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N개의 공론장] 홍대 인디로 불리우는 사람들 행사리뷰

분류
행사리뷰
날짜
2019-03-04

✅ 건명: 홍대 인디로 불리우는 사람들 : 공연, 음원으로 그치지 않는 이야기들

✅ 일시: 2018년 12월 11일 (화) 20:00 – 22:00

✅ 장소: 서울특별시 청년허브 다목적홀

✅ 주요 내용

1부. 각자의 사례 발표 및 공연 (60분)

⦁김제형 : 공론장 운영자 /  <EP : 곡예 발표>

“새로운 작업은 욕심인 걸까?”
⦁신승은 / <1집 : 넌 별로 날 안 좋아해 발표>
“포크라고 하기엔 내가 포크가 뭔지도 몰라요”
⦁ 애리 / <EP : SEEDS 발표>
“앨범이 발매된 딱 지금”
⦁미어캣 / <싱글 : 퇴근송 발표>
“음악을 둘러싼 나의 모든 활동”

2부. 참여자 토론/ 대담 (60분)

리스너와 음악가는 서로를 만나기 위해 홍대 앞 공연장으로 향합니다. 급등하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많은 장소들이 사라져가는 가운데, 여전히 활동을 지속하는, 또 새롭게 등장하는 공연장 소식이 반갑습니다.

음악가의 생업은 무대 안팎으로 이어집니다. 그는 무대에 오르기 위해 노래를 만듭니다. 무대에 오르고 나서도 노래를 만듭니다. 무대에 서서 얻은 수익만으로 음반 제작비를 충당하기 어려워 다른 일자리를 구하지만, 생활비 때문에 제작비를 남기기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음악가라는 직업인이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음악가 김제형 씨는 음반 제작에 필요한 정보, 전문 직업인이라는 인식과 대우 등이 결여된 환경에 문제를 제기할 공론장을 상상했습니다(공론장 운영자 인터뷰). 『N개의 공론장』 열 네 번째 자리 「홍대 인디로 불리우는 사람들: 공연, 음원으로 그치지 않는 이야기들」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부르기: 음악가의 일 이야기

음악가의 중요한 과업 중 하나는 무대에서 관객을 향해 노래하는 일입니다. 청년허브의 다목적실이 공연장으로 바뀌었습니다. 패널이자 공연자인 애리, 신승은, 김제형, 미어캣은 연주와 이야기를 엮어 선보였습니다. 마이크, 기타, 우쿨렐레, 이펙터, 그리고 음악가들. 관객들 사이로 노랫소리가 우렁차게 퍼졌습니다. 그 자체로 음악가의 존재 이유가 납득이 됐습니다.

– 앨범이라는 씨앗

애리는 10월 29일 첫 EP «SEEDS»를 발표했습니다. 음악가로 활동을 시작한 지 5년이 지나서입니다. 그가 연주한 두 번째 곡은 태어난 지 5년이 된 ‹없어지는 길›입니다.

길가에 나앉은 벚꽃 그 잎들 날리네

내가 나앉았던 길목 무겁게 금가네

5년간 연습실에서, 공연장에서 여러 시도를 거쳤을 곡의 내력을 떠올리니, 내내 붙잡고 있었을 음악가의 마음이 뜨겁게 다가옵니다. “올해 앨범을 낼 수 있어 다행이고 감사합니다. 활동하면서 알게 된 정보를 바탕으로 앨범을 더 자주 내고 싶습니다.”

– 무대라는 일터

이어 마이크 앞에 선 신승은은 ‹애매한 게›라는 곡을 들려줍니다.

