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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정책/활동 쟁점정리] 연속대담 #12016년 11월 15일

청년정책/활동 쟁점정리연속 대담 #1

 

* 청년정책을 설계하고 청년활동을 기획하는 청년연구자들은 다양한 현실적, 이론적 쟁점에 부닥칩니다. 불평등과시민성 연구소는 서울시 청년허브와 함께 이런 쟁점들을 이해하고 해결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연속 대담을 준비했습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심층 대담을 진행하고, 그 결과물을 핵심 청년연구자들을 위한 기본 커리큘럼으로 제작할 예정입니다. 이 연속 대담을 통해 앞으로 청년연구가 다루어야 할 기본 주제들을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대담 순서

 

1주 : 왜 청년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가? –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박이대승 소장

2주 : 청년세대 담론과 페미니즘 – 권김현영 성공회대 여성학 강사

3주 : 청년이 제기하는 민주주의의 문제들 – 박상훈 정치발전소 교장

4주 : 청년의 노동, 활동, 소득 – 홍기빈 칼폴리니사회경제연구소 연구위원장

5주 : 청년정책인가, 사회정책인가? – (사회정책 연구자 섭외중)

 

*대담 제목은 추후에 변경될 수 있습니다.

 

 

< 대담 #1 : 왜 청년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가? >

 

벌써 몇 해가 지난 얘기이다. 자신의 노동문제를 직접 해결하고자 하는 청년들이 ‘청년유니온’을 만들었고, 열악한 주거환경에 고통 받는 청년들이 모여 ‘민달팽이유니온’을 결성했다. 청년들이 전면에 나서 당사자로서 직접 자신의 얘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해를 거듭하면서 이들의 활동은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몇 번의 선거를 거치며 청년문제는 정치권의 화두로 떠올랐고 이제 어느 정당이든 어느 정치인이든 가릴 것 없이 청년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이제 말뿐인 공약을 넘어서 눈에 보이는 제도가 나오고, 예산이 투입되고, 정책이 집행되는 시점이 왔다. 하나같이 청년의 내일에는 더 나은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했다.

 

그런데 과연 청년의 오늘은 달라졌을까? 수많은 청년정책이 시행됐지만 정작 청년들이 느끼는 삶은 몇 해 전 처음 문제가 제기될 때에 비해 나아지지 않았다. 청년실업률은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학자금대출은 청년들의 어깨를 짓누르며 주거환경은 나날이 열악해져 간다. 많은 이들이 청년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정책을 만들어 예산을 투입했는데도 말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청년정책, 이대로 괜찮은 걸까?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박이대승 소장은 청년정책에 대한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청년 문제들을 어떤 언어로 인식하고 어떤 방법으로 다룰지에 대해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보다 구체적인 논의를 위하여 박이대승 소장이 각계각층의 전문가들과 대담을 나누기로 하였다. 앞으로 5주에 걸쳐 대담 내용을 연재한다. 첫 순서로 박이대승 소장과 대담을 진행하였다.

 

* 대담자: 박이대승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소장)

* 면담자: 박아름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연구원, 前 SB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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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불평등과 시민성 연구소를 새로 만드셨는데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불평등과 시민성 연구소. 간단하게 말하면 한국 사회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핵심 개념들을 재구성하는 것이 연구소의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여되어 있는 핵심적 요소 중에 가장 중요한 게 시민성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시민성이라고 하는 개념을 새롭게 구성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지금 한국 사회의 다양한 측면들을 분석하고, 나아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해법까지 분석하는 게 저희 연구소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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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의 문제점은 불평등으로 포괄될 수 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민성의 개념이 정착되어야 한다는 뜻이겠네요. 시민성이라는 개념이 철학이나 정치학 등 학술적인 차원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굳이 이 시점에 현실 정치에 대해 논할 때 시민성이라는 개념을 끌어와서 그것으로 사회를 분석해야할 필요성이 있나요?

 

= 사회를 분석하는 것과 해법을 제시하는 것, 즉 이론적 논의뿐 아니라 모든 수준의 대화에서 시민성 개념이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왜냐하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국민이라는 말을 매우 많이 쓰잖아요. 일상생활에서도 그렇고 정치적인 논의에 있어서도 그렇고, 이론적인 논의에 있어서도 그렇고, 법률적인 논의에 있어서도 한국 사회에서 국민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죠. 그런데 국민이라고 하는 말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민주주의 체제, 공화주의 체제랑은 안 맞는 말이거든요. 이 국민이라는 말을 시민으로 사실은 대체를 시켜야 되는 거죠.

