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개의 공론장①] 「독립연구(자)를 둘러싼 질문들」리뷰

분류
행사리뷰
날짜
2019-08-08

때로는 낭만적 상상력만이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야기해야 할까요. 때로는 가장 지독하고 정확한 현실 인정만이 이상적인 토대를 꿈꾸게 한다고. 여기 독립하기 위해 네트워크를 만든 이들이 모였습니다. 독립연구자네트워크의 줄임인 독연넷은 각각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연구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독립연구와 독립연구자에 대한 질문에 답을 구하고자 하는 개인과 학술단체들이죠.

오랫동안 한 주제에 천착하기 위해 잠깐 책상 바깥으로 자료더미를 밀어놓고 현관문을 나서기도 하고, 불안정한 노동을 참을 만한 수준으로 끌어오기 위해 공고한 네트워크를 주도하기도 하는 사람들입니다.

(공론장 주최자_독립연구자네트워크 사전인터뷰 보기)

하나 더, 여기 있는 사람들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모였다는 것 말고는 정신적으로, 사상적으로 모이지 않았습니다. 정신과 사상을 한 방향으로 모을 필요는 없다고/모아서는 안 된다고 믿으니까요. 이들의 존재가 임계점에 다다른 한국의 지식생태계를 보여 주는지, 살아 숨 쉬는 활동력 있는 연구를 예시하는지는 이날 펼쳐진 이야기를 듣고 판단해주시길 바랍니다.


공론장 구성

    독립연구자란 대체 어떤 사람?

    독립한 채로,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을까?

    독립연구자로 산다는 것…(독연넷에 보내는 질문)

    Q1. 독립연구자란 대체 어떤 사람?

    A1-1 자신의 있을 자리를 스스로 찾는 사람이 아닐까요. by 조경숙

독연넷의 조경숙입니다. 저는 만화를 주로 연구합니다. 웹툰연구자이자 테크페미 액티비스트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저에게 독립연구자라는 정체성은 매우 중요한데, 연구자라는 공적증명이 저에게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2012년 한국 콘텐츠진흥원에서 게임비평상 수상해 등단을 했는데 사실 그것외에 학위나 학과나 학회 등 만화 관련된 소속되었다는 증거도 단서도 없지요. 지금은 동료가 만화평론가들과 순정만화 연구학회를 만들어, 그간 기록되지 않았던 순정만화나 여성작가들의 활동 내역을 계량화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며느라기>가 큰 반응을 얻으면서, 소위 ‘페미니즘 웹툰’이라는 단어가 이슈되었습니다. 저도 페미니스트이지만 어떤 한 작품을 페미니즘 웹툰이라고 단정짓는 데는 문제의식 갖고 있었어요. 페미니즘 웹툰이라고 하면 A부터 Z까지 페미니즘 이론으로 얘기해야 할 것 같은데, 실은 그렇지 않고, 꼭 그래야 할 필요도 없죠. 한편으론 페미니즘 웹툰이 장르화되어 있다면, 그렇게 분류되지 않은 다른 웹툰은 페미니즘적으로 읽을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일지요.

그런 취지로 예전에는 그러면 페미니즘 시각을 가지고 있는 만화를 어떻게 호명하고 분석했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요. 논문 쓰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연구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적이 많습니다. 저에게 굉장히 큰 도움이 된 것은 선행된 다른 독립연구자들의 논문이고, 개념을 많이 빌려왔던 것은 2004년 시작됐던 여성만화 웹진 프로젝트였어요. 독립연구자들이 온라인에서 여성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문화를 순정만화 아닌 여성만화라고 부르자는 비평적 작업이었죠. 제 생각에 제대로 된 연구는 자기의 있을 자리를 아는 연구인 것 같아요. 갑자기 튀어나와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참신한 연구도 있겠지만 그런 연구 결과물을 만들어낼 역량이 제게는 없고, 선배들이 어떤 연구를 해 왔는지 보고 그 안에서 내 문제의식을 녹여서 내 갈길을 찾아가는 연구를 하려고 해요. 선행연구와 뒤에 올 연구 사이에서 조그맣고 확실한 성취를 띠는 제대로 된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예전에는 독립연구자라는 말 대신 재야학자라는 이름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님과 임종국 선생님이 대표적이죠. 이분들도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았으나 나름대로 하나의 주제에 천착했고, 그 결과 학계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재미있는 건 임종국 선생님은 민족문제연구소를, 이이화 선생님은 역사문제연구소를 설립했다는 사실이에요. 당시의 독립연구자들은 왜 단체를 만들었을까요? 자신의 연구를 이어가는 방법으로 왜 연구소라는 ‘단체’, 즉 ‘네트워크’를 선택한 걸까요? 아직은 시작단계라 잘 모르지만, 선행사례를 참조한 현실적이고 유용한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습니다.

