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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정책/활동 쟁점정리] 연속대담 #42016년 12월 11일

<대담 #4. ‘헬조선기본소득’, 경제학은 답이 아니다 >

 

지난 5월, 서울 구의역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근로자가 역으로 진입하던 열차에 치여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수많은 언론이 사고를 비중 있게 다뤘고 수많은 정치인이 현장을 방문해 재발방지책을 논했고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자를 애도했다. 한해 수천 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지만 유독 이 사고가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만 19살이라는 피해자의 어린 나이, 비정규직이라는 신분, 그리고 그의 유류품에서 각종 공구와 함께 나온 컵라면과 나무젓가락 때문이었을 것이다. 구의역 사고는 한국사회의 청년들이 마주하고 있는 이른바 ‘헬조선’의 현실을 보여준다.

 

그는 1996년에 태어났다. 한 해 뒤인 1997년, 대한민국은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그가 살아온 짧은 세월은 한국사회가 이른바 ‘97년 체제’라는 이름 아래 신자유주의 정책을 전면적으로 시행한 시기였다. 그 사이 한국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바라보는 나라가 됐지만, 노동시장은 양극화됐고 불평등은 심화됐다.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는 매년 나빠지고만 있다.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누군가는 재벌개혁을 말하고, 누군가는 비정규직 철폐와 노동시장 개혁을 말하고, 누군가는 복지국가와 기본소득을 말한다. 모든 논의의 중심에는 경제가 있다. 우리가 마주한 ‘헬조선’의 현실,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경제적 논의에 관하여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박이대승 소장이 칼폴리니사회경제연구소 홍기빈 연구위원장과 대담을 나누었다.

 

* 대담자: 홍기빈 (칼폴리니사회경제연구소 연구위원장)

* 면담자: 박이대승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소장)

 

(사진: 홍기빈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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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벌이가 아닌 살림살이로서 경제가 중요” >

< “‘헬조선은 산업에서 발생하는 권력구조의 문제” >

< “경제공학·사회경제학 나누고 경제학 재구성해야” >

 

: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경제학자들이 사실상 지성계를 주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사람들이 가장 귀를 기울이는 것도 경제학자들이고, 동시에 정치적 견해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모두 경제를 사회적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파 같은 경우는 경제성장이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진보정당들도 언제부턴가 과거의 이념지향적인 진보로부터 벗어나서 진보적 경제정책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고민을 옮겨오고 있고요.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들었습니다. 정말 그럴까? 지금 한국사회의 이른바 헬조선이라고 얘기되는 고통스러운 상황이 과연 경제적 요인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의 사회적 삶에서 경제라는 분야가 차지하는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 이런 질문들을 해보게 되었어요. 그래서 첫 질문을 드리자면, 지금 한국사회에서 우리가 살아갈 때 경제라고 하는 문제의 위치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홍: 경제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좁은 의미에서 ‘돈벌이’라는 의미가 있고요. 넓은 의미에서 “사람들이 좋은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조달한다.”는 의미가 있어요. 저는 이것을 ‘살림살이’라고 번역하는데요. 칼 폴라니(Karl Polanyi)가 이렇게 두 개념을 나눠서 써요. 여기서 경제라는 말을 무슨 뜻으로 쓰느냐에 따라서 제 대답은 달라집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가 돈이 없어서 발생하는 것이냐, 돈을 더 많이 번다는 의미에서의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면 해결되는 문제냐, 이렇게 묻는다면 노(No), 말도 안 되는 소리죠. 경제성장이 되고 돈이 생긴다고 해서 우애가 넘치고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가 되느냐? 어림없는 얘기에요. 오히려 그 반대가 될 거예요. 그런데 두 번째 의미인 살림살이는 전혀 다른 의미의 경제입니다. 산업이라는 것은 인간이 개인 차원과 집단 차원에서 좋은 삶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것들을 조달하는 거잖아요. 산업사회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조직하고 모든 사람이 더 풍족하고 자유롭고 도덕적으로 살 수 있느냐, 이렇게 본다면 저는 경제 문제가 여전히 중심이라고 생각을 해요.

