄청 중요해. 그게 진짜 엄청난 단어였던 거예요.

요즘은 내가 어떤 감정 상태, 어떤 지금을 보내고 있는가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들이 엄청 많아졌는데 사실 사회는 아직 남성, 여성도 모르고 있는 거예요. 이걸 “사회가 너무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봐요. 왜냐하면 이 사회는 그렇게 이루어져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남성, 여성으로 너무 견고하게 오래 있었고 그 안에서 퀴어들이 계속 퀴어한 어떤 것을 사유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래서 언어들이 만들어지고 있는거죠.

그래서 이 언어를 만들어나가고 사람들에게 계속 전파하는 건 엄청 중요한데 슬프지만 사람들이 못 알아들을 수 있어요. 못 알아들을 수 있어요, 사람들이.

그리고 정체화라고 하는 것, 제가 오늘은 이러고 있지만 어느 날은 풀 세팅하고 화장하고 치마 입고 다니기도 하거든요. 그러면 친구한테 물어보죠. “오늘은 내가 남자야? 여자야?” 물어보면 친구들도 대답하지 못하죠. 그냥 저는 저니까요. 그날 어떻게 표현하고 싶었는지에 따라서 달라지는 저니까요.

그래서 사실은 이 언어들이 어느 순간 없어지는 때가 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왜 이렇게까지 라벨링을 해야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그래서 저는 저를 설명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서 이렇게 많이 설명하면서 살고 있어요.

그러니까 제 이야기들을 누군가한테 전했을 때 비슷한 삶의 부분들을 마주하게 하는 것이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런데 그런 걸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거죠. 퀴어 안에서도 마찬가지죠. 게이로만 살아왔고 남자랑만 만나왔고 남자로밖에 살아오지 않았던 어떤 사람은 여성의 삶을 이해하지 못해요.

그리고 내가 여성인가 남성인가를 한 번도 고민하지 못했던 사람한테 “왜 이렇게 퀴어하지 않아?” 하면 그 사람들은 정말 힘들어하잖아요.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거예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진짜 많거든요.

그래서 “너 나빠, 너는 생각도 못 하는 애니까 진짜 무식해.” 이런 방식이 아니라 이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게 할 거냐는 거죠. 맨날 물어보죠. “너 치마 입고 다니는 거 괜찮아? 맨날 화장하는 거 괜찮아?” 이런 것들을 물어봐 주는 누군가. 그러니까 질문을 해서 내가 어떤 게 더 편한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어떤 이름으로 사는 게 더 편한가를 해주는 것. 그래서 저는 이렇게까지 고민하지 않아요.

내 설명을 사람들은 못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내가 설명을 잘 못 해서가 아니다, 이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고 못 알아차리는 거다, 를 늘 가지고 있어야 된다고 보거든요. 너무 슬퍼하지 말자.

늘 슬퍼요.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되지 하는데 너무 슬프지만 또 여기 오면 이렇게 알아듣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신촌공원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내 이야기를 집안 사람들한테 비밀스럽게 말하지 못했고 친구들한테도 말할 수 없는 게 있다가 어떤 공간에서 내 서사를 이야기했을 때 유사한 서사로 받아쳐 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할 것인가.

그래서 모르는 사람이나, 완전 반대인 사람의 삶에 뛰어들어서 그 사람들한테 나를 계속 설명하는 것보다 나랑 빨리 같은 사람들을 만나서 어느 정도의 공동체 안에 있는 게 되게 중요하다. 그것부터 시작을 해야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야님이 한국사 연표에 레즈비언 역사를 넣어 함께 설명했을 때, “퀴어가 동떨어져서 존재해온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흐름 안에서 언제나 함께 존재해왔다”고 이야기했을 때 뭉클해진 기억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퀴어한 시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을 모든 사람들에게, 해피 뉴 이어!

(공론장 리뷰 끝)

*글 : 2019 N개의 공론장 아키비스트 그룹 금혜지 에디터
*사진 : 2019 N개의 공론장 아키비스트 그룹 전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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