    A1-2 ‘독립+연구+자’이겠죠. by 강정석

저는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의 사무국장으로, 이 일 외에도 이것저것 많은 일을 합니다. 제 관심사는 제도권 연구 생산 밖의 연구 가능성입니다. 우선 독립연구자란 개념에 대해 알아보려면 단어를 나눠 봐야 하겠어요. ‘독립+연구+자’로요.

‘독립’이란 제도 밖의 가능성일 겁니다. 대학/대학원이란 제도 안에서 신진 연구자들이 지속가능한 연구를 이어 나가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강사법 이후엔, 강의할 기회조차 얻기 힘들어졌거든요. 문밖으로 독립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연구자 스스로 뛰쳐나왔다기보다는, 좁은 문 바깥으로 밀려나온 실정이죠. 이 문 바깥은 황무지에 가깝습니다. 대학도서관 출입도, 온라인상의 가치 있는 자료에 접근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연구’라고 하면 무엇에 대한 연구일까요. 제도 안에서는 분과학문이라는 체제에 맞춰 해당 분야를 깊고 촘촘하게 연구하게 되는데, 독립연구자는 주제나 형식에 관해 구속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전공분야 외의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자연스럽게 영감을 받고 새로운 연구, 활동력 있는 연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도 볼 수 있죠. 그러니까 ‘무엇’이든 가능한 연구일 겁니다.

‘자’는 역할/전략 설정이 필요한 개념입니다. 독립연구자로서 연구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제도 안팎을 잘 넘나들어야 할 거예요. 대학에서의 강의 등 제안을 꼭 거절해야 하는 것만도 아니고, 학술연구나 연구 용역에 참여할 기회가 있다면 함께하는 게 유용하겠죠. 유연하게 넘나들면서 연구의 활동영역과 범위를 확장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제도 밖에서 활동하는 독립연구자가 짊어진 특수한 사회적 역할이 있을까요? 이웃인 예술활동가들의 예를 들어서 살펴보고 싶습니다.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예술가들에게 주어지는 사회보장의 폭이 넓어져왔지요. 비슷한 방식으로 독립연구자들에 대한 사회보장도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독립연구자는 기획자, 행정가 등 여러 역할로 상호연결되고 전환되면서 자신의 독립적 제도 바깥에서 활동할 수 있는 연구의 폭과 가능성을 넓히고 끌어올리는 길을 열 수 있을 겁니다.

    Q2 독립한 채로,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을까?

    A2-1 대안이 옅어진 만큼, 네트워크는 선명해졌습니다. by 한윤아

영화와 시각예술을 기획하는 독립연구자입니다. 독립하게 된 외적인 요인이 있었어요. 그중 하나는 출산과 양육이었죠. 장 안으로 재진입하려는 나름의 시도를 했고, 그 시도들 가운데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독립연구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독연넷 활동을 통해, 저는 연구와 활동, 예술과 이론의 협력을 모색하고 싶습니다. 하나의 좋은 예시가 일어나는 장으로서 독립출판이라는 영역을 소개해보려고 해요.

독립이라는 말은 굉장히 멋지죠. 예술과도 어울리고요. 인디음악, 인디밴드, 독립영화, 큐레이터 등의 단어는 “밖에서 네 맘대로 하면 좋잖아” 같은 자율성에 대한 환상, 창의성을 환기시킵니다. 한국에서의 독립이란 단어의 맥락을 정리해보았습니다.

