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N개의공론장⑯] 「퀴어-공간, 기록하기?!?」 사전인터뷰

분류
행사리뷰
날짜
2020-01-02

종로, 이태원, 홍대, 신촌, 합정 상수 망원, 잠실, 신림. 누군가에게는 그저 지하철 역 이름의 나열이겠지만 서울에 사는 퀴어들에게는 어떤 간판 하나쯤은 떠오르는 동네들이 아닐까요. 서울에 처음 왔을 때, 너무 큰 건물들과 너무 많은 사람들에 압도되면서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에서 느껴지는 안정감과 해방감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눈치보지 않아도 되는 물리적 기반이 퀴어에게는 중요합니다. 특히 이 좁고 비싸면서도, 너무 여러가지가 합의되지 않은 도시에서는요. 여기서 우리는 일년에 하루 광장을 사용하는 일에도 수많은 ‘반대’를 마주해야 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좁게나마 설 곳을 만들고 있기도 합니다. 서울퀴어콜렉티브의 제니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인터뷰이: 서울퀴어콜렉티브 제니님
인터뷰어: 금혜지 에디터(2019 N개의 공론장 아키비스트 그룹)
인터뷰 일시: 2019.11.27. 오후


Q. 반갑습니다. 이 주제는 굳이 제가 맡는다고 했어요. 트위터에서 서울퀴어콜렉티브를 팔로우하고 있는데, 로고도 너무 예쁘고 워낙 관심이 있는 주제라(웃음)

A. 제니: 저도 드랙킹콘테스트와 허볼 소식 잘 보고 있어요. 사전인터뷰 한다고 긴장했는데, 너무 반갑네요! 로고는.. 저희 팀원중에 이렇게 물리적인 공간 말고도 종이 안에 구성되는 공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어요. ‘건축을 공부했지만, 시각디자인도 계속해서 하고싶어..’라고 했던.

Q. 저런.. 그래도 알게 된 게 어디에요… 그러면 팀 이야기로 넘어가볼까요? 서울퀴어콜렉티브는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모인 그룹인가요?

A. 처음에 조직을 만든 건 권욱이라는 영상작가와 저에요.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 안의 퀴어 공간, 게이바나 레즈바나 게이클럽이나 트젠바, 이런 공간들을 기록해나가는 걸로 관련 연구 활동을 촉진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작했어요.

저희가 누구한테 메일을 쓰면 늘 첫번째 문단이 “서울 대도시권에 남아있는 퀴어의 흔적을 기록해서 연구와 활동을 촉진시키는 그룹” 서울퀴어콜렉티브입니다, 이렇게 시작해요. 제가 서울에서 도시 공학을 연구하는데, 퀴어에 관련한 기록이 아무 것도 없는 거에요. 보고 배울 수 있는게 미국, 유럽 이런 외국의 기록 뿐인데 이걸 보면 예를 들어 도시에 퀴어 공간들이 어떻게 변했고, 어디에 많이 뭉쳐 있었고, 여기로 옮겨갔고 이런게 60년대부터 기록이 되어 있어요. 한국에는 그게 계속 기록이 안 되는 거죠. 그나마 얘기되는 게 게이바 뿐이고, 사실 정확한 데이터라기보다는 ‘썰’, ‘어디 잡지에 나왔다’ 이렇게 전달되는 경우가 많지 공식적인 기록이 없다시피 해요.

그래서 연구 활동에 초점을 두고 기록을 하고 있어요. 또 <친구사이>에 17년부터 지금까지 <Seoul for all: 모두를 위한 서울>, 성소수자를 주제로 계속 글을 쓰고 있어요. 그걸 계기로 동료들을 하나둘씩 모았고 조직을 만들어야겠다 싶어서 18년도에 콜렉티브를 만들었죠. 활동하면서 청년참 지원도 받고 하다가 마침 이렇게, 큰 프로젝트가 걸려가지고. 저희가 걸린건지 그쪽이 걸린건지 모르겠지만(웃음) 조금 더 풍족하고 규모있게 활동중입니다.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프로젝트 해시태그에 참여하고 있는 멤버는 6명이구요, 직/간접적으로 협조하는 사람들을 합치면 8-9명정도 돼요. 지금 멤버 구성에서 가장 잘, 많이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종로 3가여서 이번에는 그 주제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번 프로젝트가 끝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계속 아카이브 활동을 해 나갈것이지만 동시에 지금 멤버가 영원히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3-4년 뒤에는 새로운 멤버들이 이전 멤버들을 강하게 비판해줄 수 있는 조직이 되면 좋겠습니다. 가봐야 알겠죠 뭐, 1년 뒤에  없어질 수도 있는거구..

