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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정책/활동 쟁점정리] 연속대담 #32016년 11월 28일

<대담 #3. 민주주의: 광장의 정치, 제도의 정치 >

 

매일 저녁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촛불을 밝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뉴스가 터져 나오고,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연일 몸집을 불려가고 있다. 대통령과 비선 실세들이 수년째 국정을 농단해온 초유의 사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믿기지 않는 일들에 사람들은 분노하고 절망한다. 2016년 한국 사회의 모습이다.

 

미국에서는 차기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됐다. 8년 전, 미국 역사상 최초로 흑인 대통령을 맞이하며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환호하던 이들은 혼란에 빠졌다. 여성을 비하하고 이민자와 성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을 억압하는 정책을 공연히 천명하던 후보자가 대통령이 됐다. 사회의 다양성을 보장하고자 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누구보다 다양성을 반대하는 지도자가 나오는 역설적 상황이다.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가 ‘위기’에 봉착했다고 말한다. 과연 우리가 믿었던 제도들이 잘 작동하고 있었던 것인지 의심을 품고, 더 이상 제도를 믿지 못하겠다며 직접 광장으로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청년 세대가 있다. 87년 민주화를 겪은 세대와 달리, 2008년 촛불집회와 2016년 지금의 사태를 겪고 있는 청년들은 민주주의를 강하게 열망하면서도 제도를 불신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광장의 정치, 그리고 제도의 정치에 관하여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박이대승 소장이 정치발전소 박상훈 학교장과 대담을 나누었다.

 

* 대담자: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

* 면담자: 박이대승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소장)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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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정치에 대한 항의 2016, 정치에 대한 요구” >

< “입법부가 권력의 한 축으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맡아야” >

 

박이대승: 오늘 대담은 정치공동체 내에서의 민주주의, 즉 국가 수준에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요. 다음으로 활동가들이 실제로 고민하는 공동체나 조직 내에서의 민주주의 문제를 얘기하려고 합니다.

 

먼저 시국과 관련해서 사람들이 민주주의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관한 문제가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 사람들이 광장에 나와서 주권자인 국민이 나서야 한다.” 이런 식의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국민이 직접 주도하고, 판을 짜고, 저항하는 식의 광장의 정치에 대한 믿음과 열망이 광범위하게 퍼져있습니다. 그 주요한 배경을 살펴보자면, 제도가 무너지고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꼽는데요.

 

제가 조금 다른 관점에서 질문을 던져보자면, “그 선후 관계가 반대인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무슨 말이냐면,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올 시간에 제도를 잘 만드는 데에 시간을 더 투여하면 안 될까?”라는 생각인데요. 이른바 광장의 정치에 집중되는 것이 오히려 정당정치를 바로 세우는 데 장애가 되진 않을까? 87년 이후로 따지면 상당히 오래 지났는데 여전히 광장의 정치로 수렴되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원인을 찾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박상훈: 네, 저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민주화를 이룬 방법 자체가 기존 정당 가운데 민주주의를 주관했던 정당들이 당시에 어떤 민주화를 주도했다기보다는 정치 밖에 있는 일종의 사회세력으로서 학생운동이 중심이 됐어요. 그러니까 정치체제 밖에서 민주주의에 충격을 줬던 것이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고 민주화를 촉발한 힘이었다는 측면이 있어요. 일종의 과거의 전통처럼 자리 잡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패턴이 있고요. 다른 하나는 우리가 기존 체제를 붕괴시키고 난 뒤에 새로운 체제를 만든 것이 아니라 기존 체제의 틀 안에서 민주화를 했기 때문에 생기는 양상인데요. 과거 사람들이 요구했던 새로운 체제 구축을 스스로 실현하지 못했기 때문에 광장에 다시 모이게 되는 거죠.