 

시민성 관련해서 더 이야기해본다면, 한국에서는 이 용어가 지금까지 설명하신 것과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이해되어 왔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시민성이 떨어진다이런 식의 표현을 할 때 시민성이라는 단어를 써왔단 말이죠. 여기서는 시민성이라는 단어가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에게 무언가 요구하는 뉘앙스를 줍니다. 이렇게 한국에서는 시민이라는 개념이 외국의 ‘citizen’ 개념과는 다른 식으로 이해되어 왔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 그렇죠. 일단 시민의 본래 의미는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정치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각 개인들을 시민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리스 폴리스에 사는 각 개인들, 그리스인들이 그리스 시민이고, 한국에서는 한국이라는 국가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각 개인들이 한국 시민 이렇게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한국에서 시민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걸 보면 이런 의미로는 잘 사용되지 않죠. 그러니까 정치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지 않고 특이한 형태로 쓰이고 있어요.

 

첫 번째로 방금 말씀하신 “시민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말. 이건 정체불명의 말이에요. 시민의식이 뭔가요? “시민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쓰이는 경우는 거리에다가 쓰레기 버리지 말라는 것밖에 없거든요. 그러니까 시민의식은 거리에다가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의식인 거죠. 그 다음에 시민이라는 말이 쓰이는 경우를 보면, ‘서울시민’ 혹은 ‘부산시민’. 이건 진짜로 그 시에 사는 사람을 의미할 때 그 시민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의미는 ‘시민운동’이라고 할 때 시민입니다. 그나마 이게 가장 새로운 시민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건 90년대에 시민운동이 폭발적으로 성공하면서 이 새로운 사회운동의 주체를 누구로 잡을까 했을 때 주체들을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규정한 거죠. 여기서 시민이라는 것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어떤 변혁적인 노동자 계급이라든가 민중 이런 것들이 아니라, 지식인 혹은 사회의 중산층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을 시민으로 규정하고 이들이 시민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봤던 거죠.

 

굳이 이야기하자면 이렇게 세 가지 정도의 의미만 있는 것이고요. 원래 ‘citizen’이라는 서구어가 가지고 있는 ‘정치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인’이라는 의미는 한국 사회에서 존재한 적이 없는 거죠. 그리고 저는 그 이유로 무엇보다 국민 개념이 강력하게 시민 개념의 도입을 차단시키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시민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설명이 된 것 같고 청년 주제로 넘어가볼까요?

 

언제부터인가 청년이라는 말이 정치권에서 이른바 치트키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정치진영이나 정당을 떠나서 청년정책을 쏟아내고 있는데요. 청년에 대한 관심도가 그만큼 높아졌고 관련된 청년정책이 많이 나오는 것은 좋은 것 아닌가 생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소장님은 청년이 정치적 언어가 됐다고 주장하고 계시죠. 그게 어떤 의미인가요?

 

=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청년이라는 말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정치 언어로만 사용되고 있는 게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문제가 뭐냐면, 사람들이 각자 청년이라는 말을 쓸 때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자문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도대체 당신은 청년이라는 단어로 무엇을 의미하는 거냐?”라고 물어보면, 사실 여기에 대해서 분명한 정의로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물론 법률적인 개념은 있죠. 만 몇 세부터 몇 세까지. 사실 그것도 경우에 따라서 다르죠. 청년고용촉진특별법에 따른 연령구간, 서울시 청년수당의 대상이 되는 연령구간, 성남시 청년배당의 대상이 되는 연령구간이 모두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각자가 청년이라는 말을 쓰고 있기는 한데 도대체 청년이 지칭하는 게 누군지에 대해 정의가 없어요. 그래서 언어적인 수준에서 청년이라고 하는 말이 지칭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먼저 제기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답은 정해져 있어요. 고정된 의미가 없어요. 청년이라는 말이 도대체 뭘 의미하는지 정체불명이에요.

 

오로지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 그 단어가 활용되고 있는 거죠. 의미가 모호하고, 여러 개의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고, 때로는 의미가 없는 청년이라는 말이 어떤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만 활용되고 있는 거죠, 물론 이 정치적인 목적은 매우 다양할 수 있겠지만.

 

결국은 각종 청년정책들이 정치진영을 떠나서 나오는 것은 청년이라는 말이 언어로써 활용하기 좋아서일 텐데요. 다른 집단도 있을 수 있는데 왜 굳이 청년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이 있던 걸까요? 청년이라는 집단이 어떤 특수성을 가지고 있기에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좋았을까 궁금하네요.