 

한국사회는 1960년대부터 급속 고도 압축성장을 했잖아요. 그러면서 경제성장이 신앙이 되었죠. 방금 말씀하신 온갖 ‘헬조선’의 문제가 경제 문제와 무관해 보이는 것도 많은데, 사실 정확하게 얘기하면 경제성장의 결과물입니다. 아까 말한 두 가지 다른 의미의 경제가 있잖아요. 첫 번째 의미에서는 돈이 목적이 되고 사람이 기능이 돼 있죠. 두 번째 의미에서는 그 관계가 역전되어 있어요. 사람이 목적이고 경제활동은 어디까지나 기능일 뿐이에요. 그런데 고도성장을 목표로 삼았던 대한민국 자본주의에서는 경제성장이 목적이 되고 인간사회의 모든 제도와 사회적 관계는 – 교육, 정치, 문화, 심지어 종교까지 – 경제성장의 기능적 도구가 되는 거죠.

 

넓은 의미에서 산업사회와 무관한 ‘헬조선’의 문제는 없어요. 사람 사는 사회에 사는 것 같지 않고, 무슨 경제적 동물들과 정글에 사는 느낌이 들잖아요. 자본주의라는 산업사회의 비참한 문제는 뭐냐면, 산업사회가 비합리적으로 조직되어서 인간에게 가해지는 온갖 고통을 돈으로 해결하라고 시켜요. 돈이 있는 사람만 산업사회의 문제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죠. 대학 가고 싶으면 그냥 승마장 지으면 되니까요. 돈이 없는 사람들은 꼼짝없이 산업사회의 비합리적인 문제들을 몸으로 겪어내야 해요. 제가 보기에 ‘헬조선’의 문제는 그것이에요. 왜 나는 마트에서 일하고 돈 많은 사람들의 종이 돼야 하느냐, 그럴 이유는 전혀 없어요. 오로지 산업 때문이에요. 산업에서 발생하는 권력구조의 문제인 거죠.

 

한 가지 덧붙이자면,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인간의 지성을 리드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니에요. 안타까운 일인데요. 지난 20~30년 동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경제학자들이 무슨 신처럼 군림해왔잖아요. 이게 인류 지성의 암흑기죠. 제가 말하는 두 번째 의미로 경제를 정의한다면, 오히려 철학이나 법학하시는 분들이 경제학을 점령해야 해요. 여러분이 그렇게 자리를 내주면, 경제학자들이 아주 거만한 표정으로 와서 케케묵은 18세기 공리주의 인간 심리학을 풀어놓기 시작해요. 여러분이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듯이, 법학이나 철학의 관점에서 새로운 경제이론을 만든다고 생각하시는 게 맞아요.

 

: 두 번째 의미로 말씀하신 살림살이로서 경제는 전통적인 경제 개념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잖아요? 말하자면, 현재의 시스템에서 사회정책이나 복지정책 등의 영역들을 다 포괄하는 의미에서의 경제 개념인데요. 결국은 경제학 자체를 재구성하자는 말씀이신 거죠?

 

홍: 네, 맞습니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인간의 최적화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최적화 행동은 복잡한 개념이 아니라 비용(고통)과 쾌락을 계산해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건데요. 경제학은 인간이 최적화 행동을 하는 존재라고 가정하고 모든 사회를 재구성하는 일종의 사회공학이에요. 예를 들어 10살 때부터 재테크를 가르친다거나, 이렇게 최적화 행동을 하는 인간만 살아남는 조건을 만들면 인간사회가 가장 완벽해질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되긴 뭐가 되나요? 온 세계가 정글이 되어버렸죠.

 

그러니까 경제는 당연히 재구성해야 하고, 그러려면 ‘인간이 최적화 행동을 하는 존재’라는 전제부터 완전히 부인하고서 전혀 다른 인간관과 사회관을 갖고 새로 구성해야 해요. 이게 너무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는데, 그렇지는 않아요. 다른 학문으로 흩어져 있을 뿐이니까요. 법학, 사회학, 인류학, 정치학 등등의 요소를 보면 이미 새로운 경제학을 구성할만한 요소들은 거의 다 있어요. 광범위하게 테이블을 만들고, 새로이 그 요소들을 합쳐나가면 가능하다는 거죠.