Q. 국립현대미술관 프로젝트가 아무래도 의미가 클 것 같아요. 퀴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고 소위 말하는 제도권에 이름을 올린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A. 맞아요, 좀더 제도권으로 들어간 것 같다는 느낌이죠. 최대한 그 후광을 뽕 뽑아야겠다..(웃음) ‘우리를 갈아 넣겠다’ 이런 마음으로요. 제도 안으로 들어가서 퀴어들이 가시화되면 나 혼자서 엄청 버티지 않아도 되잖아요. 상징자본을 얻는 일이기도 하죠. 저희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외부에 컨택할 때 ‘국립현대미술관과 현대차가 지원합니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약간 다르게 보는 것도 있고요.

한국 사회에서 동시대적으로 ‘퀴어’라는 명확한 정체성을 호명한 작업 발표가 최근에 특히 많이 이뤄졌는데, 저희는 이 흐름에 또 어떤 목소리로 연대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고 있어요. 여기에 뮤지엄Museum이란 특수한 공립기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이란 공간에서 이를 수행한다는 건 큰 부담이긴 한데, 또 동시에 그래도 끝까지 잘 마무리해야겠다는 사명감이 더 커요.

동시에 조심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기본적인 전제나 이해도가 다른 경우가 많고, 상대방도 설득해야 하고. 그런 것들이 항상 힘들죠. 이미 어느정도 제도권에 들어간 조직들과의 갈등도 있고요. 처음에 시작할 때, “쟤네가 뭔데 서울 퀴어 콜렉티브야?”이런 물음을 전해 듣기도 했어요. 어떤 분은 퀴어 예술을 다룰 때의 주의사항 이라던가, 혹은 어떠한 매뉴얼 이라던가…를 알려주시려는… 그런 제안도 받았었고요. 저희는 원래 도시나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우리의 관점으로 도시를 기록해보자고 시작한건데, ‘너네는 변방의 퀴어들이니까 우리가 가르쳐줄게’ 이런 식의 이야기를 들어야하나? 싶기도 했죠.

Q. ‘N개의 공론장’을 신청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퀴어에게도 친화적인 공공기관이나 공간을 찾기가 힘들잖아요. 사업을 진행하면서 대관이나 예산 측면에서 현실적으로 청년허브가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청년네트워크’에 성평등위원회에서 활동 했는데, 거기서 우야님을 만나서 이 사업을 알게 됐어요. 그때 인연이 이어져서 이번 공론장의 발제를 맡아주시기도 했죠.

저희가 ‘도시기록과 사회 참여’라는 주제로 첫번째 세미나를 진행했고, 이번 공론장이 두번째 세미나에요. 첫번째 세미나에서는 ‘서울이라는 공간을 기록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사회에 참여한다는 것’의 실천과 의의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도시 공간 기록이 항상 정부나 공공기관의 예산으로 위에서 아래로 이뤄져왔다면, 당사자들이 직접 나설 때는 어떤 것이 중요할까? 이런 주제로요.

이번 N개의 공론장에서는 ‘퀴어 공간’이라는게 도대체 뭘까, 이걸 기록할 때 우리가 주의해야하는 건 뭘까, 이걸 하는 의미와 의의는 뭘까를 세세하게 논의해볼 예정이에요. (금: 맞아요 우리끼리는 또 이런거 엄청 합의해) 여담으로 공론장 심사에 저희가 처음부터 발제자로 섭외하려 했던 루인님이 외부전문가로 오셨다고 하더라구요. 심사에서 ‘이런 주제가 굳이 필요하냐, 사람이 많이 올까’, 이런 질문이 나왔는데 루인님이 퀴어들에게 공간과 기록에 대한 논의가 꼭 필요하다고 말씀해주셨대요.

Q. 퀴어는 퀴어가 돕는다… 정말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제가 참여하는 행사들도 이번에 <여성, 괴물>팀 이름으로 서울문화재단에서 사업을 받아 진행하고 있어요. 내년 1월 전시 프로그램에 루인 선생님을 섭외할 예정이거든요. 얼마전 퀴어락 전시에는 팀원들이 루인님과 함께 작가로 참여하기도 했구요.

A. 진짜요, 정말 좁다 여기… (금: 그러니까요..) 아무튼 다행히 루인 선생님이 와주시고, ‘젠트리피케이션이랑 퀴어가 무슨 상관이냐, 하나만 얘기하지’하는 사람들도 있죠. 퀴어가 아닌 사람은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공간 자체와 공간 간에 존재하는 위계가 아주 중요한 이슈잖아요. 그걸 분리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죠.

저희 팀원들도 퀴어나 공간, 기록에 대해 각자 이해하는 게 있겠지만 파편적일 것 같아서, 세미나를 열어 차근차근 하자는 취지에요. 우리한테 필요한 것이 뭔지를 내부에서만 이야기하지 말고 다양한 사람들, 우리 이전과 동시대에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자는 것이죠. 여기서 나오는 얘기가 정답은 아니겠지만 퀴어들이 주체성을 가지고 공간을 가지는 시발점이 되면 좋겠어요.

