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청년허브 10월 특강] 청년, 앎의 기초체력을 기르다 10월 Day. 2 “쓰기의 말들”

분류
행사리뷰
날짜
2019-11-11

청년, 앎의 기초체력을 기르다 10월 Day. 2 "쓰기의 말들"

구분 사회적자원연계 - 인적자원연계 사업
일시 및 장소 2019년 10월 24일 19:00 - 21:00 / 서울시청년허브 다목적홀
강연자 은유 (도서 저자)
협력 유유출판사
참가자 70명
구성 대중강연 4회
기획의도 당장의 취업과 승진에 도움이 되진 않지만, 새로운 삶의 경로를 모색하는 청년을 위한 기초 교양 강연입니다. 도서관 / 미술관에서 앎을 탐구하는 방법, 읽고 쓰는 방법을 안내합니다.

 

 

특강 주요 내용

✅ Intro. 언어와 서사의 힘
✅ 글쓰기, 왜 해야할까
✅ 글쓰기, 무엇을 쓸까
✅ 글쓰기, 어떻게 써야 할까
✅ 글쓰기, 어떻게 시작해야할까
✅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

 

Intro. 언어와 서사의 힘

오늘의 주제 도서는 <쓰기의 말들> 입니다. 이 책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이 사진을 보겠습니다.

당시 인기 많은 예능 프로였던 ‘효리네 민박’에 출연한 박보검입니다. 박보검이 무려 제 <쓰기의 말들>을 TV에서 홍보해주었어요. 박보검이 민박에서 일하다 쉬는데 읽던 책이 이 책입니다. 박보검 효과 덕분인지 1년 3개월 먼저 쓴 <글쓰기의 최전선> 보다 더 많이 사랑받는 책이 됐어요. 그리고 제가 어디 강연을 가면 입구에 항상 이 사진이 붙어 있었어요. 박보검이 읽은 <쓰기의 말들> 저자 은유 작가가 온다.

저는 늘 글쓰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서사’라고 이야기해왔는데요. 이번 사건을 통해서 다시금 깨달았어요. ‘은유라는 사람이 쓴 책’이 ‘효리네 민박에서 박보검이 읽은 책’이란 서사가 부여되었어요. 그로인해 사람들에게 더 각인되어 뿌리내릴 수 있게된 것이죠. 더 크게 해석하면, 어떤 사물, 사람이 풍부한 서사를 갖는다는 것은 힘, 권력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박보검처럼 유명세를 가져야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글을 써야 되는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의 서사를 표현해야 나로서 홀로 설 수 있는 힘을 갖는, 존재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한 자는 누구나 약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작가란,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해야 하며, 동시대의 문제를 폭로하고 경고해야 한다.
– 도리스 레싱

우리 주변엔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언어를 가진 사람들에게 억압 받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수험생에게는 공부가 정말 힘든 일이죠. 실제로 청소년 자살률이 해마다 올라가고 있잖아요. 그런데 공부하는 게 힘들다는 청소년을 보고 선생님과 부모님은 뭐라고 하나요? ‘부모가 해주는 밥 먹고 공부할 때가 제일 편할 때다. 공부해라.’고 보통 하죠. 어른의 언어로 제압당하는 것입니다. 약자의 언어는 통하지 않습니다.

 

글쓰기, 왜 해야할까?

첫째, 나를 나에게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왜 자꾸 화가 나는 걸까?’ 제가 글을 쓰게 한 의문점이었습니다. 엄마로서 육아 돌봄 노동, 가사노동을 하면서 작가로서 집필노동을 하는게 굉장히 바쁘고 힘들었어요. 아이들이 어릴 때는 더 손이 많이 가잖아요. 그게 감당이 안 되니까 자꾸 화가 나는 거예요. 그렇게 힘들 때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나?’, ‘매일 이렇게 화를 내고 살 것인가?’에 대해 정리하고 싶었어요.

글쓰기는 자기 자신과의 대화입니다. 글을 쓰다보면, 생각과 감정을 알게되고, 더 나아가선 욕망과 능력을 알 수 있어요. 우리가 어떤 것 때문에 고통스럽다면 그 고통은 분명히 욕망과 연결이 되어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 ‘나는 꼭 의사가 되고 싶어.’, ‘상위권 대학에 가고 싶어.’ 같은 욕망이 있는 사람이 성적이 안좋으면 괴롭겠죠.

글을 쓰면, 자기 욕망을 천천히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왜 아픈 지 알게 됩니다.

둘째,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글을 써야 합니다.

‘나는 ○○○입니다.’ 혹은 ‘나에게 가난이란, 성공이란, 행복이란, 잘 사는 것이란’ 이런 글을 쓰며 거짓 자아가 아닌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억압당한 자기 정체성이 많아요.

