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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정책/활동 쟁점정리] 연속대담 #52016년 12월 19일

< 대담 #5. 복지와 증세, 그리고 세대 문제 >

 

한국의 복지정책은 선별적 복지에서 보편적 복지로 나아가는 기로에 서 있다. 과거에 비해 보편적 복지의 요소가 확대되고 있지만 아직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정책을 도입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에 대한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문제이다. 지난해 누리과정 예산 사태에서는 복지정책을 벌려만 놓고 수습하지 못하는 중앙 정부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올해 한국의 복지 분야 지출은 GDP(1인당 국민소득) 대비 10.4%이다. OECD 평균인 21%의 절반에 불과한 수준이다.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복지정책의 수준은 높아져만 가는데, 정부에서 편성하는 복지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늘어나는 복지 수요를 감당하려면 어떤 돌파구를 찾아야 할까. 복지와 증세, 그리고 국민연금과 관련한 세대 간 충돌 문제에 관하여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박이대승 소장이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오건호 공동운영위원장과 대담을 나누었다.

 

* 대담자: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 면담자: 박이대승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소장)

 

(사진)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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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지에 대한 인식, ‘시혜에서 권리” >

< “한국에서 보편적 현금수당은 시기상조” >

 

박이: ‘복지국가는 오랫동안 한국사회의 중요한 화두로 자리 잡았었는데요. 지난 2012년 총선에서 정점을 찍고 그 이후로 몇 번의 선거가 지나면서 논의가 가라앉은 것 같아요. 지금 시점에서 복지국가 논의가 한국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전반적으로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 복지국가 담론이 가장 뜨거웠던 때를 꼽으면, 총선과 대선이 있었던 2012년이죠. 당시에 복지국가 담론이 왜 등장했는지 살펴보면, “대한민국이 새로운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열망 내지 희망이 ‘복지국가’라는 단어로 집약되었던 것 같아요. 더 연원을 따져보면, 1998년 IMF 금융위기부터 한국이 크게 전환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때까지는 대한민국이 순조롭게 어느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자신의 국가에 대한 미래 비전이 어렴풋하게나마 있었던 시기였어요. ‘산업화’ 또는 ‘선진국’의 모습을 그렸죠. 그런데 IMF 위기를 맞으면서 대한민국이 무너졌어요. 그리고 나라만 무너지는 게 아니라 사회 자체가 완전히 망가지기 시작하면서 일종의 미래비전의 아노미 상태가 되었다고 봐요.

 

그런데 이 문제는 지도자를 잘 뽑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1년, 2년 쌓이다가 터진 게 2008년 촛불이었다고 생각해요. 그게 IMF 금융위기 이후 딱 10년이 지난 시점이에요. 그때 촉매제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였지만 촛불에서 등장했던 핵심구호는 결국 “함께 살자, 대한민국”이었거든요. 국민들이 기존의 ‘경쟁’ 또는 ‘승리’의 방식에서 ‘공존’이나 ‘협력’으로 가지 않고서는 제대로 살 수 없겠다는 판단을 하게 된 거죠. 예컨대 “급식에서 차별하지 말자.”는 구호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고요.

 

저는 이런 문제의식들이 쭉 발전하면서 2012년에는 ‘복지국가’라는 이른바 국가비전으로 갔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비전으로 복지국가가 채택된 거죠. 왜냐하면 그 시점에 여러 인류 공동체들을 보면, 협동의 원리에서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가 그나마 복지국가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래서 복지국가가 떴는데, 지금 와서 시들해진 것은 – 물론 박근혜 정부 4년의 영향도 크지만 – 복지국가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경로가 안 보이기 때문이에요. 시간이 지나면서 일정한 경로를 통해 성취되는 모습이 보여야 감이 잡힐 텐데 계속 돈 없다고 싸우는 모습만 보니까 “복지국가로 갈 수 있나?”라는 회의감이 든 거죠.

 

박이: 저는 그 과정을 보면서 흥미로웠던 부분이 사람들이 복지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관한 부분이었거든요. 사실 서구어에서 ‘welfare’라는 단어인데 복지라고 번역되는 게 이상하잖아요. 한국에서 복지는 시혜적인 성격을 가진 말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불쌍하니까 무언가 해주자.”는 생각이 담겨 있는 거죠.