 

기존의 경제학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사회를 설명할 수 없다는 거죠. 제가 말씀드린 새로운 경제학은 실제 존재하는 사회의 사회적 관계들을 연구해서 정책을 만드는 학문이에요. 일종의 사회경제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요. 저는 경제공학과 사회경제학을 나눠서, 경제공학은 공대로 보내고 사회경제학은 사회과학대로 보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회경제학에는 법학자, 인류학자, 행정학자 등등 다양하게 참여해서 “실제 존재하는 인간들의 경제적 삶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논의하자는 거죠.

 

< “박정희 시절과 97IMF 이후, 크게 다르지 않아” >

< “재벌이 국가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자본’” >

 

: 한국사회 얘기를 조금 더 해볼게요. 살림살이로서의 경제를 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한 가지 예를 들자면,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가 재해로 사망한 청년노동자가 있었어요. 이 사망 사건 자체는 일종의 살림살이 문제죠. 스스로 먹고살기 위해서 일을 하다가, 그야말로 자신의 기본적인 생명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건데요. 다른 나라에는 이런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이른바 헬조선은 한국사회의 매우 독특한 현상인데, 이것이 살림살이의 문제라면 한국의 살림살이 구조가 다른 여러 나라들과 구별되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거나 불평등이 극단적으로 심한 나라라고 해도,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나라는 별로 없을 텐데 우리는 이런 사건들이 발생하잖아요. 그렇다면 한국사회의 살림살이의 독특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시는지 궁금하네요.

 

홍: 구의역 사건도 마찬가지일 텐데, 모든 것을 돈벌이의 수단화 해버리는 거죠. 그게 한국 사회의 독특성이에요. 반세기도 안 되는 기간에 급격하게 산업경제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돈 안 되는 것은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팽배해졌어요. 자본주의는 미국에도 있고 프랑스에도 있고 어느 나라에서나 우월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이죠. 그런데 구의역에서 돌아가신 분의 경우에는 도시락도 못 먹었잖아요. 컵라면으로 세 끼를 때우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 이데올로기인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못 본 것 같아요. 살림살이 경제의 의미에서 보면, 컵라면 3개씩 먹으면서 하루 열 시간 넘게 일하는 건 절대로 좋은 삶이 아니거든요.

 

: 제가 질문 드리고 싶었던 부분인데요. 개인적으로 가장 놀라웠던 게 뭐냐면, IMF 시기에 시장주의가 들어오잖아요. 한국사회가 급격히 신자유주의화 되었다고 얘기하죠. 사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시장주의와 경제에 대한 새로운 관념들이 들어온 건데, 사람들이 어쩜 그렇게 쉽게 받아들였는가 하는 부분이 신기하더라고요. 그 기저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요?

 

홍: 학자들이 흔히 그 시기에 한국사회가 신자유주의로 넘어갔다면서 ‘97년 체제’라는 얘기를 하는데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박정희 때나 97년 이후나 연속 선상에 있다고 보는 건데요. 이데올로기가 바뀌었을 뿐이에요. ‘조국 근대화’라는 이데올로기에서 ‘대박’ 이데올로기로 바뀐 거죠. 그것뿐이지, 실제로 사람들이 일상을 구성하는 기본 코드가 경제인 것은 똑같아요.

 

다만 97년 이후에는 사람들이 조직에서 상사 말만 듣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돈 계산을 해서 경제계획을 세우는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서는 변화는 있었어요. 개인 단위로 세분화되어서 더 촘촘하게 자기 삶을 경제적 합리성에 맞추게 된 거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경제적 사회’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고, 경제의 명령 앞에서 다들 머리를 숙여야 한다는 점은 비슷하고요. 97년 이후로는 그게 조금 더 심해지죠.

 

쉽게 얘기를 해보자면, 80년대 초까지는 사윗감을 고르면 “아유, 그 청년이 대학은 좋은 데를 못 나왔어도, 참 성실하고 괜찮아.” 이런 얘기를 했거든요. 지금 사람들이 들으면 다 웃을 거예요. “성실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느냐?” 그러면서 웃을 거예요.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가치의 다원성은 있었다는 말이죠.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없어요. “성실해서 뭐? 스펙이 어떻게 되는데? 돈은 얼마나 버는데?” 결국 이렇게 되죠.