힙합을 들었지만

나는 지금 통기타 들고

포크라고 하기엔

내가 포크가 뭔지도 몰라요

(…)

이것도 애매한 게

일기라고 하기엔

리듬을 좀 타고 있고

노래라고 하기엔

그냥 말하는 거 같은데

그 무엇도 아니고

단지 나이고 싶었는데

지금은 무엇도 아니라 좀 외로워

그는 자신이 “음악인으로 지내지 않을 때도 있다”고 합니다. 음악 창작을 위해 다른 일을 병행하거나, 창작과 무관한 일을 해야만 하는 일상을 환기하는 말입니다. 그는 2012년 무대 위에서 노래하기 시작했고, 2016년 정규1집 «넌 별로 날 안 좋아해»를 발매했습니다. 최근에는 디지털 싱글 ‹잘못된 걸 잘못됐다›를 발표했습니다.

그에게 “무대는 매번 신곡을 선공개 하는 자리”라는 뜻밖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대형 기획사의 메이저 가수들은 음원이나 음반으로 신곡을 발표한 후 무대에 섭니다. 하지만 이들 독립음악가들은 음반으로 묶이기 전에 먼저 무대에서 곡을 선보입니다. 그렇게 선공개 한 곡들을 선별해 하나의 앨범으로 묶어냅니다. 말하자면, 무대가 음악 창작의 선조건이 되는 셈입니다.

그는 자신의 곡 ‹씬스틸러›를 “홍대 인디로 불리는 사람들”에 관한 노래라고 소개합니다. ‘별’이 된 누군가를 바라보긴 하지만, 닮고 싶지는 않은 꼿꼿한 자세를 유머러스하게 묘사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모든 것이 신기했지

세모난 플레이버튼을 누르면 나오는 친구들

(…)

별이 되는 친구들이 부럽다가도

나는 사실 고소공포증이 있는걸

보고 싶은 대로 만들어진 ‘홍대 인디’라는 이미지로 이들의 실제 삶의 면면을 일축시키는 풍경도 꼬집습니다.

매스컴에서는 메스꺼운 거짓말로

우릴 부정하고 팔아먹고 이를 쑤시지

오디션 프로에 내가 만일 나간다면

지금 이 모습이 예고편에 나오겠지

– 노래는 음악가의 창작업

세 번째 순서로 선 김제형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저를 ‘홍대 음악가’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인들이 그렇게 불러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말이 음악가를 ‘이미지화’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2013년부터 공연을 시작해 카페 언플러그드의 ‘오픈 마이크’ 무대에 서며 곡을 발표하고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활동 4년 만인 2017년 11월 첫 EP «곡예»를 발매했습니다. 개인 창작자들에게 늘 고민거리이듯, 그도 제작 비용 앞에서 턱 막힙니다. “올해는 작업에 필요한 생활비 이상의 비용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음악 활동을 병행하며 생활비 이상의 비용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나마 기업이나 지자체의 지원 사업이 돌파구가 돼주지만, 보통 소수 정예 대상이기에 기회가 제한적입니다. “엄청난 경쟁률, 지원 사업에 맞는 자격이 있기 때문에 많이 떨어졌어요. 물론 저의 결함도 있겠지만, 지원 사업의 범위에 제 음악은 포섭되지 않는다는 갈증이 생겼어요.”

이날 부른 ‹노래의 의미›는 한 지원 사업의 1차 심의에 붙어 전주까지 가서 부른 노래입니다. 낙방한 그는 “다양성을 지원하는 사업에서 내 음악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노래는 너의 어떤 것과 바꿀 수 있을까

노래는 교환의 가치가 과연 남았을까

실생활에서 있으면 좋은 것들

없으면 크게 문제되지 않는 것들

노래는 너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 걸까

연주하고 노래하는 음악가의 일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공공 기관의 만행도 고쳐져야 합니다. 구청이나 주민센터에서 마을 축제 등을 벌이는데, 공연자 페이가 너무 적고 기획 자체가 헐거웠습니다. 게다가, 명색이 싱어송라이터에게 선곡의 반 이상을 커버 곡으로 넣어달라는 무례한 주문도 들어야 했습니다.