 

= 근원을 찾아 올라가자면 청년이라는 말이 이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게 된 것은 <88만원 세대>라는 책 때문이죠. <88만원 세대>에서 88만원만 받고 계속 일할 수밖에 없는 불안정 노동자의 문제를 제기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신기한 건 뭐냐면, 88만원만 받고 사는 게 문제면 그건 불안정 노동의 문제이고 일자리의 문제이고 고용의 문제니까 ‘88만원 계급’이라든가 ‘88만원 집단’이라든가 이렇게 말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88만원 세대’라고 했단 말이에요. 이 자체가 매우 정치적인 전략이죠. 무슨 말이냐면 당시 20대 중에서는 당연히 한 달에 200만원 버는 사람도 있고 300만원 버는 사람도 있는데 88만원 버는 불안정 집단의 문제가 마치 전체 세대의 문제인 것인 양 보편화시킨 거죠.

 

그러니까 그냥 불안정 노동자라고 하면 협소한 문제로 제기되기 때문에, 이것이 특수한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세대 전체의 문제라고 보편적으로 제기하기 위해서, 이것은 불안정 노동의 문제나 일자리 문제가 아니라 청년문제라고 규정했던 거죠. <88만원 세대> 이후에 그 책의 영향을 받으면서 여러 사회 운동과 정치적인 활동들은 어떤 특수한 몇 가지 문제들을 세대의 문제로 전환시키려고 하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왜 세대의 문제로 전환시키려 했느냐?”라고 한다면 그건 너무 당연한 건데, 그럼 훨씬 많은 사람들이 관련되니까. 청년이라고 하는 말이 활용이 잘 되는 이유는 뭐냐면 이게 매우 강력한 메커니즘이기 때문에 그런 거죠. 사람들에게 “이건 불안정 노동의 문제야.”라고 이야기하면 그건 내 문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건 세대의 문제야, 청년 세대의 문제야, 무슨 세대의 문제야.”라고 얘기하면 그것이 당신의 문제이고 나의 문제로 느껴질 수 있으니까. 이게 청년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높은 활용도, 어떤 정치적인 역량의 하나의 배경이죠.

 

그런데 실제로 그 자체에 대해 평가를 해보면, 말씀하신 것처럼 불안정 노동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을 때 나올 수 있는 반응이나 파급력에 비해 ‘88만원 세대라고 했기 때문에 더욱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지 않았습니까? 전략적인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잘한 거라고 볼 수도 있지 않나요?

 

= 저는 그건 잘했다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매우 효율적인 전략이었고, 훌륭한 전략이었고, 실제로 지금까지 많은 성과들도 이뤘고요. 그런데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게 어떻게 보면 가장 핵심적인 내용인데, 보편화 전략이라는 것은 동시에 특수화를 동반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당시에 <88만원 세대>를 쓴 사람들은 20대 중에서 88만 원을 버는 일부의 문제를 20대 전체의 문제로 보편화시킨 거잖아요. 그런데 이건 동시에 20대만의 문제가 된 거에요. 다른 세대의 문제가 된 게 아니라 20대만의 문제로 다시 특수화되는 거죠. 즉 특수한 집단의 문제를 특정 세대의 문제로 보편화하는 순간에 다시 특정 세대만의 문제로 특수화되는 겁니다. 지금이 그런 상황이죠.

 

지금 청년정책이 나온 지 한참 되고 청년과 관련해서 말하는 사람은 많은데 왜 해결되는 게 전혀 없냐면, 청년문제라고 불리는 수많은 사회적 문제들, 대표적으로 청년실업, 주거, 빈곤, 니트(NEET) 등의 문제들이 있을 텐데요. 이 문제들을 청년문제라고 묶는 순간에 청년 전체의 문제로 확장되는 동시에 모두가 “아, 이거는 청년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결국에는 청년정책 하나 만들어놓고 일정 정도의 예산을 보장해 준 다음에 “이 안에서 다 해결해.” 이렇게 가는 거죠.

 

청년실업만 하더라도 청년실업을 해결하려면 한국 노동시장 전체의 문제가 전부 해결돼야만 청년 실업의 문제가 해결되는 거고, 이걸 해결하려면 사실은 전 국가적인 자원을 투입해야 하거든요. 고용노동부 들어가야 되죠, 경제 관련 부처 다 들어가야 되죠, 복지부 들어가야 되죠, 모든 역량과 예산을 투입해서 한국 노동시장 전체를 개혁해야만 청년실업 문제가 해결되는데 지금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청년 관련된 예산 얼마 요만큼 배치해 놓고는 “이 안에서 해결해.” 이렇게 되는 거죠. 그래서 사실상 <88만원 세대>가 나온 지 거의 한 10년 정도 됐지만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라는 거예요. 청년이라고 하는 그 말의 이중적인 특성.

