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N개의 공론장⑪]「총학생회, 생존할 수 있을까」사후인터뷰

분류
행사리뷰
날짜
2020-01-03

1월 중순 즈음에는 대학교 합격자 발표가 나기 시작한다고 하네요. 지금은 입시 과정에서 언제 뭘 하는지 검색해보아야 겨우 감이 잡힐 정도지만, 대입이 마지막이자 유일한 목표였던 때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것은 아주 많은 혼란의 시작일 뿐인데도요. 어쩌다 대학에 들어갔다면 가장 의미 있는 일 중 하나는 학생 자치를 경험하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사회의 모양과 내가 서있는 곳의 위치를 파악하고 삶의 방향을 가늠하는 일. 저에게는 그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공론장 리뷰 읽기)

공론장 행사가 끝난 후 최희윤님과 서준영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Q. 당일 행사 분위기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요. 플로어에서 질문이 많이 들어왔나요?

A. 최희윤(이하 최): 플로어 분위기에 시동을 거는 시간이 10분 정도였고 그 후에는 어디서 끊어야할지 모르겠을 정도로 계속 대화가 이어졌어요. 사실 플로어 논의보다는 발제에 조금 더 신경썼습니다.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발제 자료와 내용이 너무 광범위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발제에는 총여학생회 내용이 따로 없었는데 테이블에서 많이 논의가 됐습니다. 총여에 관심 있다는 사람들이 신청서에 굉장히 많았어요. 발제 때 다루고 싶었으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최대한 너무 남성 위주로 흘러가지 않도록 노력했지만 부족했죠. 제가 다녔던 학교의 총학생회는 52대째인데 이번에 총학생회장 후보로 출마한 여성분이 당선되면 역대 2번째 여성 회장이에요. 굉장히 남성중심적이죠.

여대의 회장을 불러오는 건 총여 논의를 하기에 충분치 않은데, 거버넌스의 논리로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는 사람은 많아도 당사자성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적고 저희의 섭외력 부족이기도 합니다. 주최자가 남성으로 이뤄져 있기도 하구요, 공론장의 의미를 살리려면 여성 패널들을 최대한 많이 불러야 한다고 이야기했는데 막상 섭외하려니까 정말 어려웠어요. 그 점이 많이 아쉽고, 다행히 테이블에서 추가적으로 논의가 되었지만 깊은 논의는 하지 못했습니다. 내년에도 N개의 공론장을 청년허브에서 하게 된다면 총여학생회를 단독으로 해봐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저희 기획에서 한 파트로 들어가기에는 너무 큰 주제이기도 하고요.

Q. 저도 총여학생회 논의 순서가 따로 없는 게 조금 아쉬웠어요.

A. 서준영(이하 서): 전시와 공론장에서 모두 총여학생회 구성원들을 섭외하고자 시도했는데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았어요. 전시 같은 경우에는 전시 기획의 전체적인 맥락이 뚜렷하게 여성주의적인 방향이 보이는건 아니기도 해서, 기획 단계에서 참여의 이유를 설득하기에 어렵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저희 학교만 해도 총여가 폐지된지 약 10년이 넘어요. 제가 폭넓게 활동하지는 않아서 섭외하고자 주변에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없었고요. 제가 다니는 학교 총여 활동 같은 경우는 옛 기록 속에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때 폐지에 대한 논의가 지금 나오는 이유와 하나도 달라진 게 없더라고요. 총여가 왜 없어졌는지 너무 알고 싶어서 기록을 찾아봤더니, “왜 여성만을 위한 투표가 필요하냐, 총학생회에서 남자여자 다 하면 되지..”이런 반발들이 있더라고요. 지금이랑 너무 똑같아서 놀랐습니다.

총학생회의 거버넌스에 포함되지 못하는/않는 여성주의 동아리, 단체들이 있잖아요. 그런 분들도 함께 모셔보고자 생각했었는데요. 잘 되지 못한게 학생회를 이야기하는 맥락에서 섭외하려고 하면 우리가 ‘학생회’로 호명될 수 잇나?라는 의문이 있으신 것 같아요. 저희 학교의 경우에도 여성주의 동아리가 정식 동아리로 승격하려고 꾸준히 동아리연합회에서 여는 회의에 참여했어요. 그런데 동아리 회장들은 아무래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군대 갔다 복학한 남성들이 많거든요. 여성주의 동아리 승격에 계속 반대표를 던지는 거에요. 학생회도 마찬가지고요. 학생회 구조 안에서는 여성주의가 배척당하고 학생회에 대한 불신이 쌓이게 되는 건데요. 그런 맥락에서도 섭외의 어려움과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Q. 그 외에도 두 분이 생각하기에 중요한 논의는 어떤 것이 있었나요?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나 이야기를 공유해주세요. 

A. 최 : 가장 공감됐던 부분은, 숙대 회장님이 학생회가 얼마나 엉망이었는지에 대해 말할 때 참여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감했어요. 중요한 논의였다기보다는 씁쓸했죠. 회의 구조 엉망이고, 중운위 15분하고 끝나고, 단운위 회칙 없는 데가 10개 단과대 중 9개나 되고.. 제가 다니던 학교도 그랬거든요. 심지어 법대도 내부 규칙이 없었어요. 규정을 다루는 곳에 규정이 없다니.. 유실이 됐거나 아예 없는거죠. 제가 일하던 총학에는 5년동안 회칙이 3번 정도 바뀌었어요. 근데 그걸 반영을 안 해놓은 거에요. 그래서 회의록을 보면 분명히 바뀌었다는 기록은 있는데 회칙이 5년전과 바뀐게 없고 그랬어요.

