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N개의 공론장⑦]「법 밖의 가족이 겪는 차별의 긴 목록」 사전인터뷰

분류
행사리뷰
날짜
2019-11-02

지금, 내가 원하는 가족을 찾아서

내 안에 있는 그 집을 찾아서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찾아서
내가 사랑할 그 집을 찾아서
내가 되고 싶은 그 가족을 찾아서
– 음악가 이랑, <가족을 찾아서>

‘내가 살고 싶은 가족을 찾아서’

이 문구 앞에서 덜컥 막막함을 느낍니다. 내가 살고 싶은 가족은 무엇일까? 지금껏 왜 가족이 필요했지? 찾아나선다는 건 쉬울까, 어려울까? 혼자 살아가는 건 비정상인가? 비혼이어도 가족이고 싶다면? 지금 당신에게 ‘가족’은 굴레인가요, 혜택인가요. ‘가족’은 나를 보호하나요, 저지하나요. 내게 필요한 가족은 무엇일까요. 내가 원하는 가족 관계란 무엇일까요.

생각하는 답안이 무엇이든, 지금 우리의 인식과 사회제도 깊이 뿌리내린 이성애 혈연 중심의 ‘가족’ 개념은 완전한 답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군가는 그러한 가족 형태를 ‘나’의 의사와 결정을 한 번도 거치지 않은 채 온전히 감내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른 형태의 가족을 사는 누군가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권리를 박탈당하기도 하니까요. ‘개인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가족 관계를 구성할 수 있고, 이것은 차별의 근거가 되어선 안 된다’ 는 법의 목소리는 어떻게 도래할 수 있을까요? N개의 공론장 일곱 번째 이야기, 〈법 밖의 가족이 겪는 차별의 긴 목록 : 다양한 관계가 평등하게 살아가는 도시는 가능할까?〉를 준비한 가족구성권연구소의 공론장이 궁금한 이유입니다.


인터뷰이: 통깨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원)
인터뷰어: 정아람 에디터(2019 N개의 공론장 아키비스트 그룹)
인터뷰 일시: 2019.10.08 청년허브 창문카페

Q.  ‘가족구성권연구소’가 처음 ‘가족구성권’이라는 상상을 어떻게 시작했는지 궁금합니다.

A. 1948년에 만들어진 유엔 세계인권선언에 “가족을 구성할 권리”라는 말이 나와요. 국적이나 인종, 종교가 다른 두 성인이 가족을 구성하는 것이 인권으로서 보장되어야 한다는 조항에서 언급합니다. 당시에는 흑인과 백인 간 결혼을 법으로 금지한 국가, 지역이 있었으니까,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당연한 권리는 아니었어요. 2006년에 ‘가족구성권 연구모임’(‘가족구성권연구소’ 전신)을 시작하면서, 저희는 더 나아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가족/공동체를 구성할 권리, 그로 인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로 개념을 확장했습니다.

Q. 당시 활동을 둘러싼 국내외 가족 담론이 연구모임의 활동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 같은데요, 어땠나요? 

A. 2000년대 초반 한국 사회는 새로운 가족 담론, 획기적 정책의 변화가 생길 법한 상황이었어요.  2005년 호주제는 폐지되고, 다양한 가족에 대한 인식이 생겼지요. 하지만 민법에는 특정한 혈연관계와 혼인을 중심으로 한 ‘가족’의 범위가 새로 들어갔어요. ‘저출산’ 때문에 국민연금 재정이 고갈될 것이라는 말이 나오니까  ‘저출산’ 문제는 온 국민이 정상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낳도록 지원해야 할 최우선 정책과제로 자리 잡았어요.