 

그래서 복지국가 담론에서도 사회정책적 측면에서 어떻게 시민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들 것인가?”의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불쌍한 애들이 있으니까 무상급식 해주자.”는 방식으로 논의가 되었던 거죠. 그래서 지금 상황에서 복지가 도대체 무엇인지부터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 개념을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오: 복지는 어려운 사람들이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지 못하니까 사회가 불가피하게 최소한의 망을 깔아주는 거잖아요? 이건 시혜죠. 시혜 그 자체가 나쁜 건 아닌데 한국에서는 꽤 오랫동안 복지 수준이 굉장히 낮았기 때문에 일종의 ‘낙인효과’가 많이 생겼어요. 모든 선별복지, 가난한 사람들한테만 주는 복지는 낙인효과가 날 수 있는 개연성이 있는데 한국은 이게 특히 강했어요. 서구 같은 경우는 개인의 실패를 개인의 책임보다는 사회구조적 원인으로 이해하는 폭이 크지만, 한국은 고도성장을 하면서 “열심히 하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여태까지 실패가 모두 다 개인의 책임으로 돌아오는 거예요. 그래서 10년 전까지만 해도 복지를 받는 사람은 스스로 성공에 실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거죠. 임대주택에 살거나 수급자라는 사실도 밝히기 꺼려하고요.

 

그런데 1998년 IMF 금융위기 이후 10년을 겪으면서, 나도 낙오자가 될 수 있고, 나도 패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중간계층 사람들이 느끼기 시작한 거죠. 심지어 우리 아이들은 “시작부터 낙오자겠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거예요. IMF 이후 새로운 한국체제가 국민들에게 처음으로 가르쳐 준 건, 그게 사회구조의 문제라는 거였죠. 내가 비정규직이 되고, 정리해고를 당하고, 우리 아이가 취직을 못 하는 것들이 나와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라고 생각을 하게 됐죠. 그래서 최소한의 생활을 요구하고, 교육을 요구하고, 의료를 요구하는 식으로 발전한 거죠. 2010년부터 쏟아져 나온 의제들의 특징은 대부분 권리성을 가지고 등장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난 몇 년 동안의 복지 바람에서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점은 국민들이 복지를 ‘실패한 사람들이 받는 시혜’에서 ‘사회 구성원이면 일정하게 요구하고 누려야 하는 권리’로 인식했다는 거예요.

 

박이: 서울시 청년수당을 보면, 한 달에 50만 원이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란 말이에요. 그런데 복지부에서 제동을 걸었어요. 만일 서울시 청년수당 정책을 수혜자들이 자신의 권리로 이해를 한다면, 예를 들면 나는 서울시에 있는 구직 중인 청년이고, 당연히 그런 수당을 받아야 하는 권리가 있다.”라고 생각을 했다면, 복지부가 제동을 걸었을 때 이 사람들이 반응을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들고 일어난다든가, 강력하게 항의한다든가. 그런데 그러지 않았거든요. 실제 반응은 “50만 원 주면 좋겠지만, 안 주면 어쩔 수 없지.”라는 분위기였어요. 말씀하셨듯이 권리라고 하는 것에 대한 의식이 예전에 비해서는 급격하게 성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자란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오: 대한민국에 사는 시민들이 상상하는 복지의 카테고리가 있을 거예요. 의료, 보육, 주거, 이런 게 있을 거잖아요. 그런데 현금 복지, 아예 그냥 생활비를 주는 복지는, 한국에서는 굉장히 익숙하지 않아요. 연금이 있지만, 연금은 자기가 보험료를 내서 받는 거고요.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있지만, 그거는 진짜 어려운 사람한테 주는 것이고요. 버젓이 성인인 청년한테, 노동시장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한테 그냥 현금을 준다는 것이 사실 상상으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청년수당을 자신의 권리로 생각하는 정도까지는 아직 못 미쳤던 것 같아요. 만약 프랑스에서 그런 수당이 있다가 끊겼으면 난리가 났을 텐데, 우리나라는 성인한테 직접 현금을 주는 복지정책에 대한 경험의 부재 혹은 상상의 한계 때문에 큰 항의가 없었던 것이겠죠.

 

박이: “현금 수당에 대한 경험이 없다고 말씀을 해주셨는데, 저는 그게 매우 핵심적인 문제 중 하나인 것 같거든요. 최근 기본소득 논의에서도 어떻게 보면 가장 쟁점적인 주제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현금 수당이 기초노령연금 같은 형태로 있기는 있었잖아요. 선생님께서는 현금 형태로 주어지는 복지정책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그냥 단순히 경험을 아직 못한 단계다, 이 정도로 말씀하시고 싶은 건가요?