실수라고 하기에는 정도가 심하죠. 제가 이걸 제대로 잡기 위해서 순수하게 든 시간만 2년 반이에요. 시행착오까지 하면 현재진행형이죠. ‘아 이게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었구나’라고 알게된 것 자체가 의미있었어요. 어쨌든 다른 학교 사람들과 사례를 공유하는 게 좋았어요. 저도 예전에 서울시 동아리연합회 연대를 주도해서 만든 적이 있는데 그때 확실히 자기 학교 자치에 대한 아이디어도 생기고 학교에 요구할 기준도 생겨서 좋았거든요.

서: 학생회 구성원 재생산에 대해 계속 논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사람을 갈아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저도 그랬고. 장학금을 주는 곳도 있지만 생계 유지도 어렵고, 미래를 도모하지 못하죠. 공론장 때 나온 논의 중에, 총학 구성원에게 노조 상근자처럼 제도적으로 활동 기간을 보장해줘서 사람들이 좀 덜 갈려나가게 하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최: 그리고 ‘에타’ 얘기도 많이 나왔는데, 에타를 공론장의 전부로 만들면 안된다는 게 기억에 남아요. 여기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구성원들에게 알려줘야 한다는 얘기가 의미 있었습니다. 그 어플이 유일한 공론장이라는 인식을 주면 몇몇에의해 여론이 선동될 수도 있어요. 추천 시스템이 있고 전부 익명이다보니까. 맘먹고 아이디 만들어서 하면 그런 조작이 가능한 구조죠. 댓글도 많이 달려봐야 100개 정도인데 그것이 여론인 것처럼 인식되기도 하니까요. 다른 공론장을 만들어서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는 이야기에 공감했습니다.

Q. 되게 <라디오스타>적인 질문인데, 두 분에게 학생회는 어떤 의미인가요?

A. 최: 제가 처음엔 학보사 기자를 했거든요. 그런데 별로 할 수 있는게 없는 거에요. 싸워볼까 싶으면 선배들이 안된다고 하고.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은 직접 개입해서 실질적인 변화를 만드는 거였어요. 학생회 소속이 아닌 상태에서는 공적 사태에도 개입하는게 거의 불가능한거에요. 학칙에 보면 일반 학생들도 의견문을 내서 전학대회에 참여할 수 있는 규칙이 있긴 했지만 중운위에 들어가서 말해도 발언권이 막히는 거에요. “회장도 아닌데 쟤 말이 뭐가 중요해” 이런식의 반응이 있구요. 그래서 학생회에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발짝도 못 나가는 것보다는 다음 사람을 위해서 토대를 만들어주고 다른 사람들이 시작할 때는 최소한 나보단 앞에서 출발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활동했죠. 저희 학생회칙도 엉망이었거든요. 맞춤법부터 시작해서 항목끼리 막 충돌되고, 현실성 없는 얘기들도 많고. 규정 개정 프로젝트를 열면서 고대에서 총학생회칙 바꿨던 사람들이 남겨둔 아카이브에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어떤 과정을 거쳐서 바꿨다,  전학대회 때 어떤 회칙이 왜 통과되지 못했다, 이런 내용을  700페이지 책과 PDF로 남겨둔 기록이 있는거에요. 외국 학생회 회칙부터 학보사 50년치 뒤져서 재개정 이력까지 분석한 기록이에요. 누군가 해 놓은게 있었기 때문에 저희도 한발짝 내딛을 수 있었어요.

또 동아리연합회 회장 때 동아리실 개방에 대한 협상을 잘 이끌어낸 적이 있는데, ‘이렇게 활동하면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구나’라는 피드백을 다른 학생한테 들었을 때 정말 성취감이 들었어요. 정치,  거버넌스에 대한 효능감을 알게된 거죠. 이런 경험을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들은 승리의 기억이 남고, 이건  아주 중요한 경험이에요. 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계속 남아 있다는 게 앞으로도 총학생회가 존재할 여지가 있다는 증거겠죠.

서: 저는 학생회가 민주주의 교육의 장이라고 생각해요. 현실 사회에서 직접 의제에 참여해 뭔가 바꿔내기에는 어려움이 있잖아요. 학생회는 그게 가능한 규모라고 생각해요. 저도 총학생회칙 개정에 참여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인권위원회 준비하시는 분들을 만난다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소수자 의제를 보다 반영하는 쪽으로 회칙을 개정하는 나름의 실천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민주주의를 배우는 장으로 활용했어요. 실제로 제가 참여해서 바꾼 회칙이 현재 반영되어 사용되는데요. 이렇게 내가 속한 공동체를 좀더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경험이 학교 밖 사회에서도 내가 속한 공동체를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한때는 냉소적으로 생각하고 지금도 그런 마음이 없지 않은데, 잘 하는 경험을 계속 쌓아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냉소적인 건 냉소적인 데서 끝나는 경우가 많거든요. 거기서 벗어나서 계속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동료들과 소통하던 경험 때문인 것 같아요. 힘들 때마다 ‘버텨봐라, 좀더 해보자’ 기운을 넣어주는 희윤 형이 있어서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처럼요. (최: 제가 제일 나쁜놈이죠..) (웃음) 누구에게는 그런 기운이 되는 자리었을지도 모르겠어요.


학생회는 무관심과 냉소로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는, 내가 움직인 방향으로 조금은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방법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전국의 학생회실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든 분들께 존경과 응원을 보내며! 공론장 아카이브를 마무리합니다.

(공론장 이후 인터뷰 끝)

*글 : 2019 N개의 공론장 아키비스트 그룹 금혜지 에디터
*사진 : 2019 N개의 공론장 아키비스트 그룹 전소영 에디터

더 많은 N개의 공론장 글 보기(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