 

저는 청년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방식을 2가지로 나누면 좋겠어요. 하나는 청년이라는 말이 정책적 개념으로 사용될 때가 있고, 다음에 정치적인 언어로 사용될 때가 있습니다. 사실은 정치적인 언어로 사용될 때는 이걸 좋다거나 나쁘다고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효과적이냐, 비효과적이냐는 차원에서만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88만원 세대’에서 청년은 효과적이었죠, 정치적인 목적을 수행하기로는. 문제는 정치적인 수준이 아니라 정책적 개념으로 쓸 때가 문제인데, 정책적으로 청년이라는 말을 쓰려면 철저하게 고정된 의미를 가진 말로 규정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청년은 누구이고, 어떤 집단인지 이런 것들이 명확하게 법에 규정이 되어야 하고, 그에 따라 제도가 만들어지고 관련되어서 사회적 자본이 투입되어야 하니까요. 제도적인 측면, 정책적인 수준에서는 청년이든 뭐든 모든 말이 명확하게 정의되고 고정된 의미를 가져야 하는데 청년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여전히 명확히 고정된 의미가 없이 애매모호한 의미로만 남아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정치적인 언어로의 청년은 배제하고 정책적인 차원에서만 논의를 집중시켜서 얘기해보죠. 말씀하신대로 지금 청년문제라고 나오는 것들을 살펴보면 사실상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다 갖다 붙일 수 있는 상황이잖아요. 그렇다면 청년정책, 청년이라는 이름을 걸고 나오는 정책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 그렇죠. 청년정책은 정책적 합리성을 결여하고 있는 정책이라고 생각해요. 왜 청년만을 위한 정책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답할 수가 없어요. 대표적으로 지금 여당이나 야당 할 것 없이 청년기본법을 발의를 했는데요. 청년기본법에 들어가는 내용을 보면 전부 헌법에 보장되어있는 기본적인 권리들이에요. 그런데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기본적인 권리들을 왜 청년기본법에서 청년을 대상으로 따로 만들어야하는지에 대해서 합리적인 설명을 할 수가 없죠.

 

그러면 지금 나오는 정책들에 대한 의견도 궁금해지네요. 최근에 청년정책이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게 청년수당이잖아요. 서울시 청년수당 정책이 있고, 그에 앞서 성남시 청년배당 정책도 있었고, 경기도에서도 그 비슷한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죠. 실제로 수혜자가 되는 청년들 입장에서는 이런 정책의 필요성을 느끼고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이런 구체적인 정책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마찬가지에요. 방금 질문에서 ‘청년들의 입장’이라고 했는데 그 청년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문제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청년정책에 대해서 청년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라고 보통 질문을 하는데, 그렇다면 “청년정책에 대해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 청년들은 대체 누구냐?” 이렇게 반문할 수 있는 겁니다. 정책적으로 연령대를 나눠서 특정되는 수혜대상이라고 좁혀서 봐도 그들을 단일한 대상으로 볼 수 있느냐, 집단으로 볼 수 있느냐 자체가 문제가 되겠죠.

 

서울시 청년수당 같은 경우 주목할 만한 점이 있는데요. 이게 현금을 지원하는 몇 안 되는 사업이잖아요. 만일 그게 이른바 청년들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고 청년들에게 핵심적이고 중요한 정책이라면, 중앙정부가 그걸 막은 순간에 뭔가 일이 일어났어야 해요. 수혜자들이 들고 일어나거나, 정부에 대한 어떤 집단 혐오가 벌어지던가, 뭔가 있어야 하는데 너무나 조용하게 지나갔거든요. 그냥 서울시 공무원들하고 중앙정부 공무원들이 싸우는 것에서 끝났단 말이에요. 왜 이렇게 되느냐? 한마디로 청년수당이라는 것은 받으면 좋은데 안 받아도 그만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매우 시혜적인 정책으로, 불쌍한 청년들에게 돈 몇 푼 지원해주는 것으로 그렇게 인식되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지 생각해보면, 근본적으로 청년정책이라고 하는 정책 범주 자체의 문제라는 거죠.