음악의 공적인 가치에 무지한 행태라는 것이 그의 생각입니다. “이 음악이 공공 영역에서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반드시 우리 스스로 입증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와 비슷한 개별 사례들을 많이 모아 연결 고리를 찾고 싶습니다.”

– 음악을 둘러싼 모든 활동

싱어송라이터 미어캣 또한 비슷한 일을 경험했습니다. 카페 언플러그드의 ‘오픈 마이크’ 무대를 통해 2017년에 데뷔한 그는, 앙꼬라는 친구와 2인조를 결성해 150만 원 정도의 사비를 들여 11월 13일 첫 싱글 ‹퇴근송›을 발표합니다.

퇴근하고 싶다

퇴근하고 싶다

퇴근하고 싶다

퇴근하고 싶다

날 집에 보내줘요

이야이야이야이야

한 관공서에서 그 노래를 사내 ‘퇴근송’으로 써도 되느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후 시청, 도청, 회사 등지에서 같은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기관 내부에서 공식적으로 음악을 이용한다는데, 페이가 없어서 대신 행사 때 섭외해달라고 했습니다. 얼마 뒤 섭외 연락이 왔는데, 예정된 행사를 일주일도 안 남기고 담당자가 바뀌더니 돌연 구두 계약이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미어캣 역시 2018년 동안 음악 활동을 많이 하지 못했습니다. 생계에 신경 쓰다 보니 작업할 여유가 없었고, 지원 사업에서도 고배를 마셔야 했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음악인에 대한 회의감이 있습니다. 각자도생하는 형국인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는 자신만의 묘안을 짜보기도 합니다. “온라인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 건가 싶었어요. 정보의 편중도 있고요. 뮤지션들이 자신의 권리를 더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알고 있어야 하는데,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음악가의 길로 들어서기 전, 서브컬쳐를 좋아했던 그는 어느 인디 레이블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음악가들을 만났습니다. 음악가들이 돈을 많이 벌고 활동을 지속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신(scene)의 인물과 소식을 전파하는 웹진 인디펜던트 리포트를 창립했지만, 필자들에게 원고료를 지급하지 못해 폐간하고 말았습니다.

듣기: 음악가에게 필요한 사회적 자원이란?

미어캣의 ‹퇴근송›으로 후끈해진 열기를 잠시 가라앉히고, 2부 토론을 시작합니다. 무대를 바라봤던 관객들은 둥글게 펼쳐 앉습니다. 네 명의 음악가들은 무대에서 내려와 이들과 마주보고 앉았습니다. 음악으로만 다하지 못한 이야기가 아직 남았습니다. 음악가들은 무엇을 할 때 기쁘고, 무엇 때문에 힘들까? 관객들은 궁금합니다.

– 돈 그리고 네트워크

관객1: 전통적인 관점의 ‘밴드’에서 벗어난 뮤지션이 많아졌는데, 왜 이런 흐름이 등장하고 있나?

 

애리: 내 경우, 주변에 음악하는 사람 없이 시작해서 함께할 사람이 없었다. 베이시스트와도 합주해본 적이 없다. 내가 잘 알고 있거나, 음악적으로 혹은 인간적으로 맞는 사람이 주변에 없었기 때문이다.

 

제형: 느즈막히 음악을 시작하면서 나 혼자 활동하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제안하는 일 자

체가어려웠다.

 

승은: 나는 몇 번, 여러 명과 연주해봤다. 수입에서 합주 비용, 식비, 술값 제하다 보면 남는 게 없다. 최소한으로 줄여서 트럼페터와 둘이 다니는데, 그것도 지양하고 있다. (영화를 전공했는데) 영화 촬영하면서 안 맞는 사람과 부대끼는 게 너무 싫었다. 음악은 나 혼자 하면 된다는 게 장점이었고, 그걸 지키고 싶다.

 

관객2: 네트워크나 자본이 부족해서 음악을 만들 때 제한되는 부분이 있나?