 

오: 거부감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현금을 벌 수 없는 사람들한테 – 예를 들어 취약계층이나 은퇴자들, 장애인들에게 – 사회가 현금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들 수긍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일반 성인들한테 주는 현금은 익숙하지 않다는 거죠. 사실 기본소득이 일반 성인들한테 그냥 주는 거잖아요. 결국 현금 소득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현금 소득이 누구한테 주어지는지 지급대상과의 연관성이 중요할 것 같아요.

 

저는 현금 소득 그 자체가 부정적이거나 안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워낙 지금 사회불안정성이 크고 중간계층조차도 미래가 어둡다 보니까 안정적인 현금에 대한 열망이 생기게 되죠. 그런데 노동시장에 들어가 있느냐 없느냐가 저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노동시장에 들어가 있지 않은 사람한테 현금을 주는 것에 대해서는 한국 사람들이 충분히 다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청년은 아주 애매한 언저리에 있는 거예요. 노동시장에 들어오지 않은 학생들한테 수당 주는 것은, 조금 더 인식이 확산되면 국민들에게 수용성이 있을 거라고 봐요. 왜? 돈 버는 애들이 아니니까, 그리고 공부하려면 돈이 필요하니까. 그런데 청년의 범주가 서른다섯, 마흔, 이렇게까지 확대되고 노동시장에 들어간 사람들을 대상으로 현금수당을 준다면, 그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봐요. 그렇게 되면 일과는 무관하게 기본소득을 주는 것이니까요. 노동시장에 들어가서 월급을 받는 데도 현금수당을 제공하는 형태는 굉장히 시기상조라고 생각해요.

 

< “세금은 신뢰의 문제국가불신이 증세의 걸림돌” >

< “증세 해결하지 못 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피해” >

< “중간 계층 이상이 참여하는 복지 증세 이뤄져야” >

 

박이: 이제 증세 얘기로 넘어갈게요. 유럽어/서구어에서는 이라는 말이 권리라는 말과 같은 단어로 쓰이거든요. 그래서 서구에서는 복지정책을 수립하는데 그것이 시민의 권리라고 한다면, 동시에 그것은 시민을 위해 당연히 존재하는 법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그런 법을 만들고 그에 따른 정책을 시행하는 데 대해서 내가 돈을 낸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행위이거든요. 세금을 내는 것이죠. 한국에서도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권리의식이 어느 정도로 발전해왔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증세에 대한 태도인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 저는 세금은 신뢰의 문제라고 봐요.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가 있으면 내는 거죠. 현재 세금을 설계하고 결정하는 기관은 입법부이고, 거두고 쓰는 기관은 행정부인데, 안타깝게도 두 기관이 시민으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지 못하죠. 그래서 내가 세금을 내면서 공연히 나쁜 놈한테 자금을 지원해서 악에 기여할 수도 있는 거라는 생각도 들잖아요. 물론 세금을 덜 내고 싶은 게 속마음일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해요.

 

한국 사람들은 세금을 안 내는 것, 절세를 너무 당당히 생각해요. 생활의 지혜라고 하고요. 그래서 정치적 사건만 생기면 세금 안 내겠다고 납세거부운동 나오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한국에서 증세 인식이 이렇게 취약한 이유는 국민들이 갖고 있는 권리의식의 이중성보다는 국가권력 혹은 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고 봐요. 좋은 정부를 아직 가져 보지 못한 것, 신뢰할 만한 정부를 가져 보지 못한 것이 문제죠. 그래서 “나라가 나를 지켜주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되면 당연히 세금을 낼 거라고 봅니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약하더라도, 증세를 돌파하지 못하면 결국 부메랑이 돌아와요. 그건 가난한 사람들한테 가요. 지난 4~5년 동안의 복지를 보면, 급식·보육·기초연금은 준 보편으로 가는데, 이건 중간계층 이상자들이 새로운 수혜자가 된 거예요. 기존 취약계층은 이미 받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증세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적 복지나 의무적 복지에 재정이 들어가다 보니까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여기에다가 돈을 선배정할 수밖에 없고, 돈이 부족하니까 허리띠를 졸라매야 되는데, 결국은 목소리가 약한 집단의 예산을 졸라맬 수밖에 없게 되는 거죠. 그게 취약계층들이에요. 실제로 복지 프로그램을 보더라도, 지금 중간계층 이상까지 커버하는 것으로 확대된 급식/보육/기초연금 등은 예산이 늘었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장애인/자활 이런 건 그냥 제자리에요.