예를 들어, ‘나의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자이었다. 그것을 부끄러워하고 감췄다’라는 글을 쓴다고 가정할게요. 그것을 글로 차분하게 풀어보면, ‘왜 그랬을까? 우리 아버지는 게을러서 그렇게 사셨나? 우리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지하철 첫 차를 타고 열심히 일하러 가는데, 아버지가 계속 가난해. 그러면 그건 아버지 잘못이 아니라 열심히 일해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사회 분배 구조가 잘못 되었네!’ 라고 생각을 전개할 수 있어요. 더 나아가선, 가난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회가 부끄러운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어요. 글을 쓰면 이렇게 자신의 생각과 의견이 만들어집니다. 그렇게 자기 정리가 됐을 때 타인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셋째, 자기 생각과 의견을 가진 시민이 되어, 나와 연결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글을 씁니다.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면 자기 정체성부터 확립해야 한다.”
– 프랑수아 줄리앙 (파리7대학 교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무지하면 불안하거든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불안, 그 불안이 자기 미움이나 타인에게 전달된다는 겁니다.

 

 

글쓰기, 무엇을 쓸까?

“영 아닌 소재는 없고, 내용만 진실되다면, 문장이 간결하고 꾸밈 없다면.”
–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대사

저는 글을 쓰고 싶은분께 뭐든지 써도 되지만 행복한 일보다는 불행한 일 중심으로 쓰라고 권합니다. 불쾌한 일, 속상한 일, 화나는 일 등. 왜냐하면, 행복한 일은 설명이 쉬워요. 반면, 슬프고 힘들고 억울한 일은 설명이 잘 안 돼요.

“당신이 어떤 의무적이고 말 뿐인 시시한 이야기가 아니라 분노하고 있는 것에 관해 쓴다면 그 글은 훌륭할 것이다.”
– 브란다 유렌드

그런 자기 표출에서 자기 성찰로. 힘든 걸 쓰지만 자신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다 쏟아내는 게 글이 되지 않아요. 작가는 사회에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우리 집이 가난해서 너무 힘들어.’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그러면 잘 산다는 게 뭐지?’, ‘가난하다는 게 뭐지?’, ‘나는 왜 평생을 일해도 가난하지?’ 이런 문제의식이 들어 있으면 좋은 글이 됩니다.

 

글쓰기, 어떻게 써야 할까?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 제가 생각하는 글쓰기 원칙입니다. 아래 두가지 글을 비교해봅시다.

[설명하는 글] [보여주는 글]
"나는 기억이 남아있는 가장 어렸을 때부터 여성으로 사유했고 경험했다. 그러다 스무살, 대학 교양과목으로 우연히 만난 페미니즘으로 한번 흔들렸다. 정상가족, 이성애, 성역할 등을 회의할 수 있었다. 그 뒤로 나와 세상에 대해 깨어 있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뼛속깊이 남아있는 잔재들이 무방비 상태에서 올라온다." "2019년 1월 2일, 출근하자마자 사내메신저로 쪽지가 날아왔다.
구청장님께서 신년맞이 인사를 다닐 예정이니 방문하시면 모두 열렬히 환영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오전 중에 구청장님이 우리 사무실에 방문했고, 전직원이 일어나서 박수와 환호로 청장님을 맞이했다. 사무실 복도 양 끝에 일렬로 서서 구청장님과 악수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으면 행사는 마무리된다. 사진을 찍기 위해 모여섰다. 웃고 싶은 기분도 아니고 사진은 더더욱 찍고 싶지 않아서 맨 뒤에 서 있었다.
누군가 말했다. 작고 어린 여직원이 앞으로 나오라고. 20명 남짓한 사무실 사람들의 눈길이 나에게로 쏠렸다. 우리 아빠뻘 되어 보이는 과장님이 내 손을 잡고 앞으로 끌어내려하기에 손을 뿌리치고 뒤로 갔다."

설명하는 글은 뭔가 어려운 단어가 굉장히 많은데 뭘 이야기하는지 명확하지 않아요. 추상적인 단어가 많습니다. 전반적으로 모호하죠.

반면, 보여주는 글은 읽어보면 더 재미있죠. 더 생생하고 필자가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지 잘 보입니다. 이런 식으로 글을 쓰셔야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 수 있어요. 잘 쓴 글은 항상 다음이 궁금해지는 글이 잘 쓴 글이라고 생각을 해요. 뻔한 글이면 우리가 읽다가 스킵해 버리는데 그렇게 구체성이 살아있으면 다음이 궁금합니다.

글쓰기는 자기 경험을 재구성해서 자기 생각을 재검토해보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좀 잘못된 판단을 내린 것일 수도 있고, 진짜 떠나기를 잘했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행위 위주로 상황을 꼼꼼히 써보는 게 중요합니다.

 

글쓰기, 어떻게 시작할까?