1990~2000년대를 아우르는 독립이라는 단어는 한국사회의 엄혹한 악재들과 싸우는 영역이자, 제도와 시스템이 부재한 고립무원이었습니다. 현실의 권력과 대립해야 하는 것은 물론, 예술활동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두 개의 과업이 놓여 있었죠. 2010년 이후 독립활동가의 양상은 조금 달라졌어요. 앞의 시기에 만들어진 대안공간을 다시금 대체하는 신생공간, 독립서점, 소규모 아트페어, 메이커스 문화, 오픈소스, 소외된 사람들이 만든 반공공이라는 용어, 프로젝트 기반, 소규모의 콜렉티브 활동 들이 생겨났죠. 지금의 독립활동은 굉장히 작고 개인적인 단위의 활동을 가리키는 말, 스스로를 조직화하는 양상을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2004~2005년 무렵 독립출판물 마켓 붐이 일었습니다. 서울아트북페어(UE)도 지금껏 엄청난 성장을 했습니다. 5만 명이 와서, 각자 5만원 이상 쓰고 갑니다. 전통적인 형태를 벗어난 책들도 많이 볼 수 있고요. 독립서점도 그 개수가 늘었습니다. 아트페어 중심으로 제도화가 일어나고 있어요. 충성독자들의 에너지는 공공과 제도를 매개하는 기회를 제공하니까요. 독립출판이 지역도서관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민간재단의 지원을 받아 출판물이 만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동네도서관, 독립서점, 소규모갤러리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등, 지식 공공화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현상이 반갑습니다.

   A2-2 독립연구자의 독립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by 박범기

문화사회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해온 사람입니다. 독립연구자의 네트워크란 크게 두 가지를 목표로 해요. 첫째로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둘째로는 독립연구자들로 하여금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할 수 있게 하는 것이죠. 독립연구자라는 말 자체가 등장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2016~2017년쯤부터 자신을 독립연구자로 규정하는 분들이 나타났죠. 물론 이전부터 학문후속세대를 둘러싼 문제의식은 공유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들이 1990년대 중후반 있었고, 이후 수유너머 같은 제도권 밖 학술공동체들이 생겨났습니다. 대체로 인문사회 계열에 해당하는 연구자들은 연구활동만으로는 독립적인 생활이 어려웠고, 이는 제도권 밖 연구단체들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밖의 학문후속세대들이 모인 대표적인 조직으로 인문학협동조합을 들 수 있습니다. 조합은 2013년 탄생했고 인문학연구자 생계보장을 위해 협동조합 형태로 만들어졌죠. 올해 만들어진 공덕동의 연구자의집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를 중심으로 탄생했습니다. 여기서는 연구자의 복지를 마련하고 연구자와 시민의 소통통로를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합니다. 이 밖에도 단체마다 각각의 특성이 있는데, 전반적으로는 학계가 기능하기 어려운 곳에서 공동체를 만드는 시도들이 벌어지고 있어요.

    A2-3 독립연구자 네트워크를 이론적으로 살펴보면요. by 김상혁

저는 교육학을 전공하면서 가라타니 고진을 공부해온 김상혁입니다. 가장 마지막으로 독연넷에 가입한 멤버입니다. 저는 교육학 중에서도 장상호 교육학자의 이론을 배웠는데요. 국내저자가 교육학 이전, 학문 자체란 무엇인지 체계적으로 자기 언어로 정리한 것이 저에겐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학문이란 원래 독립적인 것이고, 독립성을 잃는 순간, 제도 안팎을 떠나 학문이라고 부르기 어려워진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그런 점에서 독립연구란 말은 얼핏 모순적으로 들립니다. 연구 자체가 독립적인데 거기에 또 독립이라는 별도의 개념이 필요할까요. 이는 지금의 연구나 학문이 독립적이지 못한 상황이라는 반증이기도 하죠. 장기적으로는 독립적이지 못한 연구에 오히려 별도의 수사를 붙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칸트가 말하는 학회(association)는 대학 밖의 조직이었습니다. 공동체는 평등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을 구속하고 통제하는 반면, 학회에서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상반된 가치가 공존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독립성이 존재하는 네트워크인 거죠. 하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유동성이란 덕목입니다. 학회도 어느 정도 정착이 되면 변질될 거예요. 그러면서 사람들이 떠나고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어소시에이션이 만들어지겠죠. 그런 식으로 확장되는 것이 공동체이기도 하고요. 독연넷도 그렇게 될 거예요. 국제적인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다면 좋겠죠. 당장 가까운 동아시아의 독립연구자들과도 가까운 연대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독립연구자로 산다는 것…(독연넷에 보내는 질문)

    Q 독립연구자에게 사회보장을 한다면, 독립연구자들에 대한 지원 범위와 기준 역시 정해야 할 텐데요.