애리: 돈도 네트워크도 없어서 힘들었다. 네트워크는 자연스레 만들어졌는데, 자본 마련은 여전히 힘들다. 올해 예술 교육가 일을 하면서 동시에 두 가지 일을 더 했고, 모든 수익을 앨범 만드는 데 다 썼다. 내년이 걱정이다. 예산이 없고 에너지도 많이 써서.

– 나의 즐거움과 관객의 기쁨

관객3: 각자에게 음악이란 어떤 의미인지, 계속 음악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승은: 관객과 만나는 게 재밌다. 어느 날 공연에서 2집을 준비하고 있다고 얘기했는데, 누군가가 그러더라. “살면서 신승은 2집도 들어봐야지.” 꼭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돈을 들여서 하는 이유는, 들어주시는 분들에게 너무 감사해서다.

 

미어캣: 원래부터 홍대 인디 키드였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음악은 아니지만 너무 공감이 됐다. 만든 이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우쿠렐레 동호회 활동을 했는데, 사람들이 내가 만든 노래를 너무 좋아했다.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는 얘기를 음악에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음악을 안 하면 죽기 직전에 후회할 것 같았다.

 

애리: 내가 내 음악을 만들고 공연하는 것이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다. 4년 정도 홍대에서 공연을 하고 지냈을 때 예상치 못한 힘든 일들이 많았다. 이전에 가지지 못했던 인정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잘되고 싶다는 욕심에 차게 됐다. 그런데 작년에 많이 아파서 집에 가서 요양을 했다. 어머니나 주변인들이 그런 말을 하더라. “음악을 하다가 하고 싶어지지 않으면 다른 걸 해보면 어떻겠니?” 갑자기 숨통이 확 트이면서 위로를 받았다. 나에게 음악은 그런 것이다.

– 공공적 가치를 지켜주는 제도

관객5: 거대 자본을 가진 집단들이 담합해서 어느 가수를 밀어주는 식의 관행이 있다고 들었다. 일전에 한 인디 뮤지션에게 비슷한 얘기를 했다. 어떤 이들이 그런 카르텔을 형성하는 건지, 어떻게 지속하는지 궁금하다.

 

미어캣: 크든 작든 레이블을 하고, 음악계 종사자고, 10년 정도 일을 하면 관계자를 알 수밖에 없다. 심사위원, 사장, 기자, 매체, 페스티벌 관계자 등을. 그 정보는 그들끼리 독점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당연히 그걸 공적으로 알리지 않고, 사적인 자리에서 나눈다. 비일비재하다. 카르텔을 부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내 친구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한 관계자를 심사위원으로 만난 경우가 있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뮤지션들 사이에서도 누구를 피하라는 소문이 많다.

 

애리: 음악가에게 필요한 정보가 정말 알려지지 않는 것 같다. 활동을 시작했을 무렵엔 창작하는 사람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데, 다 정보력으로 싸우는 것 같다. 한마디로 경쟁이다. 정보 격차가 프로모션에 대한 차이와 연결된다. 오래 활동하면 할수록 노하우를 알게 되는데, 신진 음악가들은 알 길이 없다. 레이블은 프로모션에 많은 돈을 쓴다. 작은 회사라도 태국, 베트남, 유럽 등지로 아이돌 프로모션을 계속 보낸다고 하더라. 시장만 작을 뿐이지 우리도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레이블도 없고 돈도 없어서 불안감이 컸다. 프로모션이 나쁜 것이라고는 생각하진 않고, 오히려 더 잘 알고 싶다.

 

제형: 우리의 경험도 사실 흩어진 정보들이지 않나? 그 정보들을 취합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힘을 지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노래를 발매하면 유통사를 통하는데, 플랫폼 메인에 노출되는 게 엄청난 광고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하늘의 별따기 같은 일이고, 거대한 기획사와 스트리밍 사이트 사이에서 벌어진다고 알고 있다. 프로모션은 제작비 ‘외’ 비용이다. 개인 입장에선 어려운 일 같다. 지원 사업들이 없어지는 추세가 되면 그마저 기회가 박탈될 거다. 이런 문제를 다루면 온라인 댓글에는 “알아서 기어올라야지” 하는 공격적인 말이 달린다. 많은 이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이슈다.