 

87년 민주화 당시에도 그랬고 2008년 촛불집회 때도 정치 밖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죠. 엄밀한 의미에서 정치에 기대를 하기보다는 정치에 대고 항의한 것이었어요. 2008년 촛불집회는 슬로건 자체도 “정당은 오지 말라”는 것이었죠. 정당 대표들에게 발언권도 안 주고 그랬는데, 결국은 그것 역시 뒤로 갈수록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정치가 그래도 중요하구나.”를 인식하고 헤어졌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이번 촛불집회는 다르죠. 애초에 정치체제 안에 있는 야당 대표들을 향해서 광장으로 나오라고 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어느 정도 발전한 면이 있고요. 동시에 촛불집회에 나오는 사람들도 “정치가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정치를 조금 다르게 만들어보자는 것이 내면에 있는 의식이자 바람인 것 같아요. 우리가 이렇게 하야든 퇴진이든 요구하면 정치도 병행해서 활성화될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인 거죠. 결국은 마지막 대안을 만드는 것은 정치인들이 해야 하지 않느냐는 쪽이 큰 의견으로 자리를 잡아서, 저는 8년 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박이대승: 지금 하루가 다르게 정치 상황이 바뀌고 있는데요. (대담이 진행된 1110일 기준으로) 거리에 있는 시민들은 정당에게 거리로 나오라고 하고, 정당은 안 나간다고 버티고 있잖아요. 그러면 이 상황에서 정당은 어떻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시는지?

 

박상훈: 일단 시민들은 뭐든지 자유롭게 행동하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소위 입법부라고 불리는 민주주의 중대 기관의 태도는 조금 아쉬운 면이 있다고 보이죠. 대통령 중심제에서 행정부를 이끄는 대통령의 권위가 부정될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을 때 의회가 그 역할을 대신해서 정치 제제를 뒷받침해주는 게 민주주의입니다. 그런데 지금 촛불집회에 대해서 입법부가 소극적으로 받아들이거나 혹은 안 받아들인다는 정도의 반응을 보이는 것은 우리가 부여해준 헌법적 권력을 책임 있게 쓰는 방법은 아니라고 보죠.

 

일단 이 사태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봐요. 국정조사나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방법이고요. 설령 검찰 조사가 있다 하더라도 그 조사가 공정하게 이뤄지는지를 정당이나 의회 차원에서 검토위원회를 만들어서 압박하는 방법도 있고요. 의회 내에서 입헌적 권위를 갖는 조사를 하고 이 사태에 대해 어떻게 정의를 내리고 어떻게 책임을 물을 지에 대한 부분들을 공적으로 논의하고 토론해야 한다고 봐요. 대표기구로서 입법부의 노력과 바깥에 위치한 시민적인 요구가 병행되면 시민들도 훨씬 덜 불안하겠죠. 그래야 결과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고요.

 

지금은 그냥 국회가 소극적인 위치에 머물러 있고, 일반 시민의 총의로서 보이는 집회와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상태로 볼 수 있는데요. 그게 결코 좋은 일은 아니란 거죠. 국회도 일반 시민의 대표로서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주면 훨씬 낫겠죠. 시민들도 집회에서 언론만 보고 정보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입헌적 권력 구조 안에서 이뤄지는 적법한 과정들을 보게 되면, “이 부분은 책임을 물어야겠다.” 혹은 “이 부분은 적법하게 탄핵을 해야겠다.” 이런 논의를 확신을 가지고 할 수 있을 텐데 지금은 그 과정이 빠져 있어요.

 

입법부도 위임받은 권력이잖아요. 저는 반드시 입법부가 대통령 중심제에서 권력의 한 축으로서 한쪽이 무너졌을 때 다른 주권체로서 역할을 본격화해야 한다고 보고요. 훨씬 더 책임 있고 공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강력하게 갖고 있죠.

 

 

< “권위·제도 없는 민주주의는 불가능” >

< “안철수 현상은 지극히 권위적인 현상” >

 