2003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동성결혼이 가능해지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동성커플에게 결혼신고서를 발급하면서 국내에서도 동성결혼이라는 이슈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동성결혼이 외국 어느 나라의 이야기로 회자될 뿐 제대로 논의되지조차 못했고요. 가족 정책은 가족의 재생산 기능을 회복해 ‘국가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표 하에 그 기능을 담당할 가족은 지원하고, 그렇지 않은 가족은 여전히 배제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낀 연구자, 활동가, 법률가, 단체들이 모여 새로운 가족 담론과 정책을 모색했고,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다소 생소했던  ‘가족을 구성할 권리’ 라는 틀 위에서 논의를 시작했어요. 가족구성권에서의 배제와 차별이 가족 담론의 빈틈, 가족과 관련한 차별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Q. 정부 정책과 법이 규정한 ‘가족’이 ‘차별’을 낳는 구조라는 문제의식을 말씀하셨는데요. 그 구조를 바꾸는 것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잖아요. 정부 정책, 법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한계에 부딪치진 않았나요? 

A. 전통적인 가족 모델에 균열을 내는 목소리는 늘 정치적 압력을 받아온 거 같아요. 호주제 폐지에 그렇게 긴 세월이 걸린 것도 그렇고, 2007년에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되었는데, 기존 안에서 성적지향,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등 일곱 가지가 삭제된 채 상정되었어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여전히 제정되지 않았고요. 연구모임 때부터 논의한 생활동반자, 동성결혼 관련 법 제도도 정치적 상황에 부딪혀 공론의 장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는 측면이 큽니다.

연구모임도 초기에는 대안적 가족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입법 운동을 모색했습니다. 그러다 2007년 이후 정치권이 보수화되면서 많은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어요. 정책적으로도 정상가족을 강화하는 기조가 강해졌고요. 그래서 입법 활동보다는 <찬란한 유언장> 같은 프로그램처럼 좀 더 대중적인 활동에 주력했어요. 상속은 그야말로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이 작동하는 영역인데, 가족제도가 보호하지 못하는 다양한 관계들이 유언장이라는 또 다른 제도를이용해 불완전하나마 자구책을 마련해보자는 취지였어요. 저도 최근에 유언장을 처음 써봤어요. 어느 날 문득 내가 죽으면, 혹은 파트너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10년을 같이 살았어도 파트너 명의로 되어 있는 집이라면  법적인 가족이 아닌 저는 아무런 권리도 요구할 수 없다고 하니까. 정말 최악의 경우에는 추억이 담긴 물건 하나조차 내 것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다시는 이 집에 들어오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비극적인 거예요. 그런 순간을 상상하면서 서로 유언장을 써두었어요.

2012년에는 언니네트워크와 같이 <정상가족 관람불가>전시회를 열었고요. 장애여성가족, 성소수자 가족, 공동체 가족 등 다양한 가족/공동체들의 서사를 보다 풍부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시도였어요. 1주일 동안의 전시에 천명 가까운 사람들이 다녀갈 정도로 관심이 높았습니다.

Q. ‘가족’의 다양한 형태와 조건에 따라서 ‘가족’의 정의도 달라져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A. 지난 10년 이상을 가족구성권연구모임이 느리지만 끈기 있게 가족 의제를 논의해왔는데, 이제는 친밀하고 돌봄을 나누는 관계로서의 가족에 대한 시민들의 욕구가 보다 실질적인 목소리로 올라오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동반자등록법을 촉구한다는 청와대 청원에 6만 명이 동참하기도 했고요. 연구모임에서 연구소로 단체를 재정비하기로 한 것도 이러한 사회적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진행된 것 같아요.

Q. ‘가족’의 정의를 새롭게 상상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게 느껴집니다.

A. 민법 제779조에서는 ‘다음의 자는 가족으로 한다’고 딱 잘라 말하고 있어요. 내 가족이 누구인지 범위를 국가가 정해놓은 거죠. 건강가정기본법에서는 가족을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라고 정의해요. 이렇게 법적인 가족은 이성애 혼인, 혈연 중심이죠. 하지만 현실의 가족 공동체는 다양합니다. 반려동물을 가족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부모지만 연을 끊으면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지요. 동거는 하지만 결혼을 하지 않은 가족도 있고 생활공동체도 있고요. 가족이란 무엇인지, 누가 가족인지 답하기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정부에서도 다양하게 인식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요즘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사했어요. 1인 가구 정책을 만들기 위한 것 같은데, ‘조상과 성씨가 같다’고 응답한 이들이 37%, 서로 사랑하는 사람(친밀한 관계), 도우며 사는 사람(돌봄 관계), 함께 집에 사는 사람(거주공동체)가 거의 60% 가까이 나왔습니다. 최근 여가부가 가족 다양성 인식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법적인 규정하는 이성 혼인 중심의 혈연가족이 아니어도, 같이 살면 가족이라고 생각한다는 데 67%가 동의한다고 응답했어요. 연령별로 젊은층이 높죠.