 

저는 이것을 ‘보편복지의 역설’이라고 해요. 스웨덴 학자 발테르 코르피(Walter Korpi)는 ‘재분배의 역설’이라는 말을 하는데, 복지를 보편적으로 제공해야 증세를 해서 재정 사이즈를 키우니까, 결국 모두의 복지가 올라가서 취약계층 복지도 상승해서 재분배 효과가 난다는 것이거든요. 서구에서는 이렇게 보편복지를 통해서 취약계층까지 모두의 복지를 상승시키고 재정을 확충하는 데 성공했어요. 그런데 한국은 보편복지를 늘리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재정 확충에 실패하다 보니까 거꾸로,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를 타격하는 게 되어버렸어요. 무슨 말이냐면, 이런 증세 운동, 혹은 증세 실천 활동들이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가난한 사람들이 계속 타격을 받는 거죠. 그래서 좋은 정부를 갖는 개혁과 별도로 증세 활동들이 필요하다고 봐요. 증세와 세금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교육활동뿐만 아니라 새로운 실천 같은 것도 필요하죠.

 

박이: 실제 증세를 위해서는 방금 말씀하셨던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 당연히 필요한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갔을 때 그 과정의 걸림돌은 어떤 게 있을까요?

 

오: 여러 걸림돌이 있죠. 헌법이 자기 구성원들한테 의무를 줬잖아요. 국방의 의무, 교육, 근로, 그리고 납세의 의무가 있잖아요? 구성원들한테 의무를 줬으면 가르쳐 줘야죠. 국방의 의무를 지면 총 쏘는 법을 가르쳐 주잖아요. 교육을 시켜주잖아요. 납세의 의무를 명시해놓고, 세금의 ‘세’ 자에 대해서도 체계화된 정보를 가르쳐주지 않는 게 우리나라에요. 초, 중, 고에서 세금 교육이 없죠? 세금 정보가 없죠? 성인이 되어도 없어요.

 

우리가 하는 건 자기가 세금을 납세할 일이 있을 때, 연말정산을 하거나, 혹은 집을 사고 팔거나, 세무사 도움을 받아서 일종의 맞춤형 절세 페이퍼를 하나 받는 것이죠. 그런데 나름대로 세금에 대한 자기 판단은 가지고 있어요. 모든 정보는 언론을 통해서 받아가니까요. 그런데 대부분 신뢰할 수 없는 소스에서 나온 것들에요. 대부분 네거티브한 정보들이고, 그래서 조세 저항을 부추기는 데에 기여하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거예요.

 

첫째로 세금에 대한 기본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 두 번째로는 세금에 대한 정보를 정치진영 논리로 악용한다는 것이 문제에요. 보수세력 뿐만 아니라 진보세력들도 ‘세금 폭탄’이라는 말을 써가면서 세금에 대한 불신을 부추겨요. 한국에서는 진영 논리에 의한 아주 나쁜 세금 정치가 있어요. 또 언론도 있어요. 워낙 온라인 언론이 이제 발달하다 보니까, 언론이 지나치게 부정적인 세금 기사들을 쏟아내죠. 그래서 그런 기사 읽으면 사람들은 화가 나고, 세금을 어떻게 덜 낼까 생각하는 탈세공화국이 되는 거죠.

 

저희는 복지증세를 주장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낸 세금이 허튼 곳에 쓰일 수 있는 우려가 있기 때문에 “내가 낸 건 다 복지에 쓰는 것으로 못을 박아버리자”는 것이 복지세입니다. 프랑스에도 사회보장, 복지세 있죠. 옛날에 우리나라에 방위세가 있었어요. 지금도 교육세라는 목적세가 있어요. 그럼 우리가 소득세, 법인세를 그냥 복지세 방식으로 더 내서, 복지 재원으로 다 쓰면 되지 않느냐? 그래서 사회복지세 도입 운동을 하고 있어요. 아직까지는 정부를 믿지 못하지만, 복지세로 하면 어떤 정부가 들어와도 여기에 있는 돈은 손을 못 대게 되니까요.