    A 그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 2017년 독립연구자 실태조사의 목표였습니다. 독립연구자에 대한 이론적/사회적 정의를 내리기 위해, 직접 독립연구자들 만나보고 독립연구단체들을 다니며 인터뷰했지요. 연구자란 포지션은 일반 용역자(프리랜서)도 예술가도 아닌 위치에 있습니다. 사회보장의 기준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독립연구자들의 정의가 필요한데, 그런 정의를 내리기 위해 충분한 실태조사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여러 연구자 단위들을 만나면서 사회적 합의점을 도출해내야 하겠죠. 독연넷이 생긴 것도, 사전작업의 필요에서입니다.

    Q 독연넷 내부의 연구주제는 구체적이고 다양할 것 같은데, 이 주제에 관해 (마치 제도권 내의 지도교수와 제자처럼) 서로 의지할 수 있는지요? 서로 비평할 수 있는 학술공동체로서의 기능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A 독연넷의 경우 지금 이 컨퍼런스가 거의 첫 과업입니다. 좀 더 조직의 규모가 확대되면, 연구결과물 등을 상호공유할 수 있는 형태로 확장될 겁니다. 현단계에서는 각자의 학술공동체에 속해, 그러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Q 독연넷은 기존의 학술공동체와 어떤 것이 다른가요?

    A 저는 대학원에서 사회학 전공하고 나와서 학계보다는 대중을 대상으로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직업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독립연구자 중에는 독립을 한 사람보다 ‘당한’ 사람이 많습니다. 많은 연구자들이 배출됨에도, 연구 여건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아서, 박사들이 길거리로 나오고 사설 연구소들이 생겨나는 식이죠. 독립연구자 네트워크에 속한 이들이 지식의 생산과 유통 등에 대해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느슨한 장으로 발전하리라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Q 앞서 한윤아 선생님이 독립연구자가 된 계기도 들었지만 출산과 육아가 걸림돌이 되기 쉬워 보이는데요. 여성 연구자로서 하나의 연구를 지속할 수 있을까요?

    A 제게 대표성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카데믹 안에서 페미니즘 연구라는 자리도 그렇지만, 거다 러너의 자서전을 보면 여성사 연구를 한다고 하니 보편성, 법칙성이 없는 연구는 연구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말이 돌아왔죠. 이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학교 밖 조직을 만들어 여성사 연구 저널을 만들고 여성사 연구 담론을 정착시켰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각 분야의 페미니즘 연구자들도 성과를 가시화/성문화하고 있는데, 무척 고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Q 제도 밖의 학술모임에서 역시, 학력과 출신, 석사와 박사의 구분을 무의식적으로 신뢰의 척도로 가져오게 됩니다. 새롭게 연구를 시작하는 사람들로서, 수평적 연구자로서 서로를 어떻게 설정할 수 있을까요.

    A 말씀하신 대로 학진이나 국가에서 연구자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젝트를 학위에 따라 구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의 연구수행능력과 관계없이 연구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거나 보조연구자의 입장에만 서게 되는 식이지요. 독립연구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도 이와 맞물려 있다고 생각해요. 상호신뢰할 수 있는 인정 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이슈라 생각됩니다.


독립연구자는 학문후속세대, 지식노동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여럿의 정체성을 한 단어로 요약하기 힘든 시대에서, 우리는 ‘독립연구자’라고 부를/불릴 수 있을까요? 모든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열린 가능성의 독립성을 만끽하기 위해, 서로의 지식을 이해하고 독려하고 비판하는 일들을 이어나가려고 합니다. 사회적 안전망 속에 놓인 자유로운 연구자의 독립을 꿈꾸며, 이날 있던 대화의 요약을 마칩니다.

(독립연구자를 둘러싼 질문들 살펴보기_끝)

*글 : 2019 N개의 공론장 아키비스트 그룹 김미래 에디터 instagram @jjokkpress

*사진 : 2019 N개의 공론장 아키비스트 그룹 전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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