Q. 그런 점에서 동시대 청년의 관점으로 가족구성권에 대한 공론장을 여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N개의 공론장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A. 지난 1월 연구소의 출범을 알리는 소박한 창립심포지움을 열었는데 150명 가까이 오셨어요. 우리도 놀랐어요. 의외로 많은 네트워크가 생겼어요. 청년허브도 그중 하나였고요. 여러 가지 청년 이슈를 다루고 있지만,  청년들의 가족에 대한 상상력을 확장하는 연구사업도 필요하다는 데 서로가 공감하게 되었어요. 연구를 바탕으로 청년들의 관점에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Q. 첫 번째 이야기 세션에서 가족에 대한 ‘불안’을 나눕니다. ‘불안’을 나누면 무엇이 보일까요?

A. 가족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느끼는 불안이 무엇인지에서 출발하면 그 이면에 숨겨진 가족의 의미, 각자가 생각하는 가족의 개념을 끄집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다양한 불안을 꺼내놓고, 그 불안의 본질과 해결 가능성을 모색하는 과정을 통해서 가족의 개념을 재구성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각자가 생애 동안 맺게 될 관계, 가족구성, 법 제도에 대한 상상력을 확장하는데 의미 있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요? 사실 연구소에서도 처음 시도하는 방식이어서 걱정도 되지만, 과정과 결과가 무척 기대됩니다.

Q. 공론장은 주제에 관심 있는 참가자들이 직접 의견과 경험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누는 현장입니다. 연구자 중심의 연구방법론과 다른 이점이 있다면요?

A. 그동안은 개인이나 커플 단위로 심층 인터뷰를 하고 연구자의 입장에서 사후적으로 인터뷰 내용을 연결하면서 의미를 끌어내는 연구가 많았어요. 공론장은 다양한 참가자의 의견과 경험을 나누고, 문제해결을 위해 연구자가 아닌 참가자들의 집단지성이 작동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기존 연구와는 조금 다른 결의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현행법에서의 가족 개념과 의미, 차별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이번에 청년과의 공론장을 진행하는데, 여기서 나온 논의의 내용이 또 다른 연구의 시작이 될 것 같아요. 다른 여러 집단과의 공론장도 계획하고 있는데, 이 이야기들을 담아낸 연구가 다양한 가족/관계를 둘러싼 지금의 실질적인 욕구를 반영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지 않을까요?  장애인, 노인 등으로 확장하고 싶은 바람도 생겼습니다. 다양한 상황과 위치에 있는 분들의 이야기와 연구가 결합하면 더 나은 정책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세대와 위치별로 다양한 사람들에게 묻고 듣는 공론장이 연구의 방향을 새롭게 만들거나 기폭제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끝으로, 공론장이 여기 모인 분들에게 어떤 자리로 남기를 바라시나요?

A. 현행법에서 ‘가족’을 호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은 운명공동체이고, 어떤 경우에도, 심지어 가족 내 폭력이 있더라도 가족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관점이 법의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친밀함과 돌봄을 실천하고 있어도 가족을 구성할 수 없는 관계가 있어요. 위기의 순간에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격이 박탈되고 권리에서 배제되는 수많은 가능성이 법의 곳곳에 존재합니다. 그런 점을 미리 앞서 대처할 수 있는 자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국가가 정하는 가족/관계가 아니라, 지금 청년들이 만들고 있는 친밀한 관계가 법적 가족을 넘어선 새로운 가족의 모델이 될 수 있도록 상상력을 모으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사전인터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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