 

박이: 사회복지세는 정치권에서 반응이 좀 있나요? 상황을 보아하니 대선이 빠르게 진행될 것 같은데 각 정당에서는 증세와 관련해서 어떤 입장들이 나오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오: 정의당만 당론으로 받아들였어요. 비교해보면 정의당은 복지증세, 그래서 사회복지세가 핵심이구요. 나머지 두 야당의 특징은 슈퍼 부자 증세에요. 소득 상위 2% 혹은 5% 증세이죠. 정의당의 경우 사회복지세는 일반 노동자들도 다 내는 거예요. 그런데 나머지 두 야당의 특징은 1대 99 혹은 10% 대 90% 사이에서, 상위 계층을 찍어서 내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이게 정치적 생색내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얼마 전에 세법개정안이 통과됐어요. 소득세가 38%에서 40%로 2% 올랐고 5억 이상 버는 사람들에게 해당돼요. 야당은 “드디어 증세했다.”고 자평하죠. 그리고 “증세 없는 복지 폐지시켰다.”고 말하고요. 그런데 이게 액수가 6천억 원이에요. 껌값 수준이거든요. 세법개정안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증세 없는 복지를 폐기할 만큼 강한 게 아니라는 말이에요. 지금 누리과정 부족한 예산만 해도 4조이고, 기초연금도 10조 원이고, 그런데 그 6천억 원이 증세라는 거예요.

 

이건 거꾸로 얘기하면 부자들한테 면죄부를 줘버린 거예요. 증세라는 게 시대적 화두인데, 이렇게 사회가 양극화된 상황에서 부자들한테 세금 한 번 때리라고 한 건데, 딸랑 그거 한 거예요. 겉모양만 그렇지 실제로 증세 효과가 없는 거예요. 야당은 지극히 생색내기에만 집중해요. 그래서 국민들이 갖고 있는 부자들에 대한 분노를, 세금에 대한 분노를 해소해주는 것. 그래서 0.1% 부자들한테 6천억 더 걷는 걸 이뤘어요. 전체 재정에는 큰 효과가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이런 증세가 아니에요. 훨씬 더 강력한 증세구요. 훨씬 더 강력하게 하려면 뭘 해야 되느냐? 중간계층 이상이 과세에 참여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압박을 해서 부자들한테, 대기업들한테 세게 뜯어낼 수 있다. 촛불도 결국 다수의 압박이잖아요. 우리는 다 가만히 있으면서 선언적으로 1%만 찍어서 세금 내라고 하면 그들이 내긴 낸다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6천억 원짜리로 끝나는 거잖아요. 재정에도 전혀 도움되지 않고, 지금의 복지 재정난을 해결할 수도 없는 수준이에요. 복지국가로 가는 토대도 되지 않고요.

 

< “국민연금 관련, 2040년대부터 세대 간 충돌 생길 것” >

< “공적연금의 지속가능성은 미래세대가 아닌 우리가 만들어야” >

 

박이: 마지막 주제로 연금과 세대 문제를 짧게 얘기해볼게요. 연금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세대라는 개념이 들어갈 수밖에 없죠. 지금 일하고 있는 세대와 은퇴 세대 혹은 지금 일하고 있는 세대와 앞으로 태어날 세대, 이런 식으로 세대 간의 문제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요. 일단 첫 번째로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것은, 이걸 세대 간 형평성이나 세대 간 분배 문제로 볼 수가 있는지? 어떤 식으로 사고해야 될지 간단하게라도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오: 연금제도는 세대 간 제도에요. 지금 내고 내가 40년 후에 받을 것이기 때문에. 다른 복지는 지금 내고 지금 받습니다. 지금 내고 고용보험 받고, 병원비 받고 이런 건데. 연금만 시차가 존재해요. 그래서 당연히 연금 제도에서는 세대 간 관계를 봐야 되는 것이고요. 세대 간 관계가 지금 어떤 상태냐? 형평성이 깨져 있어요. 내는 거랑 받는 것의 수지 불균형 문제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40%를 받고, 9%를 보험료로 내고 있는데, 이게 수지 균형이 되려면 한 16%까지 내야 돼요. 그리고 이미 서구 유럽 나라들은요 자신의 급여율만큼 다 보험료를 내고 있어요.

 

지구상 몇몇 나라가 받는 것에 비해 내는 것이 부족한데 우리가 제일 부족해요. 그 부족한 게 계속 쌓여가니까, 나중에 미래의 아이들이 저한테 연급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제가 납부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보험료를 내야 돼요. 그럼 과연 그 세대의 아이가, 저는 그때 힘이 없을 텐데, 저한테 연금 지급하는 걸 용인할까라는 문제에요. 누군가는 “당연히 용인해야지! 아버지한테 효도해야 되는 것처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때 만일 그 세대가 “당신들이 정한 이 계약이 공평한 겁니까?”라고 문제제기를 해버리면 아무 말을 할 수 없죠. 왜냐하면 의사결정권은 그들이 가질 테니까요. 그래서 그들이 계약을 바꾸겠다고 할 수 있다는 거죠.