박이대승: 지금 말씀해주신 부분은 민주주의 제도 내에서 정치인들이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였는데요. 논의의 축을 바꿔보면, 거리에 나와 있는 시민들, 제도 밖에 있는 시민들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른바 포퓰리즘(populism)’이라고 불릴 수 있는 정치적 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인데요. 포퓰리즘에 대한 정의는 학자마다 다르겠지만, 통상적 수준에서 얘기하자면 이것은 반지성·반제도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잖아요. 저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거리의 정치도 넓은 의미의 포퓰리즘에 포괄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거리의 정치라는 것이 제도의 체계적 구성을 바라는 시민들이라기보다는 사실 반제도 혹은 제도 밖 영역에 있는 시민들이란 말이죠. 제도를 거부하고 있는 무정형의 대중들이 있잖아요. 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드러내는 모습은 아주 강렬하고 때로는 폭력적 양상이기도 하죠. 이런 포퓰리즘적 운동이야말로 정치의 원형으로서 긍정되어야 하지만, 때로는 민주주의적 체계 수립의 걸림돌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민주주의에 대한 합의된 이해도 존재하지 않죠. 이렇게 제도 밖에서 정치를 변화시키려는 시민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박상훈: 포퓰리즘은 두 차원의 요소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민주주의의 원천이자 내재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가 아무리 권력을 위임하더라도, 그 권력의 원천은 언제나 사람들의 의사나 열정에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죠. 다른 하나는 지금 말씀하신 대로 “나의 의사가 중요하지, 그 과정에서의 제도나 절차 이런 것들에는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이 또 다른 차원의 포퓰리즘이죠. 후자에 대해서는 민주주의가 하나의 통치 체제라는 부분에 관해 논쟁도 하고 필요하다면 설득을 해야겠죠.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공동체 안에서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여러 노력 중 하나인데요. 그 방법에 있어서 국가 또는 정치체제라는 공적인 질서를 받아들이는 것, 달리 말하면 우리를 규율할 수도 있는 폭력적 권위체를 수용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다만 이게 너무나 위험하기 때문에 여러 방법으로 이 권력을 투명한 절차나 제도에 묶어두겠다는 게 민주주의이죠. 그러니까 질서, 권위, 규범, 제도, 체계 등을 거부한다면, 그건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국가 없는 자연 상태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라는 점을 설명해야겠죠.

 

어렵지만 우리가 결심하고 결정한 건 개인의 권리나 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는 공적 권력을 받아들이고 정치공동체를 만든 것이에요. 그 방법 중에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더 좋겠다고 해서 30년 전에 민주화를 했던 거죠. 그렇다면 “이 제도와 체계 속에서 시민적 열정이나 의사가 조금 더 활발하게 발휘될 방법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게 우리가 할 일인 것이죠. 국가와 제도, 체제 이런 모든 것들을 버리고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사실은 자연 상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건 절대로 안전하거나 평화롭거나 자유로운 게 아니라 만인의 만인에 대한 또 다른 격렬한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죠. 이런 설명을 계속 해야겠죠.

 

박이대승: ‘권위 없는 민주주의라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박상훈: 그건 안 되죠. 왜냐면 권위는 인간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세상에서 집단적인 과정에는 반드시 있는 것이에요. 하다못해 식물조차도 서로 조그만 땅을 견디며 공유할 때 어떤 식물들은 같이 심으면 한쪽 식물이 자라지 못하거나 죽는 경우가 있어요. 당연히 동물의 집단에도 위계적인 요소가 있고요. 피조물들이 모여서 상호작용하며 사는 모든 곳에는 권위 현상이 있다고 봐요. 다만 권위를 민주적인 기초 위에 세울 것이냐, 힘으로 세울 것이냐, 타고난 혈통이나 가문의 원리로 세울 거냐, 아니면 계급의 원리로 세울 거냐, 그것이 우리가 다투는 문제인 거죠. 권위가 없다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겠다는 뜻하고 똑같다고 봅니다.

 

박이대승: 저는 이 문제가 왜 중요하다고 생각했냐면, 그동안 한국 사회의 정당정치를 봤을 때 어떤 변화를 일궈낸 에너지들의 상당수가 사실은 여기서부터 나오기 때문인데요. 이른바 안철수 현상이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왜 안철수를 좋아하는지 보면 그가 공감해준다.”, “자신과 소통해주는 것 같다.” 이런 식이거든요. 비권위적으로 느껴진다는 말이죠. 안철수가 더 민주적인 지도자일 것 같다는 느낌인 거죠, 그런 인상.

 

박상훈: 네, 정확하게 말씀하시네요. 인상이죠. 덜 권위적인 것 같은 느낌. 그런데 사실은 ‘안철수 현상’ 자체가 굉장한 권위적인 현상이에요.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추종한다는 사실이기 때문에 그것조차도 권위적인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거죠. “이 사람은 권위적이지 않을 것 같아.”라는 건 문제 설정 자체가 비현실을 말하는 거죠.