 

일부 경제학자들은 신자유주의가 우리 사회 가장 큰 문제라고 얘기를 해요. 그래서 박정희 때하고는 다르다고 하는데, 지금 사회를 보세요. 중공업 회사들 구조조정 과정 보세요. 지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재벌들하고 관계를 보세요. 뭐가 달라요? 박정희 때랑 똑같죠.

 

: 그 부분이 핵심적인 문제 중 하나일 것 같은데요. 박근혜최순실 사태에서 드러난 한국의 거대자본들의 행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권력과 자본의 관계하고는 조금 달라 보여요. 그동안 어떤 믿음이 있었냐면, “거대자본들이 국가를 지배하고, 실제로 국가권력은 거대자본의 하수인 역할을 한다.”는 인식이 있었던 거죠. 그런데 이번 사태를 보니까,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거대자본의 행태가 박정희 정권 때랑 크게 다르지 않은 거죠. 국가권력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이잖아요. 그렇다면 국가와 자본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지배집단과 재벌의 관계는 어떻게 보시나요?

 

홍: 저는 국가와 자본의 관계를 말하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둘은 한 몸이에요. 자본주의 국가는 그 자체가 자본이거든요. 제가 반대하는 신화가 있어요. 흔히 사람들이 박정희, 전두환 때까지는 국가가 재벌을 키웠는데 90년대 들어와서 재벌이 우위를 점하고 국가를 지배한다고 하잖아요? 이번에 보니까 그런가요? 전혀 아니죠. 무슨 재벌이 국가를 지배해요.

 

저는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에게 반대로 질문을 해요. “그러면 삼성은 한국 정부가 하는 꼴이 마음에 안 들면 중국으로 갈 수도 있겠네요? 글로벌 기업이니까 본사를 중국으로 옮길 수도 있고?” 어떨 것 같나요. 삼성에 있는 사람들이 알면 택도 없는 소리라고 해요. 이번에 봐서 알겠지만, 우리나라 재벌 기업들은 국가를 매개로 해서 한국사회의 각종 특권과 이권을 누리고 있어요. 그것을 배경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조직이에요. 재벌이 국가보다 우위에 있지 않아요.

 

< “지금 한국의 기본소득 논의는 빈껍데기” >

< “기본소득은 4차 산업혁명 조건에서 필연적 귀결” >

 

: 다음 주제로 넘어가 볼게요. 노동과 소득 문제인데요. 안정적인 일자리가 계속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운동진영이나 주류 노동운동계에서 그동안 외쳐왔던 것은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정규직을 전환해야 한다”, “최대한 안정적인 일자리를 많이 확보해야 한다는 고전적인 구호였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이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정규직 일자리가 만들어지기는 하는 것이냐?” 혹은 정규직 일자리를 얻었다고 그 이후의 생활이 보장되는 거냐?”라는 다양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기본소득 논의도 포함되고요. 이에 대한 견해가 궁금한데요. 여전히 비정규직 철폐와 정규직 전환이 유효한 방법이 될 수 있을까요?

 

홍: 전혀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비정규직 싸움의 현장에서 그 구호를 외치는 분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죠. 저도 그 자리에 있으면 똑같이 외칠 거예요. 그런데 냉철하게 보자면, 정규직 직장의 일이 얼마나 남아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간단한 예만 들어봐도, 노조 사무실에서 정규직을 채용하나요? 비정규직을 쓰잖아요. 물론 자본 측이 비용을 절감하고 노동을 착취하기 위한 도구로 악용하는 것은 싸워야 하는 부분이죠. 필요한 부분에서 정규직 채용을 요구하는 것도 그런 부분이고요.

 

그런데 우리가 먼저 생각해볼 지점이 있어요. ‘정규직’이라는 노동 형태는 2차 산업혁명이라는 독특한 국면에서 생겨난 고용 형태입니다. 1920년대 이전에 정규직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공무원이나 군인 정도밖에 없었어요. (당시만 해도) 고용이 보장되고, 연금이 나오고, 각종 복지수당이 붙는 직장이 어디 있었겠어요. 그러니까 정규직은 100년도 안 된 고용형태인데, 마치 그것이 노동의 규범적이고 당연한 형태라고 생각하는 건 현실 파악이 틀렸다는 거죠. 지금 3차 산업혁명, 4차 산업혁명 이렇게 진행되는데 그 노동이 유지되란 법이 있나요? 정규직이 문제가 아니라 노동 자체가 소멸하는 판이잖아요.