 

박이: 말씀하시는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라는 것이 대략 언제쯤으로 갈리는 걸까요? 예를 들면 말씀하신 미래 세대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인가요, 아니면 지금 태어난 아동기 사람들인가요? 예전에 논쟁이 되었던 것이 2060년 소진론인데요. 향후에 국민연금 가지고 대대적인 사회적 논쟁이 붙을 것으로 예상이 되는데, 그때 선생님께서는 2040년 전후에 논쟁이 시작될 거라고 말씀하셨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오: 어떤 취지냐 하면, 2040년대 중반까지는 기금이 더 쌓여요. 더 쌓이다가 그때부터 수급자들이 급격히 늘어나 가지고, 15년 만에 소진 상태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2060년 소진되었을 때 지급 가능성을 얘기하는데, 문제는 그 이전에 발생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2030년, 40년대에 스물다섯 먹은 친구가 가입을 하는 걸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20년 후에 소진 사태가 발생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20년 후에는 그 사람이 보험료를 엄청 더 내야 되는 거예요. 받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연금제도라는 건 내가 가입한 이후 10년, 20년, 30년 후의 전망이 보이기 때문에, 2060년 이전부터 제도에 대한 불신임을 할 수 있다는 거죠.

 

저는 2040년대부터 반드시 논쟁이 생길 것 같아요. 소진이 가시권으로 들어오기 때문이죠. 그런데 논란은 그 전에도 생길 수 있어요. 저는 2018년, 내후년에도 생길 거라고 봐요. 왜냐면 국민연금이 법에 따라 5년 주기로 재정추계를 해요. 그래서 ‘2060년 소진’도 2013년도에 추계한 결과에요. 그리고 2018년 봄에 새로운 추계 결과가 나옵니다. 예측컨대 더 악화된 결과가 나올 것이에요. 왜? 5년이 더 지나버렸기 때문이죠. 부족한 금액이 5년 동안 더 쌓였고 경제 변수들도 더 안 좋아졌어요. 기금 수익이나 이런 것들이. 그래서 소진연도가 당겨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복지제도는 benefit(급여)과 contribution(기여)의 짝이에요. 연금제도는 세대 간 시간차가 있기 때문에 두 세대를 봐야 하고, 연금은 보험료와 급여의 짝이기 때문에 두 항목을 다 봐야 해요. 연금제도는 연금의 보장성만 갖고는 아무 해법도 안 나옵니다. 지금 서구 나라들은 모두 연금 보장성을 하향시키거든요. 수급개시 연령을 뒤로 늦추든지, 아니면 경제성장률과 연동해서 자동 인하 조치를 취하든지. 서구 복지국가도 왜 그러겠어요. 안타깝게도 지속가능성이 없으면 어느 제도도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죠.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연금급여를 하향시킬 수밖에 없어요. 물론 고령화나 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겠지만, 지금처럼 마땅한 해법이 없는 상태에서는 급여를 하향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요. 어떡하겠어요. 그래서 기초연금 같은 제도가 보강돼야 해요.

 

박이: 결국 제도의 지속가능성이 가장 중요하고, 동시에 세대 간 형평성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의 문제가 핵심적인 과제라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오: 네, 그렇죠. 지속가능성이 중요한데, 미래세대가 할 일은 아니죠. 미래 세대들이 그 제도를 흔쾌하게 수용할 수 있도록 계승할 수 있는 조건이 필요한 것이고, 그 조건은 누가 만드느냐? 우리가 지금 만들어야 해요. 그래서 공적연금의 지속가능성은 미래 세대에 달려있지 않고 우리에게 달려 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쓴 책 제목도 ‘내가 만드는 공적연금’입니다(웃음).

 

박이: , 감사드립니다. 대담은 이렇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기사작성: 박아름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연구원, 前 SBS 기자)

 

* 대담 순서

1주 / 왜 청년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가? – 박이대승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소장

2주 / 페미니즘, 청년을 향하다 – 권김현영 성공회대 여성학 외래교수

3주 / 민주주의: 광장의 정치, 제도의 정치 –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

4주 / ‘헬조선’과 ‘기본소득’, 경제학은 답이 아니다 –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5주 / 청년정책인가, 사회정책인가? –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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