 

박이대승: 정당정치의 입장에서 흔히 우리가 포퓰리스트(populist)’라고 부르는 정치인들이 사실은 이러한 흐름들을 가져와서 자기 것으로 쓰는 사람들인 거잖아요. 예를 들어 이재명 시장 같은 분을 보면, 발언 하나하나가 시민들의 반권위주의적이거나 반제도적인 정서들을 자신의 정치적 힘으로 가져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제도권 내에 있는 정치인이 이렇게 반제도적 정서를 자신의 정치적 힘으로 쓰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박상훈: 일단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게 어쨌든 사람들의 열망을 확산시킬 수 있고, 정체된 현상들에 활력을 갖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주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문제죠. 부정적으로 보자면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폐쇄적인 대중적 권위의 기반을 더 협소하게 만들 테고요. 잘 쓰면 민주당이나 야당을 활성화하는 데에 좋을 테고요. 당 안에 다양한 민중적 에너지를 끌어들이거나 기존에 못 가진 요소들을 자극해 낼 수도 있으니까요. 두 가지 경로 사이에 있다고 생각해요.

 

 

< “잘못했을 때 책임 물을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 >

< “한국 민주주의는 87년 이후 꾸준히 발전” >

 

박이대승: 민주주의라는 것이 누구든 못하면 당연히 정권교체가 되는 것이고, 그 대상이 박근혜든 이명박이든 트럼프든 그게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 제도의 당연한 작동 방식인데요. 조금 다른 질문을 드리자면, 지금 시점에서 박근혜 정부를 보면 제도가 작동하고 그 안에서 권력이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라 제도 자체가 거의 붕괴한 상황이 아닌가 이런 의문이 들어요. 최근에 박근혜최순실 사태가 드러나는 것을 보면, 통치를 제대로 못 하는 게 아니라 사실상의 정치적인 체제가 작동을 중단한 것처럼 보이거든요.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민주주의적 제도가 작동하고 있다고 봐야 할까요?

 

박상훈: 물론이죠. 제도가 작동하기 때문에 잘못된 통치라고 여겨지는 부분에 대해서 사람들이 항의도 할 수 있고 자기 의사도 표출하는 것이니까요. 그게 민주주의죠. 대통령이 잘해야 하는 것을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그것은 냉정하게 말하면 고전적 이론에서 군주정의 모습이에요. 우리는 시민적 의지를 그 자체로 집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여러 권력으로 쪼개 놓은 거잖아요. 말하자면 군주정의 원리를 민주정으로 변형해서 쓴 거예요. 그러니까 “잘해야 민주주의”가 아니라 잘못했을 때 책임을 물을 수 있으면 민주주의인 거죠.

 

지금 상황 자체를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좋은 해석이 아니라고 봐요. ‘박근혜’라는 인물, 시민 다수가 뽑은 사람이 통치 행위를 잘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대통령이 잘못한 것은 그 사람의 문제로 봐야 하고, 헌정은 지금 건재하죠.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제 역할을 못 하면, 헌정질서의 대안으로 존재하는 탄핵을 논의하는 게 당연하죠. 이게 탄핵감인지도 따져야 하고, 헌법에 있는 조항에 따라 형사소추에 상당한 일인지에 대한 조사도 이뤄져야 하고, 그에 맞도록 입법부의 결정이 이뤄져야 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탄핵소추가 시작되는 거죠. 이건 우리가 지금 헌정의 틀 안에서 정치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민주주의 때문에 이런 과정도 잘 이뤄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죠.

 

만약 우리가 완벽한 민주주의를 머릿속에서 구상해 본다면, 그걸 제도로 커버할 수 있는 비율이 제 생각에 30% 정도 되는 것 같아요. 70%는 역시 사람이 움직여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늘 실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는 체제이죠.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제도가 실패하면 제도를 개선해가고 통치행위가 잘못되면 새로운 규범으로 억제해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발전이에요. 이번 일도 “민주주의 발전의 결과로 이어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점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박이대승: 그렇다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지금 이 시점을 기준으로 봤을 때, 87년 이후 지금까지 한국 민주주의가 발전해왔다고 생각하시나요?