 

그리고 과연 정규직으로 한 자리에 계속 고용되어 있는 것이 좋은 것이냐 물어보면, 저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정규직 노동의 삶을 다들 꿈꾸는데, 사실은 부정적인 점도 많아요. 우리가 굳이 옛날식 고용형태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변화된 산업 조건에 맞게 사람의 존엄함을 지켜낼 수 있는 새로운 노동형태를 만들어내고 채워나가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구호를 외친다면, ‘비정규직 철폐’가 아니라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외치겠어요. 그게 훨씬 더 시급하다고 봐요.

 

: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소득 문제를 얘기해볼게요. 정규직의 안정적인 일자리가 앞으로 계속 유지될 가능성이 작다고 한다면, 그때 사람들은 어떤 소득으로 먹고살아야 하느냐는 문제가 나올 텐데요. 여기서 기본소득 논의가 나오게 되는 거죠. 이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홍: 저는 원칙적으로는 기본소득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굉장히 많은 전제 조건과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따라와요. 어떤 논리로 정당화할 것이냐의 문제가 있죠.

 

지금의 기본소득은 비어있는 아이디어에 불과해요.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 단순하게 하면 되는 것처럼 쉽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그런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사실 전통적인 좌파운동 입장에서는 용납하기 힘든 얘기죠. 19세기 초부터 좌파 노동운동이 했던 두 가지의 요구가 ‘소득에 대한 권리’와 ‘노동에 대한 권리’, 즉 일할 권리였어요. 그 중 후자를 더 우선했거든요. 수당 몇 푼 주고 말 게 아니라 일할 기회를 보장하라는 주장이었어요. 우리가 스스로 일해서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해라. 그런데 지금 기본소득 논의는 ‘생산자로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침묵하잖아요.

 

기본소득 주장하시는 분들이 기본소득에 의해 생계가 보장되면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을 찾을 것이라고 하잖아요. 저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 상황에서 하고 싶은 일 하라고 하면 다들 게임이나 하지 않겠어요? 아니면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나가든가. 그분들은 예술 활동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혼자서 할 수 있는 활동이 예술 아니면 게임이잖아요.

 

만약 내가 가구라도 하나 만들고 싶다고 한다면, 그건 기본소득으로 안 되는 일이에요. 레이저 절삭기가 있어야 하고, 나무가 있어야 하죠. 내가 목수로 일하고 싶다면 어디 취직을 하든가 장비를 갖추든가 해야 하거든요. 이런 조건이 없는 상태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활동이 몇 개나 되나요. 제가 기본소득론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소득만 바라보면 생산자로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아무 얘기도 하지 않게 될 위험이 있다는 겁니다. 저는 그 부분이 전통적인 좌파운동에서는 큰 이탈이자 변화라고 생각해요.

 

기본소득이라는 방향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것이 궁극의 해법은 아니라는 거죠. 기본소득은 ‘4차 산업혁명’ – 현재 벌어지고 있는 기술·산업의 패러다임 전환 – 이라는 조건 때문에 필연적이에요. 그런 조건이 아니라면 정당화되기 힘들어요.

 

< 기본소득은 결코 낭만적인 해법이 아니다” >

< “경제적 논리가 아니라 정치적 논리로 접근해야” >

< “기본소득은 시민으로서 권리시민성개념 확장해야” >

 

: 장기적으로는 기본소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어떤 모습의 기본소득이어야 할까요?

 

홍: 여기서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점이 있어요. 제 생각에 기본소득은 경제적인 논리에서 나오지 않아요. 정치적 공동체의 시민권(citizenship) 논의에서 나오는 거예요. 경제적 논리에서 나오는 소득이라면, 노동생산성에 비례해서 임금이 결정된다거나 이런 방향으로 갈 텐데요. 시민권에 의해 소득이 보장된다고 한다면, 그 액수나 형태는 완전히 열려있는 문제에요. 그래서 한 달에 300만 원 주자는 기본소득론도 있고, 80만 원 주자는 기본소득론도 있는 거죠. 지금 핀란드와 스위스가 그렇잖아요. 그러면 여기서 질문이 나오겠죠. 액수는 무슨 기준으로 결정할 것이냐, 이런 문제가 나오는 거죠.