Q. 퀴어 그룹 안에서도 다양한 레이어가 있잖아요, 특히 게이와 레즈비언은 LGBT에서 제일 첫 두글자로 묶이긴 하지만 한번에 다루기에는 너무 다른 맥락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위치나 자본이나 모든 면에서요. 우선은 종로 3가에 집중할 예정인가요?

A. 맞아요. 이번 프로젝트 전반은 종로 3가에 집중할 예정입니다. 그 다음에는 좀 덜 복잡한 이태원을 2021년까지 조명하고, 그 다음을 마포쪽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태원은 이미 어느정도 상업 공간으로 변모해서 자본의 논리로 돌아가는 경향이 강하잖아요.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긴 하지만, 저희 안에서도 마포를 먼저 다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논의는 나오고 있어요.

레즈비언 공간의 경우 당장 남녀 소득 격차가 존재하고, 그 가운데서도 게이와 레즈비언의 소득 격차도 있고요. 퀴어 공간은 다른 공간에 비해 자본의 논리에서 더 빨리 사라지게 되기도 하죠. 서울에서 도시재생사업을 과감하게 펼치고 있고 이걸 4-5년 지속할 예정이란 말이에요. 이게 특히나 홍대 쪽에 집중되어 이미 많은 공간들이 없어졌고 그 논리 안에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도 불투명하죠. 그래서 최근 레즈바들이 일반 대중에게 공간을 오픈한다던지 일부는 ‘레즈비언’ 공간이 아닌 ‘퀴어’ 공간으로 확장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 변화가 어떤 분에게는 좋을 수도 있지만 그 공간 밖에 갈곳이 없었던 사람들은 갈 곳을 잃게 되잖아요. 뭔가가 사라지면 그 틈이 뭔가로 새로 채워져야하는데, 이건 그냥 없어지는 거니까. 이런 레즈비언 공간에 대해 당사자성을 가지고 자세히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팀에 있으면 좋을텐데 지금은 한계가 많아요.

Q. 활동을 하다보면 무리하게 되고 번아웃이 오기가 정말 쉬운 것 같아요. 어떻게 대처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A. 정치적인 활동이 돈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우선은 본인의 돈이 들어가는 일이고 나의 노력이 세상으로부터 보답받지 못할 수도 있고. 우리같은 조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안에서 의미를 계속 찾아가는게 아닐까 싶어요.

저희 오픈스튜디오 세미나에서 마지막 질문이 “어떻게 그렇게 계속 기록을 하실 수 있는지, 그거 ‘사람 갈아넣는 일’ 아니냐”는 거였어요. 그 때 드렸던 답변이, 팀원 내에서는 동의하는 분도 있고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는 분도 있지만, 우리가 아예 세상에서 동떨어져 사는 사람들이면 굳이 공공기관에 공모를 낼필요도 없을 거에요.

하지만 우리도 여기서 살아가야 하고 일도 해야 하잖아요. 각자의 생계도 지키면서 활동도 욕심이 나니까 무리하게 되죠. 오로지 싸우기만 하다보면 성과나 논의의 발전은 있겠지만 물질적으로 남는게 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어요. 그래서 더 상징자본을 획득하려고 하는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야 그나마 이 프로젝트에서 손에 잡히는 보람을 느낄 수 있고, 그게 번아웃을 지연시키거나 덜 오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기록을 통해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을까요?

두 개가 있는데, 첫번째는 제도화된 집단에 우리가 만들 걸 내서 동시대에 홍보가 될 수 있게 하고, 더 많은 사람과 함께하는 거에요. 두 번째는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기록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다들 각자 직장이 있기도 하니까요. 단기적인 목표는 ISBN을 받아서 도서 형태로 도서관에 비치하는 거에요. 그러면 조금이라도 누군가의 손에 닿게 하지 않을까 해요.

당장 우리도 남아 있는 데이터화된 공간 단위 기록이 많이 없어서 시작하기가 힘들었어요.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데 그러면 성소수자 숫자도 줄겠죠  제가 살아있을 때 기록을 더 남겨서, 개인적인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제 다음에 연구하는 사람들은 좀더 쉽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제가 연구를 하면서 이전의 기록이 없다는 것 고민을 함께 나눌 선배가 없다는 감각이 되게 힘들었거든요. 제 다음에 할 사람들에게 여러분의 고민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라는 걸 알리고 싶어요. 이후에 누군가 꿈을 품고 성소수자 공간에 대해 연구하고싶다면 저보다는 좀 편하게 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여기저기에서 분투하며 기록하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언젠가는 우리가 합의나 반대같은 것에 부딪히지 않고 당연히 자리를 차지하게 될 거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혹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모든 당사자 운동의 모토는 이미 그런 자유로운 세상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게 기본이 된다”
– 데이비드 그레이버 (David Graeber)

(사전인터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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