 

박상훈: 네, 한국의 민주주의는 늘 의심의 대상이 되고 불신의 의혹도 받고 그랬지만, 꾸준히 그 제도나 체제가 갖는 장점을 보여줘 왔다고 생각하죠. 다만 그 체제가 더 바른 길로 가기를 바랐던 사람의 기준에서는 여러 면에서 기대에 못 미치고 있는 상황이죠. 저는 민주주의가 체제로서의 작동을 멈췄다거나 끝났다고 보기보다는 기대만큼 사회를 좋게 만드는 데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그건 민주주의라는 체제의 실패라기보다는,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가 권력을 위임했던 사람들의 책임이라고 보고요. 민주주의 자체를 의심하거나 이럴 경험적인 사례는 없었던 거 같아요. 민주주의 내의 수많은 제도가 장점을 발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지, 민주주의 자체를 없애고 다른 경로를 생각할 일은 전혀 아니라는 얘기죠.

 

 

< “민주주의는 국가와 정치체제에 관한 것” >

< “민주주의를 모든 조직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없어” >

 

박이대승: 공동체 내 민주주의로 넘어가 볼게요. “누군가 저를 대표하는 게 싫어요.”라는 생각, 아주 극단적으로 어떤 공동체를 가더라도 리더가 있는 게 싫다는 경우가 있어요. 정당이든 리더든 나를 대표하는 것이 싫다는 거예요. 그런 리더라는 건, 직장 내의 상사일 수도 있고, 공동체에서 나보다 목소리가 큰 친구일 수도 있고, 가족 내에서 아버지일 수도 있겠죠. 나는 내 생각이 중요하고, 누군가 대신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 목소리를 직접 내고 싶다는 생각, 최근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이른바 수평적 민주주의라는 말을 쓰기도 하고요. 이런 흐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박상훈: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조직의 운영자라면 그런 문제에 대해 책임 있게 대응해야겠지만, 일반 조직 구성원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다만 “이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면, 할 수 없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라고 말을 해야겠죠.

 

이 문제를 토론하려면 민주주의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해요. 방금 말씀하신 유형의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어떤 상호작용의 관계로 이해하는 것 같아요. 서로 의사소통하고 일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가 됐으면 좋겠다는 거죠. 물론 그 부분에서도 민주주의라는 말로 논의를 할 수 있겠지만, 결국은 민주주의는 “공동체, 사회, 국가, 조직 안에서 공적 결정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어떤 방법으로 구속력 있는 공적 결정의 권위를 인정해줄 것이냐?”에 관한 문제이지, 가족이나 회사 내에서 맺어지는 관계들을 모두 민주주의로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저는 민주주의자로서 정치체제는 반드시 민주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정치체제가 아닌 조직들 – 대표적으로 회사나 사회단체 – 은 반드시 민주화해야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다른 원리들도 충분히 있을 수 있기 때문이죠. 서로 책임을 공유하는 공동체주의도 좋을 수 있고, 가족주의도 좋은 제도일 수 있고, 업적주의나 능력주의도 얼마든지 역할을 할 수 있어요. 다만 그 원리를 결정함에 있어서, 조직 내 권위를 인정할 방법을 민주적으로 결정했다면 더 좋은 거겠죠.

 

정리하면, 모든 개별 조직에 민주주의가 유일한 규율 원리라고 보는 것은 민주주의를 과용한 것이고요. 정치체제가 아닌 다른 조직에서는 민주주의가 여러 운영원리 중 하나로 고려됐으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이게 반드시 합의가 아닐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회사는 당연히 처음 회사를 만든 사람들에게 주권이 있겠죠. 물론 그들이 조직의 운영원리를 정함에 있어서 구성원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조율하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고 해서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나 싶어요. 민주주의에 대한 명령은 기본적으로 국가와 정치체제에 관한 것이고, 나머지 체제는 얼마든지 다른 조직원리에 대한 합의가 가능하다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박이대승: 민주주의는 그 안에 있는 개인들의 절대적인 평등 관계를 전제하잖아요. 사람들이 국가적 수준이 아니라 일상적 수준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를 계속 제기하는 이유는, 결국은 모든 사회영역에서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위계질서 때문이거든요. 사실 한국에서는 나와 타인이 동등한 지위에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조직이 거의 없어요. 학교든 회사든 극단적으로 위계화되어 있죠. 저는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일상적 수준의 인간과 인간의 어떤 평등한 관계를 민주주의라는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고 보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아까 말씀드린 누가 나를 대의하는 게 싫어요”, “리더십이 싫어요라고 하는 말들이 다양하고 거칠게 표현이 되지만, 사실상 그 위계질서 전체에 대한 반대로서의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것 같아요.