 

: 그래서 제가 이 질문을 드렸던 건데요. 저희 연구소 이름이 <불평등과 시민성 연구소>, 그러니까 ‘citizenship’ 연구소거든요. 말씀하신 대로 기본소득이 시민성의 차원에서 이야기하면 접근하기 쉬워요.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시민으로서의 권리로 보는 거죠. 시민들은 국가에 있는 구성원들이니까요. 국가는 이들에게 기본적으로 살 만큼의 소득이나 조건을 보장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얘기할 수 있죠. 사실 스위스에서도 국민투표가 이 내용을 헌법에 넣자는 거였잖아요. “법적으로 기본소득을 받을 권리가 있느냐를 물어보는 투표였죠. 이런 식의 논리로 가는 것이 깔끔하다고 생각해요.

 

홍: 기본소득 논의에서 기본소득을 왜 받는지 근거를 물어보면, 내가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게 유일한 근거가 돼요. 정치적인 논리로 주어지는 소득이란 뜻이에요. 결국 기본소득은 경제적인 논리와는 무관하게, 정치적인 합의와 토론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이 부분을 어떻게 정당화 할 것이냐, 저는 시민권을 확장해야 한다고 봐요. 1950년대 초에 영국 사회학자 마셜(T.H.Marshall)이 ‘사회권’ 개념을 학문적으로 확립해서 복지정책을 정당화했듯이, 지금 시기에도 시민권을 한 번 더 확장할 필요가 있어요. 기본소득 논의를 계속하려면 시민권 개념을 폭발적으로 확장하는 작업을 해야지, 그냥 “우리의 권리다.”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고 봐요.

 

: , 저도 그 부분은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 살림살이의 문제 혹은 노동의 문제로 돌아가면, 이 부분은 시민성의 논리로 커버할 수 없거든요. 그러니까 국가가 시민에게 먹고 살 만큼 돈을 줘야 한다는 것은 맞는데, 그렇다면 이 사람을 어디에서 일하게 만들 것이고, 어떤 노동을 하게 만들 것인가? 이런 부분이 문제가 될 텐데 해결이 가능할까요?

 

홍: 지금 조건에서는 해결할 수 없죠. 이건 기본소득과 무관하게 앞으로 마련해야 할 텐데요. 4차 산업혁명이 사람을 압도하는 면이 있고,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면이 있어요. 지금 존재하는 기술들을 이용하면, 30년 전에 기업 하나가 하던 일을 한 사람이 할 수 있거든요. 그렇다면 모든 사람에게 역량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옛날식으로 “대학 들어가서 가방끈 늘리고 공부해라.” 이런 식이면 안 되죠. 자기발전에 유용하도록 모든 사람에게 무제한으로 기회를 줘야 해요. 이건 공공의 운영으로 해야 하고요.

 

기본소득은 찬성/반대의 문제가 아니라 잘 만들어야 해요. 그렇게 이상적인 기본소득이 있을 수는 없거든요. 포기할 것도 많고요. 아까 말한 사회권 보장이 1950년대에 처음 나왔을 때도 복지국가가 마냥 이상적이거나 아름다운 건 아니었어요. 그야말로 골치 아픈 거였죠. 기본소득도 우선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청년 기본소득이나 이런 부분부터 시작해서 점점 보편화해나가는 방식으로,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해보면 쉽지 않을까요?

 

사실 기본소득을 정당화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요. 하나는 공유재산에서 나오는 소득으로 시행한다는 것이고요. 두 번째 방법은 4차 산업혁명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역량강화의 밑천으로 쓴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돈으로 꼭 컴퓨터 학원을 가야 한다거나 이런 게 아니라, 술을 먹어도 좋고 게임을 해도 좋고 다 좋은데, 어쨌든 자기 역량을 개발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그래야 산업발전에 더 기여가 되니까요. 그건 논리가 돼요. 이를 근거로 공동체와 개인 간의 의무, 책임, 권리관계에 대한 정당화 논리를 짜야죠.