 

미어캣: 일본의 레코드점에 가면 한쪽에서는 아이돌 음악이 나오고, 한쪽에는 인디 음악이 나온다. 마이너에게 자리를 할당하는 게 의무다. “알아서 기어올라와라” 하는 건, 돈 없는 사람들은 알아서 떨어져 나가라는 말이다. 그러면 생태계가 무너진다. 나는 작은 공연장에서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공연을 보는 게 너무 좋았다. 뮤지션 개인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적인 영역에서 더 개입하면 좋겠다. 자생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게끔 도와준다거나, 마을 축제를 할 때 인디 뮤지션에게 자리를 할당한다거나. 관객들 역시 인디 뮤지션에게 자주 관심을 가져준다면 좋은 이야기가 지속될 것 같다.

– 음악을 잘 들리게 만드는 공간과 기획자

관객6: 카페를 운영 중이다. 손님들을 통해서 인디 음악을 접한 뒤 틈틈이 공연을 다닌다. 가게에서 공연을 열 때도 있다. 인디 음악은 오프라인에서 만날 때 훨씬 더 밀접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공연장이 많이 문을 닫는 추세여서 답답하다. 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제형: 좋은 기획에 참여했을 때 나도 그렇고 관객도 재밌었던 것 같다.

 

애리: 누군가 공연을 벌인다는 마음만 느껴져도 안도감이 든다. 답답하다고 말씀해주셔서, 면대면 공연이 좋다고 해주셔서 감사하다. 그런 기회가 많이 생기면 좋겠다.

 

승은: 기획자의 역량도 있고, 공간의 특성도 있다. 단순히 아티스트를 보러오는 사람뿐 아니라 그 공간에 애정이 있어서 오는 사람도 있으니까. 내 입장에서도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라 좋다. 반면 ‘빵점’인 기획자, 공연도 많다.

 

제형: 애정으로 연결되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사람들은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 비단 서울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내에서 이런 사례가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럴 때 공적 서비스가 필요하다. 파리의 경우, 마을 축제가 굉장히 활발하다. 관객들은 돈을 안 내도 되고 공연자도 페이를 잘 받아서 음악의 장으로 잘 작동하는 게 아닐까 싶다. 우리 사회도 그러면 좋겠다. 공공에서 운영하는 공간에 참여하는 일이 많아지면 좋은 흐름이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늘 와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다.

다음: 음악가에게 공적인 힘을 부여하는 대화 자리

음악가를 둘러싼 문제가 무엇인지 경험을 통해 구체적으로 밝혀낸 자리였습니다. 어떤 점이 왜 잘못됐는지 따지고, 들었습니다. 해당 문제를 음악가 개인이 짊어질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걸 모두가 공감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회적 합의점을 만들어내는 제도의 발명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은 그쪽으로 몸을 움직여볼 차례입니다.

“저는 이런 얘기가 훨씬 많은 사례들과 함께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적인 힘을 발휘해서 이해 당사자들을 해당 주제 앞으로 초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말을 나누면서 서로의 사정을 좁혀가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모호하게 사용되는 “홍대 인디”라는 말을 넘어 좀 더 뚜렷해지고, 보다 나은 음악 생활을 견인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제형 씨의 후기 중 한 대목입니다. 음악가, 청취자이자 시민, 기획자 그리고 예술가 복지 행정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실제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에서 우린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음악가라는 직업’이 수행하는 사회적 역할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확인하는 자리가 열리길 바랍니다. “낙관하기는 어렵지만 절망하기만은 싫다”는 김제형 씨의 말처럼, 누구도 대화의 자리를 포기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