 

박상훈: 제가 책에 썼던 것처럼, 민주주의가 한국사회에서 뚱뚱해져 있는 거죠. 어떤 경우는 평등하고 수평적인 계약적 관행을 통해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고 어떤 경우는 노사관계처럼 할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노사정위원회에서 노총들에게 권한을 주는 것은 꼭 민주주의는 아니거든요. 중요한 집단적 행위자에게 유사 주권을 주는 것이죠. 복합적 조직에서 어느 정도는 민주주의로, 어느 정도는 업적주의로, 어느 정도는 공동체주의로, 이렇게 각자 상황에 맞게 하는 것이 개개인들에게 가장 자유롭고 평등한 방식이 아닐까 생각해요.

 

민주주의는 정치적 평등의 원리이지, 사회문화적으로 모든 평등을 확정해주는 게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정치의 효과를 사회적으로 넘쳐 흐르게 하는 것이 일이지, 민주주의라는 것에 대한 이해를 급진화해서 될 일이 아니고, 민주주의 원리를 모든 조직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도 없죠.

 

박이대승: 이제 논의를 정리해야 할 것 같은데요. 마지막으로 화제를 틀어서, 미국 대선에 대해서 한 마디 해주실 수 있을까요?

 

박상훈: 일단 미국에 있는 유색인종들이나 소수인종들에게는 이 사태가 굉장히 고통스러울 거예요. 그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트럼프에 대해 악담을 수천 번 할 수도 있고, 미국 민주주의가 뭐 이따위인가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결국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걸로 모든 게 망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또 힘내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민주주의는 절대로 완성된 이상적인 체제를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 문제가 있는 곳에서 늘 그걸 집단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노력과 혼란 속에 있는 개념이기 때문에요.

 

“민주주의 해도 소용없다”, “그래 봐야 트럼프가 뽑히지 않았느냐”, “우리도 4년 전에 박근혜 뽑지 않았느냐”, 이렇게 생각하면 민주주의는 좋아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민주주의자는 “해봐야 소용없다.”는 태도가 아니라 “안 되도 한다. 그리고 하면 되더라.”라는 태도를 가져야 해요. 50번 중에 한 번 성공해도 그게 가치 있다고 믿어야 하는 거죠. 그래서 트럼프 현상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며칠은 신나게 욕하고 그 다음에는 다시 민주주의를 향해 노력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민주주의가 분명히 체제를 확 변하게 만드는 데에는 어려운 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람시(Gramsci) 말에 따르면, 이건 약간 헤게모닉한 체제에요. 오히려 혁명을 어렵게 만드는 거죠. 그런데 민주주의의 장점은 꾸준히 노력한 부분을 나중에 집합적으로 보상한다는 거예요, 한 방에. 우리가 지금 그것을 광장에서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대통령의 권위가 중단된 상태에서도 시민들이 모여 있는 광장에서, 그리고 우리의 대표들이 모여 있는 입법부에서 체제를 건강하게 운영할 수 있음을 보여주면 한꺼번에 보상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러면 다음 대선에서는 적어도, 정부가 어떤 과업을 가져야 하는가를 풍부하게 논의하는 선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광장에서 박근혜와 최순실을 몰아내고 처벌하는 것으로 끝날지, 그걸 넘어서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를 둘러싼 논의를 확산할 수 있을지는 우리가 함께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박이대승: , 그러면 대담은 이렇게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다음 주에는 칼폴리니사회경제연구소 연구위원장 홍기빈 님을 모십니다. >

 

* 기사 작성: 박아름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연구원, 前 SBS 기자)

 

* 대담 순서

1주 / 왜 청년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가? –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박이대승 소장

2주 / 페미니즘, 청년을 향하다 – 권김현영 성공회대 여성학 강사

3주 / 민주주의: 광장의 정치, 제도의 정치 –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

4주 / 청년의 노동, 활동, 소득 – 홍기빈 칼폴리니사회경제연구소 연구위원장

5주 / 청년정책인가, 사회정책인가? –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대담 제목은 추후에 변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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