 

청년수당, 청년배당으로 얘기되는 정책들이 왜 시혜적인 형태로 될 수밖에 없냐면, 그러한 정책이 있어야만 하는 합리적이고 필연적인 이유가 없기 때문이에요. 가령 애초에 이들을 실업자 집단이라고 규정을 내렸으면, 합리적인 논리 근거를 계속 만들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대한민국 시민인데 지금 실업 상태에 있고, 실업 상태에 있는 시민들의 생활을 보장하는 의무가 국가에게 있고, 따라서 국가는 그런 실업 상태에 있는 시민들을 위해 어떠한 정책을 시행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고, 시민들은 그런 정책을 요구할 정당한 근거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거를 애초에 실업자라고 규정하지 않고 청년이라고 규정해놓으니까, 청년에게 청년정책을 꼭 해줘야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없어요.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꼭 이렇게 해줘야하는 건 아닌데, 너희들이 불쌍해 보이니까 해주겠다는 논리로 갈 수 밖에 없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성남시 청년배당, 서울시 청년수당 모두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는 없는데 청년들이 불쌍하니까 해주겠다는 논리가 된다는 거죠. 결국은 이 정책들이 근본적으로 시혜적인 성격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겁니다.

 

처음에 얘기했던 시민성 논의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청년에 대해서도 불쌍하니까 도와주는 식의 시혜적 접근이 아니라 청년도 시민으로서 권리를 당연하게 누려야 한다는 접근으로 가야 한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런 시민성 개념이 작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좀 회의적이었는데요. 예를 들면 시민이라는 개념 자체가 애초에 이론적으로 사용이 안 되고 정치적으로도 사용이 안 되니까, 정말 시민이라고 하는 개념이 한국 사회에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많이 회의적이었는데요. 오히려 최근에 한국 사회의 위기 상황을 보면서 오히려 더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최근 상황은 현 정부가 거의 자기 스스로 공중분해하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어떤 사회적 시스템도 그것을 사전에 방지하지 못한 이런 상황이죠. 이건 한국 사회가 이른바 근대화 과정을 거쳐서 지금까지 온 전체 역사가 한 번 종결되었다고 생각을 해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른바 근대화라고 하는 게 뭐냐면 합리성이란 말이에요. 서양 유럽에서 시작해서 합리적으로 구축되는 지식 체계와 사회 시스템, 정치 체계 이런 것들을 만들고 쌓아가는 과정을 근대화라고 생각했던 건데요. 지금 드러난 것은, 우리가 서구의 지식을 이용해서 높은 수준의 기술을 획득하고, 핸드폰도 잘 만들고, 자동차도 잘 만들고, 뭐도 잘 할 수는 있는데, 이런 어이없는 정치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전혀 차단할 수 없다는 게 밝혀졌다는 거죠. 이거는 뭐냐면, 기존에 “이 정도는 우리가 갖고 있었겠지.”라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사실상 붕괴된 거예요.

 

저는 오히려 지금이 시민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들을 반성적으로 평가하고 아예 완전히 백지에서부터 무언가를 새로 쌓아나가야 하는 상황임을 보여주었다는 거죠. 사실은 ‘시민성’이라고만 얘기하면 너무 협소하게 가는 거고, 굳이 얘기하자면 우리가 민주주의 또는 공화주의라고 말하는 현대 정치체계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들 전체를 처음부터 다 재정립해야 하는 거죠. 거기에 시민성이라든가, 민주주의라든가, 자유와 평등, 권리 이런 개념들이 매우 핵심적인 자리들을 차지하고 있는 거죠.

 

지금까지 나온 얘기를 정리하자면, 한국 사회의 문제들이 불평등이라는 말로 포괄될 수 있고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개념적인 접근이 필요한데 그것이 시민성에 대한 논의일 수 있다, 시민의 권리로서 접근을 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한국 사회의 상황들은 오히려 이런 것들을 시작해나가기에 좋은 시점이고 필요한 시점이다, 이렇게 시민성에 관련하여 말씀해주셨고요.

 

청년문제와 관련해서는, 청년이라는 말은 이미 정치 언어가 되었기 때문에 정치적 수준에서는 계속 쓰일 수 있지만 정책적인 차원에서는 그런 언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청년정책이 아니라 주거 문제, 실업 문제, 노동 문제 이렇게 이슈에 따라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청년정책이라는 말은 배제되어야 한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네요.

 

그럼 끝으로,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이 있는데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치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큰 혼란을 느끼고 중요한 시국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와 관련한 평가를 해주실 수 있나요.