 

: 저는 오히려 정당화하기는 쉬울 것 같아요. 사회권의 논리를 조금만 확장해도 되니까요. 사실 지금 현금으로 지급되는 복지정책들은 많이 있는데요. 이들과 기본소득의 결정적인 차이는 특정 연령대 이상의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액수를 한꺼번에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여기 조금 줬다가 저기 조금 줬다가 하는 게 아니라 보편성 있는 정책으로 실행하는 거죠.

 

홍: 결국은 시민권을 새로 규정하는 작업이 필연적이에요. 저는 마셜(Marshall)의 논리가 굉장히 강력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계급의 불평등을 없애자고 한 게 아니라 사회의 성원(citizenship)임을 인정하자는 거였어요. 아무리 불평등하더라도, 어느 선에서는 똑같은 발판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당시 2차 산업혁명으로 풍요로웠던 시기였음에도 의료나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죽어 나갔어요. 그런 배경에서 사회권이 나온 건데, 저는 4차 산업혁명도 비슷한 것 같아요.

 

4차 산업혁명이 되면, 사람은 네트워크로 연결(connet)되어야 해요. 지금은 사물도, 사람도, 사회도 ‘hyper-connectivity’(초연결)로 이어진 사회 아닌가요? 여기서 자기가 능동적인 주체로 활동해나갈 수 있는 역량의 발전도 사회가 보장해야 한다고 논리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거죠. 19세기에 정치적 권리가 생겼고, 20세기에 사회권이 생겼다면, 21세기에는 이른바 ‘연결권’이 생겨야 해요. 단순히 인터넷 사용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인터넷에 연결해서 무언가 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거죠. 그런 권리를 포괄적으로 정의하는 식으로 시민권에 대한 접근을 바꿔나가는 게 어떨까 생각해요. 예를 들어, 무선인터넷(와이파이) 같은 건 공공서비스가 되어야 하겠죠.

 

: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만 더 드릴게요. 4차 산업혁명을 어쨌든 긍정적인 것으로 보고 계신 건가요? 사람들은 새로운 현상이 생기면 긍정적으로 보기도 하고 부정적으로 보기도 하잖아요.

 

홍: 새벽이 오는 게 긍정적인가요, 부정적인가요? 아무것도 아니죠. 그냥 새로운 상황이 열린 거예요. 현존하는 글로벌 신자유주의와 금융 자본주의가 변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긴 왔어요. 다만 “4차 산업혁명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이냐?”는 부분은 예측할 문제가 아니고, 어떤 가능성들을 품고 있는지 면밀히 조사해서 어떤 최선의 옵션으로 실천해갈까를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4차 산업혁명이 온다는 사실 자체는 부인할 수가 없어요. 인간 세상에서 어떤 종류의 변화는 마치 계절이 바뀌듯이 그냥 바뀌는 종류의 변화가 있어요.

 

제가 일전에 1차, 2차, 3차 산업혁명의 역사나 이후에 대해 공부한 바가 있어요. 그런데 이 부분은 사람이 의지로 어떻게 하는 게 아니라, 마치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아주 근원적인 변화가 다가오는 것이에요. 여기서 우리에게 선택지가 있기는 하죠. 예를 들어 중화학 공업이 건설될 때 독일 사람들은 나치 체제를 만들었고 스웨덴 사람들은 사회민주주의 체제를 만들었어요. 그게 1930년대 모습들인데, 저는 지금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도널드 트럼프가 이끌게 된 미국사회처럼 안 되려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 진보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냐? 4차 산업혁명을 거부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능동적으로 개혁해나갈 문제인 거죠.

 

박이대승: , 그러면 대담은 이렇게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다음 주에는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오건호 님을 모십니다. >

 

* 기사 작성: 박아름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연구원, 前 SBS 기자)

 

* 대담 순서

1주 / 왜 청년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가? –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박이대승 소장

2주 / 페미니즘, 청년을 향하다 – 권김현영 성공회대 여성학 강사

3주 / 민주주의: 광장의 정치, 제도의 정치 –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

4주 / 경제의 재구성: ‘헬조선’과 ‘기본소득’ – 홍기빈 칼폴리니사회경제연구소 연구위원장

5주 / 청년정책인가, 사회정책인가? –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대담 제목은 추후에 변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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