글쓰기란 실패 체험이란 말이 있습니다. 글쓰기는 계속 뭘 써봐야 잘 쓸 수 있다는 겁니다. 처음부터 잘 쓸 수는 없어요. 자전거를 탈 때 배울 때 계속 넘어져야죠?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루겠다는 것은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 테드 쿠저(Ted Kooser)

오늘부터 글을 쓰겠다고 결심하셨다면 글 쓰는 시간을 비워두셔야 합니다. 우리의 일과는 다 뭐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글을 쓰겠다고 하면 그 일과를 빼야 합니다. 평일이 좀 힘들 것이니, 그러면 주말에 여섯시간 정도 글 쓸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시간을 확보했으면 첫 문장을 너무 거창하게 시작하겠다고 하면 글의 진입이 안 됩니다. 그래서 뭐라도 쓰시고 나중에 첫 문장 닦아주면 됩니다. 첫 문장이 안 중요한 게 아니에요. 항상 첫 문장에는 그 글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방향이 담겨 있어요. 첫 문장이 중요하지만 그거를 너무 심사숙고 하면 글에 못 들어가니까.

우리가 글쓰기에 대해서 갖고 있는 오해는 자신의 머릿속의 생각을 프린트 하듯이 글을 쓴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게 아니라 글을 쓰면서 기억도 복원하고 팩트도 체크하고 판단도 내리는 게 글쓰기입니다. 그래서 힘들죠. 그래서 첫 문장을 빨리 쓰고 그 다음부터 용기를 내야 합니다. 첫 줄을 쓰는 것도 용기, 내가 쓴 걸 남한테 보여주고, 자기 무지를 인정, 약점과 결핍, 글에 대한 평가를 받아들이는 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글을 쓰는 것도 용기입니다.

“있어도 괜찮은 말을 두는 너그러움보다, 없어도 좋은 말을 기어이 찾아내어 없애는 신경질이 글쓰기에선 미덕이 된다.”
– 이태준

글은 쓰는 게 아니라 고치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설가도 소설 쓰는데 1년 걸린다고 하면 6개월 쓰고 6개월 퇴고합니다. 글 쓰면서 퇴고할 때, 첫 단락 빼고 두 번째 단락부터 읽어보세요. 그래도 말이 돼? 그러면 첫 단락 다 들어내도 되는 거예요. 글쓰기는 지면 안에 경제적으로 써야 합니다. 중요한 것만 들어 있어야 해요. 모든 글쓰기가 그렇죠. 정보가 너무 없으면 이해가 안 되고, 정보가 너무 많으면 지루해요. 적절한 정보를 주는 게 포인트입니다. 아까 말했듯,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걸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쓰면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발견한다. 글을 쓰면서 자기의 무지도 알게 되고요. “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 그거를 나도 잘 모르는구나.” 이거를 알게 됩니다.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

좋은 글은 글쓰기 존재의 풍요에 기여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이 말하는 ‘나쁜글이란 무엇인가.’를 함께 보겠습니다.

“나쁜 글이란 무엇을 썼는지 알 수 없는 글, 알 수는 있어도 재미가 없는 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을 그대로만 쓴 글, 자기 생각은 없고 남의 생각이나 행동을 흉내낸 글, 마음에도 없는 것을 쓴 글, 꼭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도록 쓴 글, 읽어서 얻을 만한 내용이 없는 글, 곧 가치가 없는 글, 재주 있게 멋지게 썼구나 싶은데 마음에 느껴지는 것이 없는 글이다.”
– 이오덕

저는 그 중 3, 4번째인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글을 그대로만 쓴 글’, ‘자기 생각은 없고 남의 생각 흉내낸 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기 생각이 두드러지고 욕먹는 거에 대한 공포가 있습니다. 써도 그만인 글, 안 써도 그만인 글은 안 써도 돼요. 그래서 거칠더라도 자기 생각, 진짜 이게 내 생각인지 검토해보고 쓰는 게 좋아요. 애매한 글 쓰지 마세요. 재주 있게 멋지게 썼구나 싶지만 마음에 느껴지는 게 없는 글도 많죠. 막 화려하게 글 쓰려고 하고요.

글을 잘 쓴다는 건 고로, 자기 글을 믿고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을 꾸준히 연마해야만 가능합니다. 그렇게 글을 써가면, 점차 우리는 더욱 자유로워지는 법, 생각을 말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또한 자신에게 거짓말 하지 않는 것 즉, 가식과 허세를 부리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되고요.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에 자기를 끼워 맞추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글 쓰며, 내 고유의 삶의 기준과 가치를 성찰하게 되면, 자유로워지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방법도 배우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하고 그 처지가 되어보는 것, 그게 작가의 일이다.”
– 아모스 오즈

글쓰기는 나의 고통에서 출발하지만 그 고통은 사회적 관계 안에서 오기 때문에, 글쓰기는 자연스럽게 타인의 입장도 쓰는 겁니다. 그래서 그 처지가 되어보는 게 작가, 글 쓰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다.

나쁜 글은 이분법이 너무 분명합니다. 나는 다 옳고, 저 사람은 다 나빠. 약간 이런 식으로 선악이 너무 분명한 글은 좋은 글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좋은 글일수록 타인의 입장이 다양하게 녹아들어 있습니다. 그런 글은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