 

= 흔히 사람들이 지금 상황을 시스템이 무너진 상황이라고 얘기하잖아요. 저도 그 부분에 동의하고, 대통령의 친구인 어떤 특정한 개인이 대통령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제어한 이런 상황이 발생을 했는데 이것을 어떠한 시스템도 사전에 제어를 못 했다는 거죠. 여기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지적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여기서 시스템이 도대체 뭐냐는 거죠. “한국에는 시스템이 없고 시스템을 세워야 한다.” 이런 식으로 말을 많이 하는데 그 시스템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겁니다. 사실 시스템이라고 하는 개념 자체는 오래된 역사를 가진 개념인데 그걸 다 훑을 수는 없으니까 간단히 말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현대 사회에서 시스템이라고 하는 것은 몇 가지 조건들이 만족되어야 해요.

 

첫 번째로는 내적 일관성입니다. 그러니까 시스템이라고 하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좋은 비유는 건축물이에요. 시스템은 하나의 건축물 같은 건데요. 건축물이 내적 일관성이 맞지 않으면, 예를 들어 바닥이 너무 약한데 상층을 더 크게 세워놓으면, 무너지잖아요. 혹은 기둥과 기둥 사이 길이가 다르면 건축물이 무너지는 것처럼, 시스템이라는 것은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이질적인 요소들이 서로 일관성을 가지고 아귀가 맞아야 해요.

 

두 번째로는 고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계속 변화하면 이건 시스템이라고 할 수가 없어요. 어떤 변화하지 않는 고정되어 있는 체계여야 해요. 고정된 시스템이어야 해요. 왜냐면 고정되어 있어야만 거기에 따라서 모든 것이 맞춰져 돌아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시스템이라고 부르는 것은 표준 개념이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이라고 얘기한다면, 대의민주주의라고 하는 어떠한 절차들을 구성하고 있는 표준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선거는 어떤 절차에 따라서 하고, 선거를 통해 선출된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통치를 하고, 통치 방식은 어떤 식으로 검증을 하고, 이렇게 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표준들을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우리가 흔히 이제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서구사회에서는 이렇게 고정성과 일관성을 갖춘 시스템을 계속 구축해오는 방식으로 발전해왔어요. 대학교육 시스템이라든지 관료주의 시스템이라든지.

 

그런데 한국에는 시스템이라는 게 없다는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냐면, 일관성을 갖추지 못한 체계이고 고정성을 갖추지 못한 체계라는 거죠. 그래서 지금 이 지경까지 온 거죠. 그렇다면 고정성과 일관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 이것도 다양한 측면에서 얘기할 수 있겠지만, 가장 기본적으로 우리의 생각과 사유의 수준으로 가자면, 개념이거든요. 사유의 고정된 시스템을 구성하는 건 개념이에요. 명확하게 정의되고 이론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개념어들이란 말이죠.

 

예를 들어 자유와 평등이라고 하는 개념을 쓰고 있으면, 자유와 평등이 무엇인지에 대해 모두가 합의하고 있는 어느 정도 고정된 의미가 있고, 이 의미에 따라 사회가 굴러가도록, 자유와 평등의 고정된 의미에 따라 법체계가 수립되고 행정조직이 굴러가고 교육시스템이 수립되고 이렇게 가야한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자유와 평등이라고 하는 말 자체도 제대로 된 개념이 자리를 못 잡고 있다는 겁니다.

 

사실은 헌법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용어들이 한국 사회에서는 개념어로 자리를 못 잡고 있습니다. 어떤 현대 사회의 시스템을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헌법적 개념들인데 이 자체가 제대로 정의가 되어있지 않고 사회적으로 표준 수립이 안 되어 있으니까 사실 어떤 시스템도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현재 한국의 정치상황이라는 것이 시스템의 부재라고 물론 얘기할 수 있을 텐데, 그 시스템의 부재라는 것이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시스템이 아니라 현대 사회 정치를 유지하는 표준 시스템이라는 의미로 이해해야 하고, 그런 표준 시스템을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들은 결국 개념들이라고 말하는 거죠.

 

결국은 지금 말씀하신 부분이 앞서 말한 시민성 논의의 필요성으로 이어질 수 있겠네요. 한국 사회에 시스템이 없다는 것은 개념에 대한 합의가 없기 때문이고, 이와 관련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오늘 대담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박이대승은 프랑스 툴루즈 – 장 조레스 대학교 철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동료들과 함께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 다음 주 대담에는 여성학자 권김현영 님을 모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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